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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트 원티드 맨
존 르 카레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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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거장들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김연순.박희석 옮김 / 필로소픽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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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령 퇴장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14,500원 → 13,050원(10%할인) / 마일리지 72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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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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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가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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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 패밀리세일 덕으로 밀란 쿤데라 전집의 일부를 소장하게 되었다. 우스운 사랑, 생은 다른 곳에, 소설의 기술을 제외하곤 이미 소장하고 있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불멸, 농담-까지 합쳐 4/5 밀란 쿤데라 전집을 갖게 된 것이다. 당장 읽어야 할 책도 다 읽었고, 지금 당장 천착하고 있는 주제나 관심이 사라져서 무슨 책을 읽을까 책장을 살펴 보던 중 문득 전집을 독파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다. 세계문학전집은 계속 출간되고 있고, 민음사의 경우 300권을 돌파하고 있기에 잘못 건들면 다치는(?) 상황이지만 15권의 밀란 쿤데라 전집, 확실한 동기부여와 고지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성취감으로 가득 찬 독서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또 쿤데라가 세르반테스-발자크-프루스트-카프카-곰브로비치의 자신만의 소설사를 갖고 있듯 한 작가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보고 싶다는 욕구와 예의 가벼움/무거움의 문제, 에세이를 소설미학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도입한 작품세계의 독창성 등이 미학적으로 윤리적인 소설에 대한 고민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가장 얇은 <느림>부터 읽기 시작했다. 지금은 <만남>이란 에세이를 읽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필립 로스에 대한 글이 있어 집중해서 읽었다. 


가속되는 역사 속의 사랑. 필립 로스, <욕망의 교수> 


글의 일부를 옮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소설은 점차적으로 그리고 관련된 모든 차원에서 성을 발견한다. 미국에서 소설은 도덕의 전복을 예고하고 동반하는데, 이 전복은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1950년대만 해도 인정사정없는 청교도주의 안에서 답답해했는데, 그 후 단 십 년 만에 모든 것이 바뀐다. 가벼운 첫사랑과 성행위 사이의 방대한 공간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감상적인 무인 완충지대는 이제 섹스로부터 인간을 보호하지 못한다. 인간은 직접적으로, 냉혹하게 섹스와 대면하고 있다. 

 (...)필립 로스에게 있어서 성적 자유는 확실하고 집합적이며 평범하고 불가피하며 코드화된 하나의 주어진 상황에 불과하다. 그것은 극적이지도, 비극적이지도, 서정적이지도 않다. 

 사람들은 한계에 다다른다. 이보다 '더 이상'은 없다. 욕망에 반대되는 것은 더 이상 법이나 부모나 인습이 아니다. 모든 것이 허용되어 있으며, 유일한 적은 정체가 드러나고 환상이 깨져 버린 우리 자신의 벗은 몸이다. 필립 로스는 미국적 에로티시즘에 간한 위대한 역사가이다. 아울러 그는 버림받은 인간이 자신의 몸을 마주할 때 느끼는 이 기이한 고독을 노래한 시인이기도 하다.(p45~46)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에브리맨>을 접했을 때 받은 필립 로스에 대한 인상은 '어른'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인생 - 그러니까 소설을 다룰 수 있는 모든 주제와 씨름하는 소설가, 인생의 스승 같은 느낌을 주지만 인생 앞에서 한없이 겸손한 자세를 견지하는 '진실한' 인간. 폴란드계 유대인 미국 작가. 문호는 모르겠지만 거장이란 칭호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붙일 수 있는 작가. 알라딘 신간평가단을 통해 읽은 6권의 소설 중 가장 생각을 많이 하게 한 성찰적인 작품(정서적인 부분은 아무래도 <소년이 온다>?!)  


 <미국의 목가>를 읽으면서 떠올랐던 작품이 있다. 아니 떠오른 정도가 2중주 수준으로 <미국의 목가> 텍스트와 갈등을 일으키면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고하게 만든 텍스트.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 그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예술가와 시민> 부분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미국의 목가>가 특정 설정이 <토니오 크뢰거>에서 토니오가 예술가의 입장에서 시민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예술가만의 비애와 고통에 대해 설명하면서 타자화된 시민의 자기변호 및 반론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건강하고 올바른 미남과 아름답고 목가적인 미녀, 이들은 <토니오>의 머릿속에서 고뇌 없이, 그늘 없이 양지에서 즐거움을 탐닉하는 장밋빛 인생을 누릴 '승자'로 그려졌지만 <미국의 목가>는 이 건강한 시민의 철저한 전락과 가문의 몰락을 그리고 있다. 그 몰락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가. 


 스위드. 리뷰를 쓰기 위해 소설의 첫 장으로 돌아왔을 때 놀랐다. 이 소설이 '스위드'로 시작한다는 것을 무심하게 지나쳤던 것이다. 이 삼음절은 <롤리타>의 롤리타만큼 마법 같은 단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름은 마법이었다(p.13)'. 이렇게 써놓고 있으니. 시모어 어빙 레보브. 본명은 알아두자. '우리 종족에 태어난 이 눈이 파랗고 머리카락은 황금빛인 소년의 얼굴, 턱이 가파르고 왠지 비정해 보이는 그 바이킹 가면 같은 얼굴과 조금이라도 닮은 구석이 있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정도면 <소나기>의 서울에서 전학 온 소녀보다 이질적이고 낯설었으리라. 가뜩이나 눈에 띄는 이질적인 외모의 스위드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지적 능력은 조금 떨어져보이지만 요즘 널리 쓰이는 '엄친아'라 해도 무방한 시민의 왕이었다. 


 '레보브 씨는 슬럼에서 자라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교양도 없었던 많은 유대인 아버지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관점을 버리지 않고, 이미 열심히 노력해 대학 교육까지 받은 한  세대의 아들들 전체를 계속 몰아붙였다. 이 아버지들에게는 모든 일이 떨쳐낼 수 없는 의무이며, 옳은 길과 그른 길만 있지 그 중간은 없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이민 1세대가 선택할 수 있는 수는 거의 없다. 닥치고 돈 버는 것. 그것은 낯선 땅에 불시착한 씨앗이 생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땅에 뿌리를 내리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함돈균 평론가가 매일경제에 연재하고 있는 <사물의 철학> - 칠판 편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 싶다(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4&no=759162


 '`학교`라는 영어단어 `스쿨(school)`은 영어를 정식으로 학교에서 배우기 시작할 때 교과서 첫 장에 나오는 단어였다. 그 단어가 본래 그리스어(Σχολειο)였다는 걸 알게 된 것은,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면서다. 


그리스 고전 유산을 이어받아 서양의 문화적 적통이 되려고 했던 로마는 이 단어를 자기들 말로 에콜(ecole)이라고 번역했다. 현재 프랑스어에서 `학교`라고 부르는 그 단어다. 

결과적으로 지금 `학교`라는 단어는 영미권에서는 그리스어식 표기로, 프랑스어권에서는 라틴식 표기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라틴어로 번역된 `에콜`은 본래 `여유`라는 뜻이다. 그들은 `학교`를 `여유`라는 일반명사를 이용하여 번역했다. 고대에는 노동하지 않는 계급인 `여유 있는 사람들`만이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것도 그 까닭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학교의 진정한 정신이 일상적 생존 본능과 거리를 두는 정신적 여유, 즉 반성과 성찰 같은 비판적 거리감각에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독일 같은 나라는 대학 등록금이 거의 무료라고 한다. 언제 이런 복지체제가 갖춰졌는지 구체적으로 모르지만 68 문화혁명이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좋은 기회가 있어 올해 초 싱가폴에서 한달 정도 체류할 수 있었는데 거기서 만난 잉글랜드 출신 영어교사에게 68혁명에 대해 물었더니 무슨 소리하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해서 당황했었다. 알고 보니 영국에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또 많은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기 전에, 혹은 직장에 취직하기 전에 여행을 떠난다는데 학비에 대한 부담이 없으니 가능한 선택이라 생각된다. 대한민국은? 잘은 모르지만 '학'부모의 영향 아래 있는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정신적 여유를 잃고 살 거라 생각된다. 주워들은 얘기에 따르면 중학생들도 어느 대학 갈 것인지를 얘기한다고 한다. 사교육 줄인다고 어쩌구저쩌구 해봤자 입시제도 바꾸지 못하면 별 소용없다는 게 필자의 소견이다. '창조경제' 정부가 중시한다고 말하는 '실력'이 무얼 뜻하는지 알 길이 없다. 인터넷으로 손장난하는 실력이 뛰어난 건 알겠다만...

 히틀러가 선거에 의해 당선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정신적 여유의 부재. 아니 정신의 부재. 히틀러는 민중들에게 엄청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며 무너진 독일경제를 일으켜 세워줄 구세주로 보였을 것이다. '경제'대통령. 낯설지 않은 상황이다. 재밌게도 용산참사로 인해 만들어진 작가선언 6.9은 용산참사를 대한민국판 아우슈비츠라 설명한다. 세월호 시국선언에 '아우슈비츠'가 호명되었는지는 확인해보지 못했지만 이곳저곳에서 우리가 수용소에서 살고 있다고 주장한 조르조 아감벤과 호모 사케르가 호명되는 걸 보면 '일인당 국민 소득 3만불 지상주의(일인당 국민 소득 3만불이 되면 유럽식 복지가 가능하고 기타 등등 모든 게 해결되니 그때까지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일하자는 주의)'에 야만성에 치가 떨리고 토가 쏠린다. 지난 대선 얘기는 굳이 꺼낼 이유도 없지만 <오늘의 문예비평> 여름호에 실린 김진호 선생님의 글이 흥미로워 잠깐 얘기를 꺼내면 지난 대선은 '박정희 메시아주의'와 '노무현 메시아주의'의 대결구도였다는 것이다. 메시아주의가 마음에 안 들면 이렇게 고쳐도 무방할 것이다. 응답하라, 박정희. 응답하라, 노무현. 의료민영화 얘기가 다시 슬금슬금 기어나오고 있는데 이 나라 지도층(이라 쓰고 대가리라 읽는다)들은 정녕 국민들의 시체로 자신들의 윤택한 삶을 유지하려는 좀비가 되려 하는 것인가. 세월호 참사 직후 한 보수논객이 진보정당이 시체로 장사하려고 한다는 망언을 한 걸 보면 단순히 좌우 대립을 넘어 이 나라에 생명관리정치와 호모 사케르, 목숨/생명과 돈의 교환관계가 무의식에 깊이 자리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시 우리들의 '스위드' 얘기로 돌아가보자. 그는 아버지의 아바타로 자란다. 여기에 제동을 걸거나 방향전환을 할 만한 거리는 없어 보인다. 나는 이를 소극적 운명이라 부르고 싶다.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유년기-아동기,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스승을 만나지 못한다면 청소년기를 지나 성년이 돼도 독립적 주체로 바로 서긴 불가능하다.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종속돼 있으니까. 스위드의 경우는 그의 인종적,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 더 심했던 것 같다. '뭔가가 이 사람 위에 올라타 정지를 명령한 것이다. 뭔가가 이 사람을 진부함의 표본으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뭔가가 이 사람에게 경고를 한 것이다-너는 어떤 것도 거스르면 안 돼.(p44)' 스위드에게 아버지는 한 사람이 아니다. 레보브를 '스위드'라는 이미지에 가둬놓고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대중들, 이들은 아버지의 법의 공동편찬자들이다. 하지만 스위드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성실하게 연기한다. 아니 살아낸다. '스위드 레보브의 삶은, 내가 아는 한, 매우 단순하고 매우 평범했으며, 따라서 딱 미국인의 기질에 맞게 훌륭했다.(p56)' 최근에 유튜브에서 본 허경 선생님의 국립극단 강의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을 소개할까 한다. 아기 때 프랑스에 입양된 한국인들의 유전자를 가진 이들의 공통점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나는 이들이 프랑스에서 태어난 프랑스 사람들보다 한국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이들이 프랑스 사람들보다 더 완벽하고 아름답게 불어를 구사한다는 것. 전자는 한국에 알게 되면 자신의 생물학적 정체성과 사회적 정체성 간의 괴리가 심화되면서 분열에 이를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선택된 무지였고, 후자는 주류인 백인들과 다른 피부색으로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 이들이 취해야 했던 자세-프랑스인보다 프랑스인답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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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삶 1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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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 만국의 중고등학생들이여, 세계문학으로 단결하라!

이렇게 외친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난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많은 작가들이 세계문학을 일독하길 권하는 건 많이 봤다. 세계문학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아무래도 세계라는 어감의 영향으로 국가별로 떠올려보면- 영국의 셰익스피어, 독일의 괴테, 이탈리아의 단테, 스페인의 세르반테스, 러시아의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정도다(프랑스는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 출연한 황현산 선생님의 말씀대로 국가를 대표할 만한 대문호는 없지만 보들레르, 랭보, 발자크, 앙드레 지드, 프루스트 같은 작가들이 포진되어 있어 탄탄한 미드필더(?) 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삼국지나 서유기, 초한지, 수호지 같은 작품들은 '중국고전'이란 독립된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느낌이라 세계문학의 첫 인상과는 약간의 거리감이 있고, 천일야화는 문학보다 순수한 이야기에 가까운 느낌이라 역시 거리감이 있다. 우리가 세계문학이란 단어의 처음으로 이질감을 느끼는 순간은 아마도 '세계'가 유럽에 갇혀 있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세계문학이라기보단 유럽문학.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이나 근대소설이 유럽에서 처음 생겨났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은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유수의 출판사들이 펴내고 있는 세계문학전집이  5대양 6대주를 종횡무진 누비며 다양한 문화권의 다양한 언어로 쓴 작품들을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해주고 있어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좋은 작품들도 한글로 읽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그중에는 민음사의 모던 클래식 시리즈 같은 '젊은' 고전을 표방한 세계문학들이 나와 독자들과의 소통에 좀 더 다가서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일례로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2001년에 발생한 9.11 테러를 다루고 있어 중고등학생 같은 젊은 독자들도 소설과 경험을 공유해 동시대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고백할 게 있다. 나는 자유로운 삶을 1권밖에 읽지 못했다. 그래서 이 리뷰는 반토막짜리 리뷰가 아니라 리뷰 아닌 리뷰가 될 것이다. 책이 선정되기 전까지 '하진'이란 작가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김연수 작가가 번역한 적까지 있는 세계적인 소설가였다. 재밌는 점은 한국에 잘 알려진 위화나 모옌, 쑤퉁, 옌롄커 같이 중국어가 아닌 영어를 작가언어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소개에 따르면 1989년 톈안먼 사태를 접한 뒤 미국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프랑스' 작가 르 끌레지오 같은 경우 영어와 프랑스어의 모두 능통했는데 자신의 작가언어로 프랑스어를 선택했다는 이력을 들은 적이 있고, 언어의 마술사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같은 경우도 러시아어와 영어 두 개의 작가언어를 구사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는데 하진의 경우 영문학 박사학위까지 따긴 했지만 톈안먼 사건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직접적 영향으로 외국어(영어)를 작가언어로 채택'당했다'는 점이 특이했다. 중국에 남은 작가도 있고, 해외로 망명한 작가도 있고, 그들 각자의 사정을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힘들지만 대략적인 흐름만 보면 개인의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불가항력에 의해 의도된 선택이라는 점에서 하진은 영어에게 선택당했다, 이렇게 써보기로 한다. 


 전미도서상, 펜 포크너상, 퓰리처상 최종 후보 같은 화려한 수상내역도 그의 소설을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평소 아시아권 작가들과 유독 친하지 않았던 내게 영어로 글을 쓰지만 중국의 뿌리를 두고 있는(단순히 혈통이 아니라 문화적, 역사적 맥락에서) 작가의 작품을 읽는 이번 기회는 특별했다. 이런저런 지면에서 문화대혁명, 톈안먼 사건을 접하면서 이 사건이 중국현대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최근 허핑턴포스트에서 천안문 사건을 기록한 사진들을 본 터라(http://www.huffingtonpost.kr/2014/06/05/story_n_5450192.html)

소설은 이 사건을, 정확히는 이 사건을 통과해낸 이들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렇게 궁금했으면 열심히 다 읽고 꽉 찬 리뷰를 쓸 것이지... 할 말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편소설을 잘 안 읽게 되는 경향이 있다. 시집 아니면 철학서, 감각의 찬란 아니면 사유의 혁신. 기체적, 무정형의 상상력 아니면 지구보다는 금성에 어울릴 밀도의 숨 막히는 지적 투쟁... 극과 극의 호흡으로 갈리다 보니 그 중간쯤에 해당하는 장편소설이 잘 읽히지 않았다. 


 <자유로운 삶>은 가독성이 뛰어나서 그래도 읽는 맛이 있었다. 주워들은 말로 중국소설은 서사가 강하다는 말은 들은 적 있는데 그런 중국소설의 전통의 영향으로 하진 역시 풀어쓰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의심을 했지만 저자소개를 보니 그런 서술적 문체가 하진 소설의 특징이자 미덕이라 하더라(역시 책에 있어서만큼은 의심보다 믿음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듯하다).


 <자유로운 삶>의 첫 문장은 이렇다. '마침내 타오타오가 여권과 비자를 받았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읽었는데 작품을 읽어 나갈수록 이 한 문장이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암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짙어졌다. 자유로운 삶1권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이 소설은 자유를 위해 불안으로 다가서는 소설이다. 주인공 난은 작가 하진처럼 톈안먼 사건으로 중국을 떠나 미국으로 아내 핑핑과 함께 이주한다. 타오타오가 뒤늦게 부부와 합류하지만 '타오타오는 미국에서 부모를 만났다' 결과를 설명하는 한 문장이 담지 못할 인물 내면의 불안한 심리변화를 작가는 차분하게 추적해나간다. L'Etranger - 불안의 원인은 이방인이라는 그들의 정체성에서 기인한다. 그들은 영어에 능숙하지 못하다 - 이는 언제라도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근원적 약점이라 할 수 있다. 타오타오가 핑핑이 쓰던 잘못된 표현을 교실에서 썼다고 웃음거리가 된 에피소드는 약과이고 사소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그들의 타자적 위치를 반영하고 있다. 그들은 유색인종이기 때문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kkk단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최근에 토니 모리슨 관련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교수님에 따르면 아직까지도 미국 내 대학내에서 kkk단 표식을 한 대학생들이 '자유'롭게 활보하고 다닌다는 말이 내겐 꽤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세상에 달라지긴... 역시 힘든 것이다) 이 같은 모든 예외상황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그들의 일상은 실상 항시 비상상황이나 진배없는 것이다. 노동자라는 그들의 계급도 이 불안의 한몫을 하지만 핑핑이 토로한 적 있듯 돌아갈 곳이 없는, 조국/고향을 등지고 떠나 이방에 정착하지 못하고 유랑하고 있는 미아와 같은 그들의 처지가 불안의 핵이다. 


 불안에 영혼을 잠식당한 이들은 알게 모르게 자신을 잃어가고, 어떤 이는 중국에서의 남성이 누리던 권위의 박탈과 밑바닥 생활로의 급작스러운 추락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아내를 자신보다 15살이나 많은, 하지만 자신보다 자신감 넘치는 남성에게 빼앗기고 만다. 작품을 쭉 읽어나가면서 생각나는 영화가 있었는데 조금 뜬금없을 지도 모르지만 마이클 무어의 <식코>가 어른거렸다. 소설의 배경은 1992년이고, 영화의 배경은 2000년대 중반이기 때문에 시차는 존재하지만 충분한 재산을 소유하지 못할 때 건강(의료보험), 사랑에 끊임없이 균열이 발생하는 자본과 개인과의 불화 양상이 꽤 비슷해보였다. 저 '충분한'이란 단어의 모호함, 도대체 어느 정도를 가지고 있어야 인간다운 삶-그러니까 건강할 권리(건강의 위협이 발생했을 때 치료받을 권리), 사랑할 권리를 보장받고,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운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인가. 단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삶/행복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재방을 쌓아야 하는가. 혹은 얼마나 많은 불안을 마음 속에 집어넣어야 부족한 자본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가. 이방인의 미국에서 홀로서기는 그야말로 고통과 눈물의 대서사시이다. 이 지난하고 핍진한 투쟁에서 내면이 완전히 소진되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고 생명력, '다시 한번'의 의지의 원천이 되는 건 가족 간의 사랑이고, 난의 경우 '시 쓰기'인 것처럼 보인다. 

 

 이쯤 되면 우리는 한 번 질문해봐야 한다. 인간이란 동물은 왜 시 같은 걸 쓰는가. 반대로 시 같은 걸 써야만 생을 버텨낼 수 있는 인간은 어떤 인간인가. 글쓰기의 구원이 있다면 그 구원은 어떻게 오는가. 최근 글쓰기의 구원에 관한 가장 인상적인 글을 접한 기억을 공유하고자 한다. 6월 11일 '실천적 인문공동체' <시민행성>에서 장장 8명의 시인과 4명의 평론가-출연진의 리스트를 공개하면 김민정, 김행숙, 박상수, 송승환, 이영광, 이원, 한강, 함성호/ 김수이, 양경언, 함돈균, (한 분의 이름이... ㅜ죄송합니다)가 참여한 '시민과 함께 하는 시 낭독회'가 열렸다. 막간을 이용해 에피소드를 전하면 거기서 필자는 낭송자로 선정되어 이영광 시인의 '아프면 안 된다던 말'을 낭송하고, 부상으로 '나무는 간다' 시집을 받아 시인께 친필사인을 받았다 ㅜㅜ 신형철 평론가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의 영향도 있었지만 자발적으로 감상문을 쓰고 싶은 욕구를 강렬하게 자극했던 시집이었던만큼 나름 각별한 시집을 시인의 사인과 애정 어린 코멘트와 함께 받게 되어 나에겐 정말 '선물' 그 자체였다.(시가 궁금하신 분들은 여기로 놀러와주세요 ^^ http://blog.naver.com/yadohy6407/20197297971)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거기서 함돈균 평론가는 황병승 시인의 <육체쇼와 전집>에 대한 평론을 낭송해주셨는데... 내 머릿속에 남은 건 정말 뼈의 뼈만 남긴, 그래서 상대방의 의도를 반영하지 못한 폭력적 언술이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한 문장이다. 


 시인은 실패의 기록을 고백함으로써, 아니 고백의 언어로 실패를 기록함으로써 진실의 윤리에 닿고, 구원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13회 미당문학상 수상작으로 뽑힌 '내일은 프로'라는 시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보여주고자 하였지요. 다양한 각도에서의 실패를. 독자들은 보았을까, 내가 보여주고자 한 실패. 보지 못했지.. 나는 결국 실패를 보여주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실패에 실패한 시인에게 남은 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패배자의 이미지, 절망이나 좌절의 포즈가 아니라 '내일은 프로/내일은 프로'라는 희망의 자세였다. 이 역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이는 다시 함돈균 평론가의 평론으로 돌아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듯하다. 


 중요한 것은 시가 불모의 세계에 대해 유용한 결과물을 내놓는 식으로 세상과 거짓 화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불모의 세계가 지닌 불모성을 '무용한' 예술적 형식으로 드러내는 정직한 시적 자의식을 강인하게 견지하는 일이다. <얼굴 없는 노래> 중 


 효율성을 신봉하며 인간을 무자비한 무한경쟁의 전쟁터로 내모는 세상에서 성공과 승리는 무엇에 대한 성공과 승리이며, 무엇을 위한 성공과 승린가.죽음과 고통을 은폐한 야만적 체제에 대한 반성적 물음 없이 주어진 답을 푸는 기계적 운동을 삶이라 불러야 할 이유가 있는가. 작동이나 실행, 주어진 명령을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기 위한 '업그레이드'의 신화에 인간의 이야기는 없다. 승리와 성공의 제2의 자연이 지배하고 있는 신화에서 깨어나 진실을 말할 수 있는 형식은 실패이다.실패는 패배와 다르다. 히틀러가 제국의 건설에 실패했다면 돈 키호테는 세계와의 대결에서 패배했다. 신형철 평론가는 어떤 패배는 성공보다 더 멀리 우리를 데려다놓는다고 한 적이 있다. 그것은 가능의 세계에서 정답을 구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불가능과의 대결을 통해 질문을 구하고자 했기 때문에 가능한 진술일 것이다.1대 99. 1명의 성공자와 99명의 패배자를 낳는 구조는 혼자서 살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 결함에 기인해 공멸의 의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완벽한 실패의 성공이라면 성공일 것이다.성공의 성공할 수 없음을 보여줄 수 있는 건 성공의 실패가 아닌 실패의 성공일 것이다. 그리고 시인이 그 어떤 대상에 대한 투쟁이 아닌 자기 자신과의 투쟁, 자신 자신의 실패와 투쟁함으로써 진실을 드러내고자 한다. 세계의 성공의 신화, 성공성의 제 2 자연을 찢고 패배성의 자연을 불러내는 시인은 '실패의 성자'이다. 제대로 된 실패를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온 생애로 말을 하는 그는 실패에 실패함으로써, 성공이 보여주지 못한 무엇을 보여줬다. 한 진실한 영혼은 이 실패를 읽고, 구원의 가능성이라 썼다. 


 시 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졌다. 소설을 완독하지 못해 빈약한 부분을 채우려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실패한 리뷰다. 하지만 이 실패가 성공보다 더나은 실패가 될 수 있길 바라며 한 줄을 '덤'으로 남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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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4-06-27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읽었습니다. 리뷰라기 보다는 전문가가 쓴 한 편의 컬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네요. 특히 마지막 문단. 멋있어요~. 천안문 사진도 낭독하신 시도 잘 봤습니다.

하진의 이 소설은, 마치 누군가의 일기장처럼 느껴졌어요. 기록의 뭉치 같았어요. 아주 자잘한 것들이 모여서 모이고 또 모이고 모여서 소설이라는 큰 덩어리를 형성하는 과정 속에서 깊이있는 진솔함이 느껴졌어요. 큰 사건이 없어도, 반전이 없어도, 화려한 문장이나 대단한 사유가 없어도 단지 생각과 일상의 기록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생각거리를 주었다고나 할까요

rendevous 2014-07-10 23:50   좋아요 0 | URL
하진의 이 소설은, 마치 누군가의 일기장처럼 느껴졌어요. 기록의 뭉치 같았어요. 아주 자잘한 것들이 모여서 모이고 또 모이고 모여서 소설이라는 큰 덩어리를 형성하는 과정 속에서 깊이있는 진솔함이 느껴졌어요. 큰 사건이 없어도, 반전이 없어도, 화려한 문장이나 대단한 사유가 없어도 단지 생각과 일상의 기록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생각거리를 주었다고나 할까요

이 문장 읽고 <자유로운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더니 제가 읽어내지 못한 부분이 많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판단하려 들지 말았어야 했는데... 제 오만을 반성하게 됩니다. '한 번은 아무 것도 아니다' - 밀란 쿤데라의 문장을 상기하면서 김연수 작가가 번역한 <기다림>과의 만남을 기다려봅니다 ^^
 
[느리게 배우는 사람]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느리게 배우는 사람 창비세계문학 30
토머스 핀천 지음, 박인찬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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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간을 추천할 때 창비세계문학이 눈에 띠었다. 두 권 모두 미국문학이었다. 윌리엄 포크너가 미국문학의 아버지라 평하는 마크 트웨인의 <얼간이 윌슨>과 해럴드 블룸에 의해 돈 드릴로, 코맥 매카시, 필립 로스와 함께 현대미국문학의 4대 거장으로 손꼽히는 토마스 핀천의 <느리게 배우는 사람>. 이전 시대 작가의 장편소설과 현 시대 작가의 단편집, 나는 경로우대 차원은 아니었지만 마크 트웨인을 선호했으나 다른 평가원들에 의해 최종적으로 선택된 건 핀천이었다(친구들 사이에서 운 좋은 놈으로 통하는 필자는 후에 창비 책 읽는 당원 2기에 뽑히면서 <얼간이 윌슨>을 결국 받고 읽게 되었다). 돈 드릴로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국내 수용이 미진한 것 같긴 하지만 필립 로스의 경우 이동진 평론가의 팟캐스트에서 <에브리맨>을 다루면서 알려지는데 어느 정도 기여했고(이언 매큐언의 <속죄>나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처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는지 확인해보진 못했지만 어느 정도 파급력이 있었을 거라 예상된다), <휴먼 스테인>,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포트노이의 불평>, 가장 최근에 <미국의 목가>까지 출간되면서 중요한 책들이 (늦었지만/그래도 이게 어디야) 소개되었다. 코맥 매카시의 경우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드>가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었고, 특히 전자는 코엔 형제의 손을 거쳐 미국아카데미를 싹쓸이하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민음사의 모던클래식 시리즈를 통해 국경 3부작이 모두 출간되었고, 민음사 패밀리세일을 이용해 책들을 책꽂이에 모셔놓는데 성공했다. 토마스 핀천의 경우 <49호 품목의 경매>을 장만해놓고 거실 인테리어로 열심히 써먹다 결국 <느리게 배우는 사람>으로 먼저 만나게 되었다.


 주워들은 얘기에 의하면 서양문학 판에서는 장편소설을 단편에 비해 더 우대한다고 한다. 문단 사회 내에서 그런 건지, 작가들이 장편에 더 자부심을 느끼는지 몰라도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앨리슨 먼로의 말을 들어보아도 장편 우세의 풍토가 없지 않은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의 수상으로 단편작가들에게 더 많은 관심이 가길 바란다고 전했는데, 노벨문학상 수상 역사만 봐도 단편작가로는 최초의 수상이었기 때문에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서양사회에서 근대소설의 탄생배경, 과정, 그 역사에서 문학의 역할 및 위상 같은 거시적 관점의 문학사적 지식이 있다면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배움이 부족한 이에게 도움을 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요즘은 시집이나 철학서들을 주로 읽어서 그런지 시집에 비해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철학서에 비해 표면적인 지적 만족도가 낮은 장편소설에 손이 잘 가지 않았는데 단편집이라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었던 점이 만족스러웠다. 또 체홉이나 유명한 단편작가 이외에 서양의 단편을 읽어본 적 없어서 나름 색다른 독서체험이었고, 최근 그 동안 충분히 느끼지 못했던 김연수 작가의 매력에 눈을 떠, <꾿빠이 이상>을 필두로 작품을 읽던 중이여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이란 공통분모로 비교해가면서 읽는 재미도 있었다. 또 작가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처럼 시상식장에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은둔형(이라고 쓰면 뭔가 중립적인 표현이 아닌 것 같아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작가라는 점과 서문에서 겸손함과 솔직함이 묻어나 읽기 전부터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1953년 고등학교를 최우수로 졸업하고 장학생으로 코넬 대학 공학물리학과에 입학하였다. 2학년 때 문리학부로 전과해 영문학을 공부했으며 1959년 전과목 최우수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였다.’ 같은 이력에서 매력이 조금 감퇴되었다).


 (줄거리 요약은 출판사 서평보다 잘할 자신이 없어 부득이하게 빌리고자 한다) 소설집에 담긴 다섯편의 이야기는 소재나 배경 등이 각기 다르지만 죽음, 무기력, 권태, 획일화, 무질서, 파국, 단절감을 공통적으로 그리고 있다. 핀천의 첫 단편 이슬비는 군대라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죽음과 다를 바 없는 무기력한 삶을 반복하는 청춘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러바인은 도망치듯 군대에 들어온 인물인데, 그는 군대를 떠나려 하기보다 반복적이고 정체되어 있는 그곳에 안주하려 한다. 주인공은 허리케인으로 큰 피해를 입은 인근 뉴올리언스에 파견되어 시신 인양작업을 하면서 죽음의 문제와 맞닥뜨리고 우연히 만난 여자와 의미없는 섹스를 한다. 그런 뒤 그는 휴가를 가는 대신 군대생활로 되돌아간다. 작가는 주인공의 삶을 폐쇄회로와 같은 고립적이면서 단절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이슬비>를 한마디로 평한다면 내겐 분위기로 먹고 들어가는 소설이었다.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 듯 모를 듯해 논리적 해석과 감성적 추론(상상) 사이에서 둥둥 부유하게 만드는 작품,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모호해 몽환적인 느낌을 들게 만드는 작품, 약간의 외부충격만으로 깨질 얇은 꿈을 꾸는 기분을 들게 만드는 작품, 요즘은 이런 작품에 곧잘 마음이 유출되곤 한다.

주인공 러바인은 군에 복무 중이다. 대학을 나온 엘리트로 통하지만 의자에 커다란 엉덩이를 얹혀 놓고 소설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보통의 군인이다. 휴가에 대한 기대도 보통, 휴가취소에 대한 실망도 보통일 것 같은 그에게 존재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사막의 배경과 폐쇄적인 군대조직이 중첩되면서 러바인의 고립감은 배가되고, 그의 일상은 건조한 공간과의 동화에 의한 마모의 시간으로 채워진다. 그는 조용히 표나지 않게 현지인처럼 되어갔으며, ‘원래 쓰던 날카로운 브롱크스 악센트는 느린 말투 속에서 무디어지고 부드러워졌다’. 그는 조금씩 지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희박한 존재. 희박한 존재감은 미지근한 피에서, 둔한 심장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권태(倦怠). 게으름과 피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피로한 상태, 차라리 그 상태에 대한 예감. 이 피로는 때로 정신적으로 주체 내부를 소진시키는 불안에 의해 은폐된 채로 축적되곤 한다. 만성피로의 진원지를 찾지 못한 이는 무기력이란 진앙에 무기력하게 당하고, 이 무기력에 중독된 상태는 결국 삶 자체에 대한 게으름으로 현상된다. 불안의 원인을 알면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올까? 불안이 사회구조처럼 정교하게 조직되어 있다면, 어쩌면 사회구조에 의해 정교하게 조직됐다면 문제가 되는 사회를 변혁하지 않는 이상 불안의 일상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불안이 젖줄을 대고 있는 한 지류는 죽음일 것이다. 인간이 언제라도, 선하게 살았든 악하게 살았든 상관없이 이유 없이 한순간에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은 삶에 대한 열정에 불을 붙이기도 하고 꺼트리기도 한다. 러바인은 죽음의 공포를 목격하고 그 충격에 의한 반동으로 불장난을 해보지만 그 불은 오래가지 못한다. 부정에서 짜낸 의지는 순간적으로 강렬한 작용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못한다. 폭력이 사람을 파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사회구조에 의해 은폐된 폭력에 의해 사람들은 상처받으면서 아픈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한 시인이 말했던 대로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그날을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p.s 다른 단편에 대한 감상도 적어보았지만 <이슬비>와 크게 다르지 않아 여기까지만 올리고자 한다. 언젠가 <중력의 무지개>에 대한 리뷰를 올리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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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4-06-16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어렵더군요. 일단, 글자와 글자속 내용이 따로놀아서, 읽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소설이었습니다. 읽기도 어려웠는데 쓰려니 어려웠다는 말 밖에는 할말이 없더군요 ㅠㅠ.

rendevous 2014-06-16 22:28   좋아요 0 | URL
제49호~ 는 그나마 대중성 있다고 하니 읽어보려고요 ㅎㅎ 저도 연역적으로 이게 이래서 이렇고~ 하는 논리적 이해는 힘들었는데 묘하게 어슴푸레하게 느낄 수 있었던 분위기가 매혹적이더라고요 ^^ 그나저나 자유로운 삶은 다 읽으셨나요? 전 아직 1권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ㅜㅜ

CREBBP 2014-06-17 11:22   좋아요 0 | URL
중국 작가라, 소설 쓰는 형식이 완전 새롭게 느껴지더군요. 속도가 이리 더디 나가는 책도 드물더군요. 다른 소설들도 처음 부분을 통과하기가 어려운데, 이 소설은 특히나, 1/3까지가 진도 엄청 안나갔어요. 1편 거의 다 읽었는데, 일단 1편 먼저 쓰고 2편 쓰려구요.

rendevous 2014-06-18 00:17   좋아요 0 | URL
저는 1권 절반 정도밖에 못 읽었습니다 ㅜ 다 못 읽고 써야할 것 같아요 ㅜ 최근 이창래 소설가에게 관심이 생겼는데 비슷한 처지의 중국작가 작품이라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 이름만 들어본 문화대혁명이나 텐안문 사건도 소설로 먼저 만나면 나중에 딱딱한 글들을 만났을 때 당혹감과 어색감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6-16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핀천, 어렵죠. ㅎㅎㅎㅎㅎ. 저는 주로 장르 소설을 읽어서리....... 중력 무지개 고가에 팔아서 화딱지나서 아직 안 사고 있는데..

rendevous 2014-06-16 22:25   좋아요 0 | URL
잔인한 가격대 ㅜㅜ 시립도서관에 신청했는데 받아줄지 미지수인 것 같습니다 ㅜㅜ
 
얼간이 윌슨 창비세계문학 31
마크 트웨인 지음, 김명환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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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 가공선><얼간이 윌슨>. 양자택일의 선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바로 얼간이의 어감이었다


얼간이

얼간이

얼간이

얼간이

얼간이

 언어생태계에서 욕이란 소수종이 차지하는 위상은 독특하다. 시대 변화에 흔들림 없이 정통성의 권위를 누리는 욕이 있는가 하면, 시대상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변화하는 과정에서 탄생하고, 진화하고, 소멸하는 욕이 있다. 얼간이. 태어난 이래로 나는 몇 번이나 이 단어를 발음해보았을까. 아마 다섯 손가락 선에서 해결될 것이다. 그렇다면 가공선?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발음해볼 기회가 별로 없을 것 같은 두 단어 사이에서 나는 끌리는 쪽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얼간이다운 선택이 되었다.


 창비 책 읽는 당원 2기에 신청하면서 확률을 높이기 위해 신청이유에 눈에 띨 만한 에피소드를 적었다. 최근에 출판된 한국작가가 읽은 세계문학은 문학동네 카페에 연재된 글을 모아 단행본으로 묶은 책인데 이 연재를 꼬박꼬박 챙겨보았다.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에 소개된 책에 얽힌 한국작가의 독서체험과 독후감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고 쓰면 좋겠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한 줄 백일장의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졸업한 백일장을 참여하는 재미도 쏠쏠했고, 때로 시시한 일상과 도도한 이상 사이에 미미한 문장이나마 보태 기분을 내고 싶었다. ‘정도의 기분. 라라 라라 라라 라라(날 좋아 한다면) 눈을 감으면 산토리니 섬이 펼쳐지고,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여성은... 돈 많고 잘 생긴 남자와 놀고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한 줄이긴 하지만 한 줄만 쓰란 법은 없고 백일장은 백일장이니 당선자에게 소저의 상품이 있었으니! 한국작가가 읽어준 세계문학, 바로 그 책(창비 세계문학 독후감에서 문학동네 세계문학 얘기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아 조금 죄송하긴 하지만... 문학의 나라에 국경이 있겠습니까!)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을 읽어준 작가는 다름 아닌 박민규 작가였다. 박민규 작가의 기운을 받은 나는 백일장에 당선되고 마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거의 3년 만에 찾아본 글이 재밌어서 함께 읽어보고자 한다.

문제

 

내가 죽어 그래, 자넨 어떤 삶을 살았나?” 하고 신이 묻는다면

나는 _________ 라고 답할 것이다. 

[출처] [빈칸 채우기 백일장] 13. 박민규의 <톰 소여의 모험> (::문학동네::) |작성자 문학동네세계문학

 

내가 죽어 당신을 조우하는 걸 보면 꽤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안 그래 신?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천국이 있는지 지옥이 있는지 극락이 있는지 염라대왕을 만나는지

카르마 점수 계산해서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지 아니면 죽으면 ''을 만나게 되는지 모르지만

신을 만난다면 내 삶이 꽤 가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신은 이미 내 인생을 다 알고 있을텐데 물어보는 걸 보면

내 입으로 내 인생사를 직접 말해주길 바라는 거 아닐까요?

신이란 매력적인 독자를 홀린 그 이야기를



 아직 십대 때여서 그런지 나름대로 재기 있는 싱싱한 생각이 잘 건져졌던 때였던 것 같다. 그렇게 받은 <톰 소여의 모험>을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남아 있게 신청이유에 박민규 작가와의 에피소드를 적어 <얼간이 윌슨>과 만나게 되었다. 이 자리를 통해 박민규 작가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열심히 기다리고 있으니 좋은 신간으로 만날 수 기대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얼간이 윌슨>을 읽은 전체적인 감상평은 이렇다


마크 트웨인 특유의 재치와 풍자가 살아 있었지만 후반부에 재판과정에서 긴장이 조금 풀어져 아쉬웠다


 인종주의, 정확히 미국사회 내의 흑인차별에 대한 부분은 최근에 읽은 솔로몬 노섭의 <노예12>과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가 워낙 강렬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기 때문에 조금 미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솔로몬 노섭과는 픽션과 논픽션의 장르적 차이가, 토니 모리슨의 경우 작가 자신의 인종과 시대적 차이가 존재하긴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사실 <얼간이 윌슨의 책력>이었다. 그래서 조금 특별한 감상평이 되길 바라며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글을 써보고자 한다.(최초의 계획은 책력을 모두 옮겨 적은 후, 거기에 대한 코멘트를 달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분량이 많아서<두 장 분량> 몇 개만 추려서 적기로 한다.)


<얼간이 윌슨의 책력>

1.아담은 인간일 뿐이었다-이 점이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그는 사과 자체를 원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원한 것이다. 실수는 뱀을 금지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랬다면 아담은 뱀을 먹어치웠을 것이다.

 

이성복 시인의 최근작시집 뒤표지에는 이런 제목의 글이 실려 있다. <문학, 불가능에 대한 불가능한 사랑>. 이렇게 살짝 변주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인간, 금지에 대한 금지된 욕망.


2.삶이 어떤 것인지 알 정도로 충분히 오래 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리가 아담, 즉 우리 인류의 첫 큰 은인에게 얼마나 크게 고마워할 빚을 지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그는 이 세상에 죽음이 있게 했던 것이다.

 

에셔의 판화, 보르헤스의 <알레프>, 조이스의 <율리시즈>, 순환과 무한, 무한과 영원, 영원과 순환. 순환이 영원히 이뤄진다면 순환된다고 할 수 있을까? 죽음이 없다면 삶을 사랑하는 게 가능했을까?


3.아담과 이브는 유리한 점이 많았지만, 그중 으뜸은 그들이 이가 나는 어린 시절을 피했다는 것이다.


이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손가락으로 잡고 흔들어서 빼곤 했다. 성급하게 뺀 자리가 유독 시리고 아팠다. 그 아픔이 사람을 느리게, <느리게 배우는 사람>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4.습관은 습관이다. 그래서 누구도 그것을 단번에 창밖으로 내던질 수 없고, 한번에 한계단씩 아래층으로 유인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의 습관, 인류의 습관, 어쩌면 우주의 습관 앞에서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계단, 그 한 계단이 수학적으로 0으로 수렴한다고 해도 문학은 그것을 0으로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잠든 사이에 머물다 간 입맞춤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 망각은 누군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사실까지 지우지 못한다

.

5.우정이라는 고귀한 열정은 아주 다정하고, 변함없고, 충직하고, 오래가는 성격을 지닌 것이어서 돈을 빌려달라는 말만 하지 않으면 평생 지속될 것이다.


만약 반대로 친구가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을 한다면? 우리의 우정을 위해 나는 너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겠어,라고 해야 하나...

 

 

6.왜 우리는 아기가 태어날 때는 기뻐하고 장례식에서는 슬퍼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을 희망이 없는 절망으로 몰아붙이는 재앙이 있는 이 세상에서 당사자란 말은 얼마나 당사자의 마음을 몰라주고 배반하고 짓밟는가.

 

 

7.화가 났을 때는 넷까지 세라. 아주 화가 났을 때는 욕을 해라.

 

가만히 있어야 할 때 가만히 있고,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할 때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인내를 권하고 가르칠 때 왜 반항하고 저항하는 법은 가르치지 않는가.

 

 

8.작가를 틀림없이 즐겁게 할 방법이 세가지 있는데, 그 셋은 뒤로 갈수록 높은 단계를 이룬다. 첫째, 작가에게 그의 저서 중 하나를 읽었다고 말하는 것, 둘째, 그의 저서를 모두 읽었다고 말하는 것, 셋째, 그가 곧 출간할 책의 초고를 읽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첫째는 그의 존경을 살 수 있고, 둘째는 경탄을 얻어내며, 셋째는 당신을 그의 마음에 쏙 들게 만든다.

 

프린키피아, 특수상대성이론-일반상대성이론 초고를 처음으로 이해한 사람의 심리변화가 궁금해진다.


9.형용사에 관하여: 아니다 싶을 때는 삭제해버려라.

형용사, 부사는 되도록 적게 쓰고, 명사를 많이 쓰라는 말은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다. 사유는 명사를 타고~

 

 

10.용기는 공포에 대한 저항, 공포의 정복이지, 공포의 부재가 결코 아니다. 한 존재가 부분적으로 겁쟁이인 면이 없다면, 용감하다고 이르는 것은 칭찬이 아니며 단어를 느슨하게 잘못 사용한 것일 따름이다. 벼룩을 생각해보라!-공포에 대한 무지가 용기라면, 벼룩은 신의 피조물 중에서 비교할 상대가 없을 정도로 가장 용감한 존재이다. 크기와 힘에서 당신과 벼룩의 관계가 규모가 큰 군대와 젖먹이 아이의 관계와 동일하다는 사실을 전혀 상관하지 않은 채, 벼룩은 당신이 잠들었든 깨어 있든 공격해온다. 벼룩은 항상 위험과 즉각적인 죽음의 코앞에서 하루 밤낮을 살고 매일매일을 살지만, 10세기 전에 지진의 위협을 맞은 돗의 거리를 걷는 사람만큼이나 두려움이 없다. 우리가 클라이브, 넬슨, 퍼트넘을 공포가 무엇인지 모르던 사람들이라고 일컬을 때, 항상 벼룩을 추가해야 하고, 그 행렬 맨 앞에 세워야 한다.

 

치킨게임. 목숨을 거는 행위가 곧 용기 있는 행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이의 얼간이같은 치기는 오히려 기형적 용기가 은폐하고 있는 공포를 드러낸다. 어쩌면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이만이 용기 있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11. 10, 이 달은 주식 투기를 하기에 특별히 위험한 달 중 하나이다. 나머지 달들은 7, 1, 9, 4, 11, 5, 3, 6, 12, 8, 그리고 2월이다.

 

유머. 차이를 횡단하는 힘.

 

12. 당신이 굶주린 개를 구해서 잘 살게 해준다면, 그 개는 당신을 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인간과 개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이다.

 

사람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 많은 이들이 어린 시절 한 번씩 돋보기로 개미를 죽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유아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머리가 커져버린 이들이 많은 약자들을 짓밟고 죽였고, 죽이고 있다, 죽일 것이다. 스스로를 대상의 자리에 놓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 김수영의 시 <절망>은 이렇게 끝난다.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반성하지 않음, 반성불능은 그 자체로 절망이다.

 

13. 인기도 과해질 수 있다. 로마에 가서 처음에 당신은 미껠란젤로가 죽었다는 사실에 회환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당신은 싫증이 나서 그가 죽는 꼴을 보지 못했다는 것만으로 회한으로 여기게 된다.

 

최근에 본 영화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그레이트 뷰티>가 생각난다. 어떤 아름다움은 순간에서 태어나 영원에서 죽는다. 만날 수 없는 존재를 영원히 그리워하는 것, 절대적 아름다움은 우리의 시선을 절대적으로 폭력적으로 만든다.

 

 

14. 41. 이날은 우리가 나머지 364일 동안 어떤 사람인지를 상기시켜주는 날이다.

 

41일 그리고 정치가.

 

15. 1012, 발견.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경이로운 일이었지만,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더욱 경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상실의 윤리. 우리는 상실한 자들이다. 무엇을 상실했는지 모르는 상실을 상실한 자들이다. 인간은 본디 아무 것도 아닌 존재,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존재로 태어나 소유를 욕망한다.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건 이런 것들뿐이리라. 가령 내가 너를 사랑했다는 사실. 그 소유마저 죽음이 모두 앗아갈 것이기에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사실은 이런 것뿐이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상실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상실했다는 사실만은 상실하지 말아야 한다. 2014년 우리에게 상실하지 말아야 할, 기필코 지켜내야 할 거대한 상실이 겪었다. 이 상실이 상실되지 않도록 우리는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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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팽 2014-06-16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스리 님, 리뷰 재미나게 적으시네요^^!!! 유머와 성찰이 적절하게 섞여 있는 게 큰 매력입니다^^!! 마크 트웨인을 전 참 좋아라 하는데 창비에서 신간이 나왔다고 했을 때 이 책과 핀천의 책에서 많이 고민했어요.

rendevous 2014-06-16 22:39   좋아요 0 | URL
마크 트웨인 리뷰다 보니 제 안의 잠자고 있던 유머가 깨어난 것 같습니다 ^^ 유머의 가벼움과 성찰의 무거움을 적절히 잘 조화시키고 균형 잡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ㅎㅎ

링크보이 2014-06-25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정말 재밌습니다. 책도 정말 재밌겠네요.

rendevous 2014-06-25 13:37   좋아요 0 | URL
최고의 찬사, 감사합니다 ^ ^ 마크 트웨인의 작품 중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인 것 같은데 저의 경우 <얼간이 윌슨의 책력> 덕분에 나름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어요 ^^ 앞으로도 재밌는 리뷰를 위해 노력해야 겠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