<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 >의 저자 이양호는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3년 동안 지곡서당에서 한문을 배운 뒤, 생계를 위해 10년간 논술과 책읽기를 가르쳤다. 그러다 다시 뜻을 품고 독일로 향했다. 발도로프 교육 방법을 배워 우리 아이들을 스스로 도덕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희한한 약력으로는 책에 대한 흥미를 끌기엔 역부족이다.
더욱이 먼저 출간된 < 백설 공주는 공주가 아니다? >는 전래동화가 원전이 지니는 깊이 있는 해석이라는 측면이라는 점을 제외 하고는 저자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지 못했다. 그런데 <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 >는 좀 다르다. 단순히 자신의 교육관이나, 발도로프 교육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신이 왜 이런 교육을 펴려고 하는지, 우리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발도로프에서 배울 점은 무엇이며, 우리 조상들에게 배워야할 점은 무엇인지, 또한 앞으로 자신이 펼칠 교육은 어떤 것 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놀라운 발견은 저자가 시종일관 옳고 바른 것만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옳고 바른 것을 말을 하면, 개그가 되거나 따돌림을 받게 되었다. 특히, 청소년들 사이에선 더 심하다. 아이들은 따돌림을 받지 않기 위해서 친구를 따돌리고 거친 말투를 배운다. 이것이 한국에서 청소년들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터득하는 첫 번째 일이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 사이에도 옳은 것, 바른 것이 무엇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외곡 되어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 저저 이양호가 자신의 교육관에 실은 옳고 바름은 너무나도 신선하게 다가 왔다.
<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 >는 크게 사계로 단원을 나누어져 있다.
겨울, ‘우리 얼굴은 어떠해야 하는가?’ 아이들은 어떤 인간으로 키울 것인가? 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상적인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특이한 것은 그 설명을 하기 위해 <심청전>을 재해석하고 심학규와 오이디프스를 동일한 인물로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추구해야할 인물로 곱고 빼어난 선비의 모습을 그려냈다.
봄, ‘다섯 씨 키움터에서 펼쳐질 공부’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여기서부터는 그가 세울 학교의 구체적인 학습과목과 방법으로 들어간다. 그가 말하는 교과 과목이라고 해서 우리가 받은 교육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보통 학교에서 배우는 것처럼 언어, 수학, 과학, 음악, 미술, 운동 따위가 들어간다. 하지만 그 것을 왜 배워야하는가에 대한 생각의 바탕은 기존의 교육관과는 사뭇 다르다. 그에게 있어서는 수학과 과학을 배우는 까닭 역시 도덕적인 인간에 이르기 위해서 이다.
여름, ‘다섯 씨 키움터’ 어떤 방식으로 학교를 운영할 것인가? 기숙학교로 운영될 이 학교의 수업료는 부모의 소득과 재산 수준에 따라 차등 청구할 것이라 한다. 그래야 평등한 교육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근거로 독일 사회복지제도를 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경제침체로 독일도 사회복지예산을 줄어들고 있다고 하지만, 독일의 복지제도는 우리와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산 감소로 병원비는 종전대로 무료이지만, 병원에 갈 때 지원 받던 택시비는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학생들은 대학교까지 무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25세까지 매달 20만원의 교육비를 따로 보조 받는다. 가난한 외국인학생에게 전세 비까지 지원해 주는 것이 독일이다. 혹자는 독일이야 선진국이고 소득수준이 우리보다 높으니. 그럴 수도 있다, 라 하겠지만, 우리보다 훨씬 못한 소득수준을 지닌 동구나 근동의 국가들에 비해서도 매우 열악한 실정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런 연유로 저자는 자신 세우는 학교에서 만큼은 교육의 평등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가을, < 단군신화로 본 한국 역사 > 우리는 어떤 민족인가? 인문학적 소양을 지니, 조상들의 얼을 본받아 새로운 세상을 이끌 동량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발도로프 교육을 그대로 한국에 옮겨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발도로프의 정신과도 맞지 않다. 단군신화에서 곰이 동굴에서 마늘과 쑥을 먹은 까닭은 안의 것과 밖의 것을 모두 소화해야 한다는 의미라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그렇기에 그 역시, 발도로프만을 고집한다거나 우리 전통 교육 방법만을 고집하지 않고 둘을 융합해서 새로움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 백설 공주는 공주가 아니다? > 꼿꼿한 대나무 같다면 <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 > 향이 그윽한 향나무 같았다. 대나무는 꼿꼿하고 강해 보이지만 속이 비어 있고 대나무는 꽉 찬 속을 잘게 잘라도 향을 낸다. 그처럼 <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 >의 문장 하나하나에는 선. 참, 진실, 올바름이라는 향이난다. 단순히 저자의 교육관만을 이야기 하고 있지 않고, 우리가 추구해야할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내내 조심스러웠다. 단어 하나하나까지 공들여 한글 쓰기를 한 글을 읽고도 고치지 못하고 이런저런 말을 한다는 것이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