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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 평전 - 순수함을 열망한 한 유령의 이야기
제이슨 포웰 지음, 박현정 옮김 / 인간사랑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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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 데리다의 존재론에 관해서 알기 쉽도록 플라톤의 사상과 연결지어 생각해보고 있다. 나 역시 데리다가 주창한 사상을 거기에 비유하는 것으로써 기나긴 독서의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플라톤의 저서 <국가>에서 묘사된 것처럼 어둠의 동굴에 묶여 있는 사람은 탈출 이전에 보고 있었던 세계가 그 감옥의 벽에 비친 그림자의 유희라고 여길 것이다. 해방된 이후에 만난 세상은 참된 대상들이 존재하는 곳이고 위대한 빛이 반짝이는 곳이다. 즉, 이성적 사유가 가능한 곳에서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을 살피는 것이다. 그러나 데리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동굴에서 걸어나와도 새로운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참된 그림자를 본다. 그 그림자가 이성적 사유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고 구성된다 하여도 지성과는 거리가 멀다. 데리다는 참된 선을 희망하고 그 희망을 믿으면서도 플라톤적 빛은 거부한다. 이것을 '해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책은 데리다의 '해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시간 순서대로 그의 사상을 되짚는다. 이는 보통의 평전보다 개인사나 업적을 다루는 비중이 적은 이유도 된다.

해체란 선, 정의, 순수, 존재에 대한 높은 기준에의 열망이다. 철학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빗겨가는 속성을 가진 것들을 계속해서 끄집어내는 식이다. 데리다는 평생 그렇게 많은 철학자를 연구했고 그들의 사상을 분석했다. 그래서 그를 철학자로 보지 않고 문학작가 또는 비평가로 분류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저자는 그가 그 누구보다 철학자로서의 가치를 뽐낸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를 뒷받침할 만한 이야기를 평전 형식으로 꾸린 것이다. 데리다가 자서전을 완성하지 못하고 떠났기에 최종적으로 그의 말을 듣지는 못한다는 분명한 한계가 있지만 그간의 결과물을 바탕으로 평전을 펴낸 것은 좋은 시도라 하겠다. 그러나 데리다의 사상과 업적이 분석하기도 분류하기도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 또한 애초의 의도와 목적을 뚜렷하게 드러내지는 못하고 있다. 데리다 스스로 해체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인식했듯이 어쩌면 그의 사상을 낱말로 정리한다는 것은 부적절한 일이다. 그 부적절함을 감안하고 읽더라도 그가 살았던 시대와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철학자들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아는 독자가 아니라면 이 글을 이해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일 것이다. 제 아무리 유령이 손에 잡히지 않는 존재라고 해도 설명과 해석이 조금 더 친절해야 '해체'에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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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자본주의 - 현대 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 아우또노미아총서 27
조정환 지음 / 갈무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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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자본주의'라는 용어부터 우선 정리해봐야겠다. '인지'는 주로 과학 용어에 사용되는 말인데, 여기에 정치경제학 용어인 '자본주의'가 더해졌다. 자본주의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그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현대사회를 조직하고 통제하고 감시하는 방식을 연구하는 분야. 저자는 이러한 시도가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과 비판의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그 시도의 일환이라고도 볼 수 있고 그러한 시도를 가능케 했던 근거로도 볼 수 있는, 인지자본주의로 묶이는 연구들이 여럿 열거되는데 그 양이 방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리하여 나는 책을 읽어나가면서 저자가 꿈꾸는 자본주의의 최종적인 결론에 집중했다. 말하자면, 부분적으로 목표를 조금 좁힌 셈이다.  

신자유주의로 불려온 양극적 경제는 오늘날 깊은 침체에 빠졌다. 지난 20년간 짧은 붐과 긴 침체를 거듭해 오다 2008년 이후 전세계가 들썩거린 공항 상태의 수렁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이를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발전의 지체라고 보지 않는다. 성장의 재개를 위해서 신케인즈주의 노선과 신보수주의 노선 사이에 오가는 논쟁이 극복의 방안에 도움이 되는지에 관해서도 회의적으로 생각한다. 그는 오늘날의 경제적 붕괴가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단언하며, 삶의 혁신과 행복을 위한 인지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부와 쾌, 그리고 행복에 대한 질적으로 다른 인지양식을 창출하자는 것. 공통적인 것의 생산, 문화와 정동들의 재특이화, 서비스 및 재화의 탈사유화. 그 이름만큼이나 매우 어려운 일처럼 생각되는데 분명 이상적인 개념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니까 더 이상 탈성장 경제를 어찌할 도리가 없다며 냉소적으로 바라보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는 치유를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는 그것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여러 고대 철학자나 사회주의자의 인지에 관한 이론을 바탕으로 인지적 신체적 치유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지배를 지엽적인 것으로, 주변적인 것으로 만들어 그것이 지배적인 것이 되도록 허락하지 않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것은 매우 위대한 혁명에 가까운데, 나는 이 책의 표지에서 말하는 것처럼 현대 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이 글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실현가능한 일인지 묻고 싶어졌다. 매우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내용이라 버겁게 느꼈지만, 이 책이 오랜 시간 동안 설파하는 치유책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의 자본주의가 너무나도 부패하여 방향을 잃은 배처럼 심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의 침체를 꿰뚫어 보는 인지자본주의에 대해 아는 것이 부족하나마 한번쯤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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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meral 2011-08-31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는 웹진 <자율평론>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정연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어린왕자 님이 작성하신 <인지자본주의>에 대한 서평글을 오는 9월 초 발행 예정인 <자율평론> 36호 게재할 수 있을지 문의를 드립니다.

<자율평론>은 2002년부터 지금까지 총 35호의 웹진을 발행한 계간 정치철학 웹진이며,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자유로이 접근할 수 있는 copyleft 웹진입니다. 그간 <자율평론>에 게재되었던 모든 원고들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aam.net/xe/autonomous_review

<자율평론>은 인문학 강좌 공간인 다중지성의 정원, 독립 출판 활동을 하는 갈무리 출판사, 세미나 공간 다중지성 연구정원의 마디 단위로, 위 공간들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지적 활동들의 성과들을 모아내고, 우리들의 생각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매체가 아니기 때문에 원고료를 드리기는 어렵지만, 게재를 허락해 주신다면 웹진이 발행되는 대로 PDF 파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모쪼록 긍정적인 검토를 부탁드리며, 더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시다면 아래 연락처로 언제든지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자율평론> 편집위원회 김정연 드림
daziwon@waam.net / 02-325-2102

트리플 2011-09-05 23:12   좋아요 0 | URL
덧글을 이제야 확인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읽을 수 있는 곳에 제 서평이 실린다면 저야 감사하죠.
부족한 글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웹진이 발행되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jicskan@naver.com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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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센델이 쓴 <정의란 무엇인가>가 돌풍을 일으키며 꽤 오랜 기간 동안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것을 보면서 지난 몇 달 간 나는 우리 사회에 결여된 덕목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고 정의로운 삶을 사는 일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그렇다면 무엇이 정의롭게 사는 것을 방해하는가? 사람들은 왜 책을 통해서 갈증을 해소하는 데 그치고 마는가? 머릿속에서 이러한 질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퍼져나갔다. 이 책은 그에 대한 해답을 우리가 발딛고 서 있는 이 땅의 국가와 정부에서 찾고 있다. 국가가 탄생한 시점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나 정치인이 가졌던 국가관과 그 발전과 변화에 따른 다양한 형태의 사회를 합법적 폭력, 공공재 공급자, 계급지배의 도구와 같은 몇몇 중요한 테마로 묶어 비교 분석하면서 저자의 생각을 덧붙이는 식이다.  

이 책은 정치에 몸담고 있는 사람, 그러니까 정치학자나 지식인이 아니라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를 위해서 쓴 글임을 유념해야 한다. 대중메체의 단편적 보도 탓에 왜곡되거나 그나마도 쉽게 접하지 못했던 한 정치인의 생각을 듣는 데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책에 실린 수많은 철학과 이론의 근거는 출처를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사실인지 명확하게 확인하기 어렵다. 그것들은 모조리 정치인 유시민의 입을 통해서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펴낸 애초의 목적 가운데 하나 ㅡ 국가에 대해서 상충하는 요구와 기대를 가진 국민들이 자기와는 다른 견해를 표명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 ㅡ 에 부합하고자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지만 저자의 생각이 곳곳에 묻어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게다가 끝에 가서는 아직 개념이 명확치 않은 진보정치와 정치인이 추구해야한다고 믿는 도덕적 이상을 고스란히 풀어내고 있다. 따라서 한 정치인과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장으로 인식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그가 직접 언급한 표현을 빌리자면, 국가론을 탐구하는 한 정치인의 책인 셈이다.   

유시민이 꿈꾸는 훌륭한 국가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수립하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고,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존중하고, 부당한 특권과 반칙을 용납하거나 방관하지 않으며, 선량한 시민 한 사람이라도 절망 속에 내버려두지 않는 국가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국가론에 부합되는 복지국가의 한 형태를 이상적인 국가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다수 사람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희망이 점점 줄어들고 국가가 행하는 폭력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횡행해도 혁명과 개량을 꿈꾸는 것조차 버거운 작금의 현실 속에서 과연 개개의 사람들이 정의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저자는 여기에 어떠한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는 어떤 특정 집단에 서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에 훌륭한 국가를 꿈꾸면서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나열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저자가 국가론을 열심히 탐구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에 걸맞는 사유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책임지며 공동체의 선을 이루기 위해 타인과 연대하고 행동할 줄 아는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태도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는 것을 주장한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조금 더 나은 현실에 살기를 소망하는 우리 모두는 국가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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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마리 개구리 깃발 식당 - 요리와 사랑에 빠진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지음, 박이정 각색, 김현철 옮김 / 책이있는마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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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림, 조각, 건축뿐만 아니라 요리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는 평생 소원이었던 요리사로서의 삶을 원없이 누리기 위해 자신이 계획했던 일들 중 많은 것을 포기했고 더 위대한 업적을 쌓을 수 있는 순간들을 여러번 눈감았다. 비행 연구, 기하학, 해부학, 건축학, 식물학 등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흔적을 새기고 인류에게 문화유산을 남겼지만, 정작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것 가운데 하나인 요리는 그가 부수적으로 생각하며 창조했던 것들의 찬란함에 묻혀 유구한 세월 동안 먼지 속의 기록으로 숨어버렸다. 당시에도 사람들에게 충분히 인정받을 만큼 과학적이고도 예술적인 기질을 십분 발휘하고서도 생을 마감할 즈음에는 밀라노 외곽의 작은 포도밭 하나만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뒷받침한다. 얼마 되지 않는 그 포도밭 또한 자신을 따르던 요리사와 제자에게 유산으로 남겼으니 레오나르도가 실은 얼마나 요리를 하고 싶어했는지 알 수가 있다.

그토록 요리사로서의 꿈을 펼치고 싶었다면 다른 분야에서처럼 얼마든지 해냈을 것 같은데 왜 뜻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을까? 그가 요리를 마음껏 하지 못했던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창의성과 도전정신 탓이었다. 다른 분야에서의 일들을 척척 해내는 그에게 요리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여러 차례 주어졌으나 그때마다 그는 사람들의 건강과 식습관을 위해서 메뉴를 바꾸려고 들었고 너무나도 효율적이지 못한 주방시스템을 고치고자 노력했다. 그림이나 건축에서 드러난 그의 창의적인 생각이 요리에도 그대로 이어졌던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야만적인 음식에 길들여졌던 귀족들의 식문화와 배고픔에 시달리는 평민들의 현실을 고려하여 채소 위주의 식단을 고민하고 연구했다. 쉬이 말을 듣지 않는 왕을 설득하기 위해 갖가지 술수를 동원했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의 허준이 생각날 정도로 지천에 널린 야생풀들을 약으로 쓸 수 있는지 실험하여 밝혀진 사실들을 하나씩 기록해나갔다. 게다가 수작업으로 진행되던 주방에 과학적인 기구를 도입하여 요리사들이 최대한 요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밤새 머리를 쥐어짜내기도 했다. 책에는 그때 그가 발명한 것들을 기록한 그림이 그대로 실려있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지금으로선 연상하기 어려운 그 거대한 기구들을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밀어부친 끝에 어마어마한 실수와 실패를 거듭해 거처에서 완전히 쫓겨나기도 하고 벌을 받는 일도 허다했다. 그러나 그것들 가운데 상당수는 오늘날에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것들이 많다. 가령, 컨베이어시스템은 그가 최초로 주방에서 고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은 요리와 사랑에 빠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삶을 파헤친다. 그가 남긴 소책자와 주변 인물들이 쓴 편지, 유럽의 여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소품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허구이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의 상황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위대한 업적들이 그의 요리 인생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사실적으로 등장한다. 특히나 그가 직접 쓴 요리책에서 밝혀진 사실들은 허구를 실제에 가깝게 구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책의 제목은 그가 한때 직접 운영했던 식당의 이름을 각색한 것이다. 식당은 손님들에게 외면을 당해 얼마 가지 않아 아쉽게도 문을 닫았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그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훗날 그가 궁정연회 담당자로서 일하면서 도전하고 실험했던 일들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누구보다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입맛을 돋우는 음식을 만드는 데 평생 열중했고, 열정적으로 요리를 하면서 인간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먹는 행위에 건강과 행복을 함께 찾으려고 애썼다. 비록 레오나르도가 요리로 명성을 떨치지는 못해 아쉬운 마음도 들지만, 그의 타고난 예술적 기질이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인간은 누가 뭐래도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에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 존재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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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감옥에서 -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
서경식 지음, 권혁태 옮김 / 돌베개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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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 TV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을 보면서 문자투표를 통해 가수를 직접 뽑는 시청자가 어떠한 기준으로 선발과 탈락을 가늠하는지 궁금해졌다. 가수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질 외에 평가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폭발적인 인기에 의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유사 프로그램이 비슷한 만듦새로도 상당한 시청률을 올리는 데는 방송에 출연하는 가수지망생의 공이 절대적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일종의 인간 드라마를 본다.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진 오디션 절차를 통해 한국에서 가수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주는 감동은 크다. 우리 문화를 잘 알지 못하는데도 음악으로 소통을 꿈꾸는 이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이고 응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경합이 거듭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다소 편협한 시각을 드러내며 모순적인 판단을 하는 경우는 없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전문가인 심사위원들의 기준도 중심이 흔들릴 때가 있다. 우선 한국가요를 잘 소화한다고 판단하는 하나의 잣대로써 일부 심사위원은 발음이 부정확한 일본인 출연자에게 여러 차례 발음 문제를 지적했다. 한편, 캐나다에서 왔다고 보기엔 믿기 어려울 만큼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는 다른 출연자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발음이 부정확한 출연자는 일상 생활에서도 한국어로 소통하는 데 큰 문제 없지만, 노랫말의 발음이 정확한 출연자는 그와 반대로 통역이 반드시 필요했다. 물론 가수는 노래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직업이라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만 가지고 한국가요에 대한 이해와 가사의 전달력을 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단시간에 고치기 어려운 발음 문제를 집요하게 논하는 심사기준은 그나마 이미 인기를 끌었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껄끄러운 문제를 경험한 터라 그리 심하지 않았고, 또 마침 그 출연자가 일찌감치 탈락하면서 논란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국사람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이보다 한국어에 대한 발음 자체가 정확한 이가 확실히 좋은 평가를 얻을 만한 요소를 지녔다고 볼 수 있는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일본에서 온 출연자에 대한 호감이 연변과  캐나다에서 온 출연자의 그것에 비해 근본적으로 낮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일본에서 온 친구는 재일한국인으로 한국과 뿌리 깊은 인연을 맺고 있고 우리 문화에 적잖은 관심을 보여왔는데도, 별 의식 없이 일본인(외국인)으로 선을 그어버린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다른 요소들이 뒤섞여있기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를 등장할 때부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가 많았다는 것은 편견의 문제가 아니라면 설명할 길이 없다. 그녀의 부족한 노래실력은 재일한국인을 한 민족으로 생각하지 않는 시선에 의해 유독 날선 도마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탈락의 순간에도 씩씩하게 굴었지만, 오디션에 응하기 전처럼 한국에 대한 애정이 변하지 않았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일본 국적을 선택하고 일본어만 배워도 살아나가는 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어로써 한국어를 택하고 부단히 한국이라는 사회로부터 스스로 민족의식을 부여하는 이들이 이 땅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것은 오래됐다. 열심히 한국말을 배워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에서 활약하는 재일한국인에게 일본어 특유의 억양에서 오는 말투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는 눈살을 찌푸리기 일쑤였다. 그러잖아도 불안정한 경계에 놓인 그들에게 우리는 왜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느냐고 아무런 의식 없이 묻기까지 한다. 억압의 역사에 대한 분노와 독도를 자기땅이라고 우기는 데 따른 증오가 가혹하게도 그들에게 드리워져 있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어느 한쪽을 택하지 않는 것에 대한 몰이해도 그 부정적인 시선에 한몫한다. 그들의 이야기에 한번도 귀기울이지 않은 채, 오늘날까지 온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서경식은 재일조선인(그는 분단 이전의 민족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한국인 대신 조선인을 사용한다)으로서 '코리안 디아스포라'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다. 디아스포라는 팔레스타인에서 쫒겨나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한반도 분단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재일한국인의 상황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여 새로운 개념을 쓴 것이다. 한일 양국은 질곡의 세월 속에서 일본땅에 갇혀 버린 재일조선인을 신경쓰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한때 그들에게 일본 국적을 취득할 것을 종용하기까지 했다. 지정학적 위치와 열강의 세력 다툼으로 자국의 힘을 기르는 데 바빴던 7,80년대는 그렇다고 쳐도, 아직까지 국가는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일본은 이 문제에 손을 대는 순간, 지난 과오가 되살아날 것을 염려해 입을 굳게 걸어잠궜다. 일본의 리버럴 세력조차 책임의 문제를 회피하고 윤리적인 차원의 인식만 되풀이한다.    

한국으로 오지도 못하고, 일본에서 자유롭게 살지도 못하는 재일한국인 2세가 겪는 가장 큰 고통은 정체성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그들이 느끼는 심정은 부모가 제 아이를 버젓이 쳐다보면서도 나몰라라 하는 충격이나 다름 없을 것이다. 한국사회가 '우리'를 말할 때, 거기에 해당되는 '우리'는 누가 있을까? 우리는 혈통 때문에 '우리'인 것이 아니라 여러 삶의 문제들의 근본 원인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며, 태어난 장소와 성별과 문화적 배경과 모어에 관계없이 정치적 목표를 연대할 수 있길 바랐다. 자연적인 요소들을 오히려 가능한 한 배제하고 그래도 타자와 내가 연대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가리는 작업은 분단의 현실을 이상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리라.   

교수로서 작가로서 글쓰기를 통해 치유되지 않는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을 지속해 온 저자는 그간의 강연과 저술이 일본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한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현재 일본 사회는 내부적으로도 매우 황폐하기 때문에 외적인 문제를 논할 계제가 못 되는 것이다. 한국 역시 분단이라는 상황을 수습하는 것조차 버거워 한반도에 마음을 품은 이들을 끌어안는 데 무관심하다. 이 무참한 사회를 또다시 젊은 세대에게 넘겨주게 될까봐 마음이 무겁다고 밝힌 그는 이 책에서는 모든 식민의 언어를 바로잡는 노력을 바탕으로 마지막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재일조선인은 국민이고 민족이면서 국민이 아니고 민족이 아니다. 중첩된 이중의 억압에서 해방되기를 원하는 그들의 문제는 누구에게나 국가나 민족이라는 범주의 자명함에 대해 의문을 품게 만든다. 디아스포라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상당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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