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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간이 윌슨 ㅣ 창비세계문학 31
마크 트웨인 지음, 김명환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평점 :
<게 가공선>과 <얼간이 윌슨>. 양자택일의 선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바로 ‘얼간이’의 어감이었다.
얼간이
얼간이
얼간이
얼간이
얼간이
언어생태계에서 욕이란 소수종이 차지하는 위상은 독특하다. 시대 변화에 흔들림 없이 정통성의 권위를 누리는 욕이 있는가 하면, 시대상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변화하는 과정에서 탄생하고, 진화하고, 소멸하는 욕이 있다. 얼간이. 태어난 이래로 나는 몇 번이나 이 단어를 발음해보았을까. 아마 다섯 손가락 선에서 해결될 것이다. 그렇다면 ‘가공선’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발음해볼 기회가 별로 없을 것 같은 두 단어 사이에서 나는 끌리는 쪽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얼간이다운 선택이 되었다.
창비 책 읽는 당원 2기에 신청하면서 확률을 높이기 위해 신청이유에 눈에 띨 만한 에피소드를 적었다. 최근에 출판된 ‘한국작가가 읽은 세계문학’은 문학동네 카페에 연재된 글을 모아 단행본으로 묶은 책인데 이 연재를 꼬박꼬박 챙겨보았다.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에 소개된 책에 얽힌 한국작가의 독서체험과 독후감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고 쓰면 좋겠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한 줄 백일장의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졸업한 백일장을 참여하는 재미도 쏠쏠했고, 때로 시시한 일상과 도도한 이상 사이에 미미한 문장이나마 보태 기분을 내고 싶었다. ‘라’ 정도의 기분. 라라 라라 라라 라라(날 좋아 한다면) 눈을 감으면 산토리니 섬이 펼쳐지고,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여성은... 돈 많고 잘 생긴 남자와 놀고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한 줄이긴 하지만 한 줄만 쓰란 법은 없고 백일장은 백일장이니 당선자에게 소저의 상품이 있었으니! 한국작가가 읽어준 세계문학, 바로 그 책(창비 세계문학 독후감에서 문학동네 세계문학 얘기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아 조금 죄송하긴 하지만... 문학의 나라에 국경이 있겠습니까!)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을 읽어준 작가는 다름 아닌 박민규 작가였다. 박민규 작가의 기운을 받은 나는 백일장에 당선되고 마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거의 3년 만에 찾아본 글이 재밌어서 함께 읽어보고자 한다.
문제)
내가 죽어 “그래, 자넨 어떤 삶을 살았나?” 하고 신이 묻는다면
나는 _________ 라고 답할 것이다.
[출처] [빈칸 채우기 백일장] 13. 박민규의 <톰 소여의 모험> 편 (::문학동네::) |작성자 문학동네세계문학
내가 죽어 당신을 조우하는 걸 보면 꽤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안 그래 신?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천국이 있는지 지옥이 있는지 극락이 있는지 염라대왕을 만나는지
카르마 점수 계산해서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지 아니면 죽으면 '신'을 만나게 되는지 모르지만
신을 만난다면 내 삶이 꽤 가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신은 이미 내 인생을 다 알고 있을텐데 물어보는 걸 보면
내 입으로 내 인생사를 직접 말해주길 바라는 거 아닐까요? ㅎ
신이란 매력적인 독자를 홀린 그 이야기를 ㅎ
아직 십대 때여서 그런지 나름대로 재기 있는 싱싱한 생각이 잘 건져졌던 때였던 것 같다. 그렇게 받은 <톰 소여의 모험>을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남아 있게 신청이유에 박민규 작가와의 에피소드를 적어 <얼간이 윌슨>과 만나게 되었다. 이 자리를 통해 박민규 작가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열심히 기다리고 있으니 좋은 신간으로 만날 수 기대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얼간이 윌슨>을 읽은 전체적인 감상평은 이렇다.
마크 트웨인 특유의 재치와 풍자가 살아 있었지만 후반부에 재판과정에서 긴장이 조금 풀어져 아쉬웠다.
인종주의, 정확히 미국사회 내의 흑인차별에 대한 부분은 최근에 읽은 솔로몬 노섭의 <노예12년>과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가 워낙 강렬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기 때문에 조금 미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솔로몬 노섭과는 픽션과 논픽션의 장르적 차이가, 토니 모리슨의 경우 작가 자신의 인종과 시대적 차이가 존재하긴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사실 <얼간이 윌슨의 책력>이었다. 그래서 조금 특별한 감상평이 되길 바라며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글을 써보고자 한다.(최초의 계획은 책력을 모두 옮겨 적은 후, 거기에 대한 코멘트를 달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분량이 많아서<두 장 분량> 몇 개만 추려서 적기로 한다.)
<얼간이 윌슨의 책력>
1.아담은 인간일 뿐이었다-이 점이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그는 사과 자체를 원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원한 것이다. 실수는 뱀을 금지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랬다면 아담은 뱀을 먹어치웠을 것이다.
이성복 시인의 최근작시집 뒤표지에는 이런 제목의 글이 실려 있다. <문학, 불가능에 대한 불가능한 사랑>. 이렇게 살짝 변주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인간, 금지에 대한 금지된 욕망.
2.삶이 어떤 것인지 알 정도로 충분히 오래 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리가 아담, 즉 우리 인류의 첫 큰 은인에게 얼마나 크게 고마워할 빚을 지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그는 이 세상에 죽음이 있게 했던 것이다.
에셔의 판화, 보르헤스의 <알레프>, 조이스의 <율리시즈>, 순환과 무한, 무한과 영원, 영원과 순환. 순환이 영원히 이뤄진다면 순환된다고 할 수 있을까? 죽음이 없다면 삶을 사랑하는 게 가능했을까?
3.아담과 이브는 유리한 점이 많았지만, 그중 으뜸은 그들이 이가 나는 어린 시절을 피했다는 것이다.
이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손가락으로 잡고 흔들어서 빼곤 했다. 성급하게 뺀 자리가 유독 시리고 아팠다. 그 아픔이 사람을 느리게, <느리게 배우는 사람>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4.습관은 습관이다. 그래서 누구도 그것을 단번에 창밖으로 내던질 수 없고, 한번에 한계단씩 아래층으로 유인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의 습관, 인류의 습관, 어쩌면 우주의 습관 앞에서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계단, 그 한 계단이 수학적으로 0으로 수렴한다고 해도 문학은 그것을 0으로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잠든 사이에 머물다 간 입맞춤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 망각은 누군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사실까지 지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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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우정이라는 고귀한 열정은 아주 다정하고, 변함없고, 충직하고, 오래가는 성격을 지닌 것이어서 돈을 빌려달라는 말만 하지 않으면 평생 지속될 것이다.
만약 반대로 친구가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을 한다면? 우리의 우정을 위해 나는 너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겠어,라고 해야 하나...
6.왜 우리는 아기가 태어날 때는 기뻐하고 장례식에서는 슬퍼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을 희망이 없는 절망으로 몰아붙이는 재앙이 있는 이 세상에서 당사자란 말은 얼마나 당사자의 마음을 몰라주고 배반하고 짓밟는가.
7.화가 났을 때는 넷까지 세라. 아주 화가 났을 때는 욕을 해라.
가만히 있어야 할 때 가만히 있고,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할 때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인내를 권하고 가르칠 때 왜 반항하고 저항하는 법은 가르치지 않는가.
8.작가를 틀림없이 즐겁게 할 방법이 세가지 있는데, 그 셋은 뒤로 갈수록 높은 단계를 이룬다. 첫째, 작가에게 그의 저서 중 하나를 읽었다고 말하는 것, 둘째, 그의 저서를 모두 읽었다고 말하는 것, 셋째, 그가 곧 출간할 책의 초고를 읽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첫째는 그의 존경을 살 수 있고, 둘째는 경탄을 얻어내며, 셋째는 당신을 그의 마음에 쏙 들게 만든다.
프린키피아, 특수상대성이론-일반상대성이론 초고를 처음으로 ‘이해’한 사람의 심리변화가 궁금해진다.
9.형용사에 관하여: 아니다 싶을 때는 삭제해버려라.
형용사, 부사는 되도록 적게 쓰고, 명사를 많이 쓰라는 말은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다. 사유는 명사를 타고~
10.용기는 공포에 대한 저항, 공포의 정복이지, 공포의 부재가 결코 아니다. 한 존재가 부분적으로 겁쟁이인 면이 없다면, 용감하다고 이르는 것은 칭찬이 아니며 단어를 느슨하게 잘못 사용한 것일 따름이다. 벼룩을 생각해보라!-공포에 대한 무지가 용기라면, 벼룩은 신의 피조물 중에서 비교할 상대가 없을 정도로 가장 용감한 존재이다. 크기와 힘에서 당신과 벼룩의 관계가 규모가 큰 군대와 젖먹이 아이의 관계와 동일하다는 사실을 전혀 상관하지 않은 채, 벼룩은 당신이 잠들었든 깨어 있든 공격해온다. 벼룩은 항상 위험과 즉각적인 죽음의 코앞에서 하루 밤낮을 살고 매일매일을 살지만, 10세기 전에 지진의 위협을 맞은 돗의 거리를 걷는 사람만큼이나 두려움이 없다. 우리가 클라이브, 넬슨, 퍼트넘을 ‘공포가 무엇인지 모르던 사람들’이라고 일컬을 때, 항상 벼룩을 추가해야 하고, 그 행렬 맨 앞에 세워야 한다.
치킨게임. 목숨을 거는 행위가 곧 용기 있는 행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이의 ‘얼간이’ 같은 치기는 오히려 기형적 용기가 은폐하고 있는 공포를 드러낸다. 어쩌면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이만이 용기 있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11. 10월, 이 달은 주식 투기를 하기에 특별히 위험한 달 중 하나이다. 나머지 달들은 7월,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그리고 2월이다.
유머. 차이를 횡단하는 힘.
12. 당신이 굶주린 개를 구해서 잘 살게 해준다면, 그 개는 당신을 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인간과 개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이다.
‘사람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 많은 이들이 어린 시절 한 번씩 돋보기로 개미를 죽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유아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머리가 커져버린 이들이 많은 약자들을 짓밟고 죽였고, 죽이고 있다, 죽일 것이다. 스스로를 대상의 자리에 놓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 김수영의 시 <절망>은 이렇게 끝난다.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반성하지 않음, 반성불능은 그 자체로 절망이다.
13. 인기도 과해질 수 있다. 로마에 가서 처음에 당신은 미껠란젤로가 죽었다는 사실에 회환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당신은 싫증이 나서 그가 죽는 꼴을 보지 못했다는 것만으로 회한으로 여기게 된다.
최근에 본 영화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그레이트 뷰티>가 생각난다. 어떤 아름다움은 순간에서 태어나 영원에서 죽는다. 만날 수 없는 존재를 영원히 그리워하는 것, 절대적 아름다움은 우리의 시선을 절대적으로 폭력적으로 만든다.
14. 4월 1일. 이날은 우리가 나머지 364일 동안 어떤 사람인지를 상기시켜주는 날이다.
4월 1일 그리고 정치가.
15. 10월 12일, 발견.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경이로운 일이었지만,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더욱 경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상실의 윤리. 우리는 상실한 자들이다. 무엇을 상실했는지 모르는 상실을 상실한 자들이다. 인간은 본디 아무 것도 아닌 존재,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존재로 태어나 소유를 욕망한다.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건 이런 것들뿐이리라. 가령 내가 너를 사랑했다는 사실. 그 소유마저 죽음이 모두 앗아갈 것이기에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사실은 이런 것뿐이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상실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상실했다는 사실만은 상실하지 말아야 한다. 2014년 우리에게 상실하지 말아야 할, 기필코 지켜내야 할 거대한 상실이 겪었다. 이 상실이 상실되지 않도록 우리는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