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 -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글을 씁니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차영지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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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작가라는 걸 알게 되니까 몰입이 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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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 -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글을 씁니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차영지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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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스콧 피츠제럴드는 미국의 소설가다. 1896년에 태어난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제1차 세계대전 후 ‘광란의 20년대’에 두각을 나타냈다. 20세기 초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화려하고 향락적인 재즈 시대의 아이콘이다. 자서전적 소설 〈낙원의 이편〉 (1920)을 발표하면서 비평가와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던 그는 1925년 발표한 〈위대한 개츠비〉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20세기 미국 소설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 받는다. 위대한 개츠비는 어마어마한 작품 같았다.

이후 〈밤은 부드러워〉( 1934)를 발표했으나 상업적으로 실패한다. 잇따른 작품의 실패와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부인 젤다의 병으로 절망에 빠진 피츠제럴드는 회복 불가능한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며 마지막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1940년〈더라스트타이쿤〉을 집필하던 중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이 책을 엮은 사람은 래디 W. 필립스는 저널리스트, 작가, 프로 포커 플레리어다. 〈헤밍웨이, 글쓰기의 발견〉 편집자였고, 그는 위스콘신 주의 몬로에 살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대량생산고 대량소비로 호황이 지속되면서 ‘광란의 20년대 ’라고 불렸다. 피츠제럴드의 경력은 이런 시대적 흐름과 궤를 함께한다. 깁슨 걸이라 불리는 순수하고 이상적인 여성상을 시작으로, 화려하고 요란한 1930년대를 보냈으며, 1940년대의 어둠 속에서 그의 생애는 끝자락에 이르렀다. 흥미롭게도 그의 삶은 그가 태어난 국가의 운명을 거울처럼 비춘다.

그는 언제나 본능적으로 자신이 속한 국가를 반영했다. 또한 스스로 외부 세계와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보통 사람들보다 강하다고 말하곤 했다. 이 경향은 상호적이었다. 그의 명성이 높아지고 그의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면서, 미국이라는 나라도 그를 통해 자신을 투영하려 했다.



이 책은 피츠제럴드가 글쓰기에 관하여 남긴 의견과 통찰을 모두 담고 있다. 이전에 출간된 《헤밍웨이, 글쓰기의 발견 》과 짝궁 책이다. 와 대단한 책이다.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는 사람의 관점은 각기 달랐지만, 다른 작가들에게 아낌없이 조언을 나누었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가진다. 헤밍웨이는 가르치는 일을 즐겼다는 사실은 너무 유명하다. 피츠제럴드 전기를 쓴 안드레 르봇은 피츠제렐드 역시 ‘배운 것을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 이라고 설명하며, 앤서니 포웰의 말을 인용한다.

가장 미국적인 두 작가가 지닌 글쓰기에 대한 신념의 차이가 궁금해진다. 이 두 작가는 세계를 향한 미국적 접근법을 대변한다. 헤밍웨이의 철학은 오늘은 남은 내 인생의 첫날이다라고 했다면 피츠제럴드의 철학은 조금 더 본질적이고 시적이며 헤밍웨이의 것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오늘은 연속적으로 보낸 지난 날들을 끓어내는 날이다.’라고 했다. 그의 철학은 시간이라는 개념과 깊이 얽혀 있어서, 언젠가 말콤코울리는 피츠 제럴드에게 ‘마치 시계와 달력으로 가득찬 방에 사는 사람같다는 ’표현까지 했다.

감정과 경험은 언어 이전의 영역에서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그것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의식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글자를 조합해야 한다. 피츠제럴드는 이 과정을 누구보다 탁월하게 해낸 작가다. 혼자라고 느끼던 감정이 사실은 모두의 보편적 감정이었음을 깨닫는 과정이라고, 그는 문학의 아름다움에 관해서 말한다.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우리가 가진 고독 과 좌절, 희망과 열정이 결코 개인의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는 재즈 시대의 아이콘으로 결코 평탄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운명처럼 글쓰기를 시작했고, 생계를 위해 멈추지 않고 써내려갔다 하지만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세상에 남기는 일’임을 깨닫는다. 피츠제럴드는 문학가의 길이란 결국 자기 자신을 온전히 정제하여 독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로 탈바꿈시킨다고 했다. 또한 자신을 ‘문학적 도둑’이라 칭하며, 어디에서든 배움을 얻었다. 엉망으로 쓰인 책을 읽고 글쓰기에 용기를 얻었고, 위대한 작가의 글을 곱씹으며 위대한 이유를 파고들어 자신의 작품에 녹여냈다.

다른 작가를 경쟁자로 인식하기보다는 같은 소명을 짊어진 동료로 봤다. 그런 시각은 정말 좋은 시각같다. 조언을 구했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자신 역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사소한 것들을 중요한 것처럼 포장하는 게 특기였는데, 그런 책들도 거의 베스트셀러에 가까웠다. 그때 결심하고 책을 쓰기 시작 했다. 책을 쓰려면 메모부터 시작하는 거다. 아마 아주오랫동안 메모해야 할지도 모른다. 무언가 떠오르거나 기억이 나면, 반드시 적절한 자리에 적어 둬야 한다.

생각이 났을 때 바로 적어 둔다. 나중에 다시 떠올리면 처음처럼 생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작가는 무엇 하나 허투루 허비하지 않는다.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를 빨리 완성하고 싶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아름다워도 맥락에 맞지 않으면 잘라내야 한다. 아름다워 보이는 것 , 적당히 괜찮은 것, 심지어 뛰어나 보이는 것도 잘라낼 수 있어야 한다.



예술가의 창작이 지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가는 기존 스타일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듬고,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료를 고르는 것이다. 결국 모든 작가에게 글쓰기는 삶 그 자체나 마찬가지다. 아주 형편없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하지만 결국 대부분 소화하기 쉬운 음식만 곱씹으며 산다. 사건이나 인물은 삶에서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언제나 그가 읽은 최근 작품의 관점에서 그걸 해석한다. 지성인에게는 수준을 낮춰서 글을 쓰는 게 무척이나 어려운 일인데,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랭스턴 휴스나 스티븐 위트먼만 봐도 비극적인 책 한 권 쓰고 소식이 없었다. 왜냐하면 진정한 자아나 정신을 가지지 못한 채 신경질적으로 주린 배만 움켜쥐어야 했기 때문이다. 배가 부르고 허영으로 기름칠을 좀 하고 나면, 세상은 낭만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얄팍한 대중물 말고는 그 어떤 것도 진정성 있게 쓸 수 없게 된다.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의 제본은 다른 책들과 완전히 동일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겉표지랑 책에 찍히는 문양도 동일하게 하지만, 겉표지 추천사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멘켄, 루이스, 하워드, 뭐 이런 사람들 다 필요 없다고 했다.

만일 〈위대한 개츠비〉가 상업적으로 실패한다면 이유는 두 가지중 하나, 혹은 두 가지 때문일 것이다. 첫째, 제목이 그저 그렇다고 생각해 본다. 좋다기보다 오히려 나쁠 것이다. 둘째, 두 번째가 더 중요한 이유인데, 책에는 비중 있는 여성 인물이 전혀 없다. 요즘 소설 시장은 여성이 이끌어 가고 있는데 말이다. 비극적 결말은 사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겉표지 문구를 추천해보자면 ‘활기가 넘치는 초기 작품에서는 전례 없던 도전적인 미국소녀상을 그려냈고, 이후 진진한 분위기의 〈위대한 개츠비〉같은 작품을 탄생시키며 미국의 6대 거장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예기치 못한 전개, 다채로운 빛깔, 그리고 고요와 격정이 교차하는 리듬을 보여준 작가는 지금까지 없었다. 어조는 조금 조정해야겠지만 피츠제럴드는 해냈다. 글을 쓰며 산다는 것은 삶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것이다. 피츠제럴드의 글쓰기는 성실함과 장인정신에서 비롯되었다. 난 저자가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인지 모르고 이 책을 읽었다가 개츠비의 작가인 걸 알고 반가웠다. 항상 유튜버들도 그렇고 상대는 나를 모르지만 나혼자 안다고 해도 혼자서 반갑다. 이 책도 그런 느낌이었다. 개츠비의 얘기를 모두 알아서 저자가 가깝게 느껴졌거 그의 글쓰기가 더 와닿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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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아이가 미래를 지배한다 - 한국 최고의 문해력 전문가 신종호 교수의 자녀교육 특강
신종호 지음 / 시원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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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게 읽고 바로 이해를 얼마나 하느냐인 것 같다. 문해력만 있으면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시험을 보는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잘 읽고 이해하는 방법만 알면 모든 문제점이 끝나는 것 같다. 이 책을 보고 문해력이 뛰어나는 방법이 없는지 찾아보고 싶어서 읽었다. 저자 신종호는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BS〈미래교육 플러스: 문해력〉출연 문해력 전문가, tvN〈유퀴즈!〉출연 서울대 공부법 멘토이다.

저자는 20년 이상 교육심리학을 연구해온 국내 최고의 교육학자로, 서울대학교 사법대학 교육학과 교수이며, 서울대학교 학습창의센터에서 미래 인재의 학습 역량과 창의성 개발을 위한 실천 방안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저 감정적인 사람입니다.》 《이런 공부법은 처음이야》 《교육심리학.》《폭력 없는 행복학교 만들기》《창의 혁명》 등이 있다.

유발 하라리의 통찰은 문해력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인 이해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다. 그가 말하는 문해력은 단순히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넘어, 급변하는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한 종합적인 생존 기술에 가깝다. 이는 마치 디지털 시대의 생존 키트와도 같은 것이다. 새로운 문해력은 비판적이고 사고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끓임없이 ‘이 정보는 믿을 만한가,’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를 판별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소셜 미디어에서 퍼지는 가짜뉴스를 식별하거나, 인공지능이 생성한 콘텐츠의 신뢰성을 평가하는 능력이 문해력이다. 문해력은 창의적 사고력이다. 서로 다른 정보들을 연결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은 미래 사회에서 더욱 중요해진다. 인공지능이 단순 작업을 대체하게 되면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의적인 문제해결과 혁신적인 아이디어 창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경제 포럼은 가장 수요가 많은 직무 역량으로 ‘창의성’과 ‘혁신성’을 꼽을 수 있다.



자기주도학습은 더 이상 누군가가 무엇을 배워야 할지 알려주기를 기다릴 수 없는 시대임을 각성시킨다. 스스로 학습의 방향을 설정하고, 필요한 자원을 찾아 활용하며, 자신의 학습 과정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학습 과정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확장된 개념으로서의 21세기 문해력은 마치 내게이션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불확실성이라는 안개 속에서, 우리는 끓임없이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이때 비판적 사고력은 현재 위치를 발견하게 해주며, 자기주도학습력은 실제로 그 길을 따라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미래 교육은 이러한 종합적 문해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닌,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교육 방법의 변화가 아닌, 교육의 근본적인 패러디임 전환을 요구한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자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넘어서는 복합적인 인지 활동이다. 텍스트의 각 문장, 각 단락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인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빠른 정보 습득과 효율성을 강조하지만, 텍스트와의 깊은 대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지적 마찰’은 오히려 우리의 사고를 더욱 깊고 풍부하게 만드는 촉매체가 된다.

텍스트의 난해한 부분을 만났을 때, 우리의 뇌는 적극적으로 활성화된다. 우리의 뇌도 이러한 도전적 상황에서 가장 활발하게 발달한다. 글의 맥락을 파악하고, 숨겨진 의미를 해석하며, 경험과 지식을 연결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귀중한 학습 경험이 된다.

읽기의 중요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깊이 있는 독서 활동 중에는 전전두엽의 활성화가 현저히 증가하며, 이는 단순한 생리학적 현상이 아니다. 뇌가 더 복잡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발달시키고 있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 이러한 뇌의 활성화는 인지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반면, 요약본이나 짧은 글만을 접하는 경우, 이러한 인지발달의 기회를 잃게 된다. 예상치 못한 만남을 통해 시야를 넓히듯, 책 속에서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고 사고의 지평을 넓혀가는 여정 자체가 독서의 진정한 의미가 된다.

문해력에서 가장 기본적인 단계인 표면적 처리는 단순히 글자의 모양을 보는 것이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으로 빠르게 스크롤을 하며 보는 것이다. 수많은 정보들을 스쳐 지나가듯 보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표면적 읽기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흔한 소비 방식이지만, 진정한 이해와 학습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뇌에 더 깊은 흔적을 남기게 된다. 연구에 따르면, 소리 내어 읽기는 특히 어린 아이들의 언어 발달과 읽기 이해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세계적인 요리사의 레시피를 수백 번 읽는 것과, 실제로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해보는 경험이 다르듯이, 텍스트를 단순히 들어가 요리를 해보는 경험이 다르듯이, 텍스트를 단순히 읽는 것과 텍스트와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읽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학습을 가져온다. 마치 요리할 때 재료의 상태를 판단하고, 불의 세기를 조절하며, 양념의 균형을 맞추는 것처럼, 능동적인 독서 과정에서는 텍스트의 맥락을 파악하고, 숨겨진 의미를 추론하며, 작가의 의도를 해석하는 등 수많은 인지적 판단과 조정을 이루어진다.

독서도 요리와 비슷하다. 단순히 텍스트를 읽고 내용을 암기하는 것은 레시피를 읽기만 하는 것과 같다. 실생활의 예시를 찾아보며, 다른 텍스트나 지식과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과정은 실제로 요리를 해보는 것과 같은 깊이 있는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이러한 생성적 읽기를 통해 우리는 텍스트의 표면적 의미를 넘어 심층적 의미에 도달할 수 있다.



뇌과학 연구는 이러한 생성적 독서의 가치를 과학적으로 입증한다. 특히 고차원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과 기억 형성의 중추인 해마가 적극적으로 활성화되면서, 더 강력한 지속적인 신경망 연결이 형성된다고 한다. 생성적 독서 과정은 우리 뇌에 더 선명하고 견고한 ‘독해의 길’을 만든다. 텍스트의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다시 표현하고, 다른 텍스트나 지식과 연결 짓고, 실생활의 예시를 찾아보는 과정은 이 길을 더욱 단단하게 다지는 작업이다.

문해력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만약에’ 질문도 매우 유용하다. 가정적 질문들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새로운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바라보게 한다. 이는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성을 동시에 키우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문해력 발달에서 이 말은 더욱 절실한 진리로 다가온다. 마치 거울처럼, 아이들은 부모의 모든 행동과 태도를 섬세하게 반영하며 성장한다. 특히 독서 습관과 학습 태도는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바로 자녀 교육에서 부모의 역할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다.

부모의 행동이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놀랍다. 매일 스마트폰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부모와, 소파에 편안히 앉아 책을 읽는 부모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전자의 경우, 아무리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해도 그 메시지는 공허하게 들릴 것이다. 이는 채소를 먹으라고 하면서 정작 본인은 패스트푸드만 먹는 부모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아이들의 예리한 눈은 이러한 불일치를 즉각적으로 감지하며, 이는 교육의 효과를 크게 감소시킬 수 있다. 자녀의 독서동기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부모의 역할이다.

아이들의 독서 성취는 인지적 능력뿐만 아니라 정의적 요인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부터 독서에 대한 태도와 자신감이 읽기 능력과 상관관계를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부모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아이들이 독서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형성하는 결정적 시기에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자를 읽고 쓰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퍼즐을 맞추듯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며 , 때로는 미로를 탐험하듯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모험이다. 이러한 도전적인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실수해도 괜찮다는 안전감이다.

아이들의 자유롭게 생각하고, 질문하고, 때로는 틀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진정한 배움이 시작될 수 있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자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훨씬 뛰어 넘는 개념이다. 글 것은 마치 깊은 바다를 탐험하는 것과 같다. 표면적인 의미를 넘어 텍스트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고, 그속에 담긴 맥락을 파악하며, 문해력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고 가치 있는 정보를 선별하는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다. 저자가 문해력이 요리와 비슷하다고 비유를 해줬는데 그 점이 정말 와닿았다. 책을 읽는 것은 요리를 하듯이 직접 해보는게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책으로 요리를 하는 것과 같이 책을 들고 읽으면서 일허게 저렇게 머리를 굴려봐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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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공화국 - 법은 정의보다는 출세의 수단이었다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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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난 이번 계엄 전에는 판사가 법치에 따라 정의와 공의에 따라서 판결을 내리는 줄 알았는데 정치성향과 고향에 따라서 판결을 한다는 걸 알고 법치가 무너지고 다시 대한민국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틀러도 법에 따라서 정당하게 지도자가 되었는데 법이 잘못되면 파시즘이 나올 수 있고 부당한 지도자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악법이 하루에 40개씩 만드는 국회의원들을 보면 억대로 받는 국민의 하인, 일꾼일뿐인 사람들이 국민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법조인들도 카르텔로 성향에 치우친 판결을 하는 걸 보면서 대한민국이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저자 강준만은 양쪽을 까는 책을 써서 양쪽의 문제를 알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이 책을 보고 법조인 카르텔을 끓는 방법과 아이디어를 얻고 싶다. 난 대한민국을 가장 사랑하고 산불 때문에 힘든 국민들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쎈 비가 내려서 불이 전부 꺼졌으면 좋겠다. 그런 예산을 줄인 국회의원들도 절대로 용서를 못하겠다. 잘못하는 국회도 국민들이 해산할 수 있고 탄핵할 수 있는 법안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저자 강준만은 전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이다. 정치, 사회, 역사, 문화 등 분야와 경계를 뛰어넘는 전 방위적인 저술 활동을 해왔으며, 사회를 꿰뚫어보는 안목과 통찰을 바탕으로 숱한 의제를 공론화해왔다.

한국 사회에서 법은 정의보다는 출세와 특권의 수단으로서 그 가치가 더 높았다. 1980년 10월 제22회사법시험에 합격한 박원순은 2003년 사법연수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여러분이 판검사라는 되더라도 축하해 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판검사라는 지위에 도취되어 인생의 겸허함이 사라지는 모습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안락한 생활과 사회에 대접에 안주해 덕없는 자기기만에 빠지는 모습을 자주 접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박원순은 젊은 나이에 잘나가는 변호사 부자가 되어 있었다. 기사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탔고, 다른 사람들은 뭔지도 모르는 휴대전화를 사용했고, 제법 큰 단독주택에서 여유 있는 생활을 했다.

박원순은 자기 집을 키우고 좋은 자동차를 타고별장을 사고 운행에 두둑한 통장을 두는 것은 하나의 탐욕의 길이었다. 그것보다는 가난하고 억울하고 약한 사람들과 함께 그들을 부축하고 그들을 돕는 것이 훨씬 보람 있고 재미있는 길이었다. 그래서 시민운동가가 되었다고 하는데 하나도 신뢰가 안 가는 얘기들이다. 인생 막판에 성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박원순처럼 뒤늦게 무소유의 길을 걸은 사람은 거의 없었고, 그의 이런 증언마저 사법고시가 ‘코리안 드림’을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속성코스라는 걸 말해주는 ‘사회적 증거’ 로 여겨졌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진보를 버린 이유는 너무나 많다. 좌파들은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행동들이 모순이고 하나도 안 맞아서 싫고 신뢰를 못하겠다. 그건 보수정치가들도 마찬가지라서 국힘도 싫고 민주당도 완전 다 싫다.



박원순은 권력욕이 강했기에 나중에 서울시장이 되었고, 대권에 대한 꿈도 꾸었다. 권력으로 공동체를 위한 좋은 일을 하려는 꿈이겠지만, 정치인치고 그렇게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그 진정성을 판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의 행보를 봤을 때 진정성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판명이 났다. 사법고시에 합격해 ‘코리안 드림’을 이룰 수 있는 최상의 속성코스를 내달리게 된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지배하게 된 이데올로기는 특권의식이다. 검찰공화국주창자들이 자신들이 불만을 느끼는 극소수의 검사, 아무리 많이 잡아도 전체 검사의 겨우 몇 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검사들을 비난하기 위해 전체 검사를 비난하고 모욕하는 것과 비슷했다.

비난받을 만한 특권의식을 갖고 있고 그걸 실천하는 극소수 검사의 일탈적 행위가 검사의 전체 이미지를 대표하는 것, 이는 모든 권력가의 공통된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문재인은 학생 시위로 인해 갇혀 있던 경찰서 유치장에서 사법고시 합격 소식을 들었다. 이는 경희대의 경사였던지라 경희대 학생처장, 법대 동창회장 같은 분들이 면회를 와서 축하를 해주었다. 유치장 안에서 소주와 안주 등으로 조촐한 축하파티를 벌일 수 있게끔 ‘특혜’를 베풀어 주었다. 문재인의 말마따나 ”경찰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요즘 유튜브에서 문재인이 중국과 북한에 대한민국을 완전히 팔아 넘겼다는 영상이 너무 많다.

열린 우리당 의원 최재성은 “서울대 학생들이 전공을 불문하고 고시 준비에만 매달리고 서울대가 인재를 거의 독점하는 현실에 서울대생들이 다양한 분야의 핵심역량으로 성장하기보다 고시 준비에 뛰어드는 것은 국가 차원의 기회비용 손실”이라고 말했다. 잘못된 세상을 탓해야지, 어찌 서울대생들을 탓할 수 있으랴, 사법고시가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건 이미 충분히 입증된 사실이다. 소위 ‘진보적’ 이라는 법조계 인사마저 고위공직에 임명될 때마다 변호사개업 시절 1년에 10억대니, 20억대니 하는 거금을 벌었다는 게 밝혀졌는데, 어찌 사법고시를 외면할 수 있었으랴.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는 순간, 사람들의 눈총을 받던 실업자에서 5급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받게 된다. 사법연수원 1년을 마치고 2년차가 되면 직급이 다시 올라가 4급이 된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사무관이 4급 서기관이 되는 데 10여년이 소요되는 것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승진이다. 그리고 연수원 수료와 동시에 3급이 되니, 사람팔자 시간문제라는 건 이걸 두고 한 말이다. 제 33회 사법시험 합격자이자 한동대 법대 교수인(현재는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두식이 2004년 6월에 출간한 『헌법의 풍경: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이라는 책을 보면 그간 우리는 법조왕국을 법적•정치적으로는 많이 탐구해왔지만, 문화사회학적 연구는 비교적 등한시해왔다. 나도 이 책을 읽은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난다.

김두식은 『불멸의 신성가족: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2009)을 통해 법조공화국에 대한 문화 사회학적 연구를 본격적으로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두식은 『헌법의 풍경』에서 한국 사회가 사법고시합격자를 어떻게 버려 놓는지 그걸 실감나게, 그리고 아주 재미있게 묘사했다. 고시 낙방 경험이 여러 차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바퀴벌레나 파리처럼 느껴진다는데, 그 시점에서 들려온 합격 소식을 이들의 정신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김두식은 이전과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이전에 자신을 우습게보던 주변 사람들은 그 친구가 역시 뭐가 달라도 달랐어’ 라며 축하와 경의를 표한다. 가족들은 선조의 묘소에 모여 만세를 부르기도 한다. 신분이 수직으로 상승하는 이런 경험은 우리들의 정신세계에 충분히 나쁜 영향을 끼친다.

시험에 합격한 내면에 자신은 남과 다르다는 의식이 자리 잡는다. 스스로를 벌레처럼 느끼게 하던 심리 공간을 특권의식이 메워가게 되는 것이다. 겉으로는 늘 겸손한 사람이지만 내면세계는 땅값 상승으로 한 몫 잡게 된 졸부들의 그것과 갈수록 비슷하다. "사법부 신뢰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골찌 수준이고, 대법원이 검찰과 함께 경찰보다 낮은 신뢰도를 기록했다. 그런데도 사법개혁은 없다. (세명대 교수 이봉수) (영국의 레가툼 번영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사법체계와 법원에 대한 신뢰도는 전체 167개국 가운데 155위로 거의 바닥을 찍었다. 이런 불신에도 한국은 법조인들이 점령하는 국가가 돼가고 있다.”(서울대 교수 한승희)

이렇듯 사법부 신뢰도가 바닥을 기고 있는 중 하나는 늑장 재판이다. 헌법 제 27조 제 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행법은 민사소송은 1심과 항소심 각각 5개월 이내에, 형사소송은 1심 6개월, 항소심 4개월 이내에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판 지연은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에 악화되었다.



법관이 재판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고 인권을 구제하는 최후의 보루다. 재판이 늦어지면 어떻게 되겠나, 재판 지연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키울 뿐 아니라 국가의 권위와 위상을 위협한다. 대한민국은 어떤 대표의 5년 이상 재판 지연을 경험했다. 재판 지연은 사법부에 재판 지연을 경고하고 구속 기간 안에 판결을 의무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만성적 재판 지연은 민주주의 마지노선인 사법부를 무너뜨리고 국가 존립을 위협한다. 김명수가 사법 민주화라면서 도입한 법원장 후보 추천제와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 폐지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각 법원마다 소속 판사들이 투표를 통해 법원장 후보를 복수로 선출하면 대법원장이 한 명을 법원장으로 임명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김명수는 퇴임 직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재판지체가 심각해진 것은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사법부 신뢰도 추락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늑장 재판과 더불어 재판 결과에 대한 불신이다. 무엇보다 판사의 이념이나 정치적 지향성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의심이 강하다. 한국은 파벌주의가 극심한 나라라는 건 인정해야 한다. 대법원장이 되면 국제인권법연구회를 끓어낼 수 있느냐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4년 후엔 이런 기사가 나온다. 국제인권법연구회소속 판사들이 최고 법원인 대법원에서부터 중간 간부 주요보직에 대거 진출했고 일선 판사 회의체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인권법연구회 판사들이 김명수 사법부의 요직 곳곳을 장악하고 기득권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비판적인 『조선일보』는 국제인권법해체를 요구하는 사설을 쓰기도 했다. 지금 변호사 업계에선 인권법연구회명단을 구하려고 난리다. 변호사들은 사건을 맡으면 판사가 인권법이냐 아니냐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진다고 했다. 이 정도이면 법치국가라 할 수도 없다. 김명수의 사조직이자 정권 호위부로 낙인 찍힌 인권법연구회는 당장 해체해야 한다. 미국, 영국 뉴스에서 대한민국의 대통령 탄핵은 중국세력의 개입이 있다고 했다. 그 중국세력의 영향을 받는 세력이 가장 정의롭고 공정해야 하는 법조계라는 게 너무 안타깝다. 이 책을 보니까 그런 성향을 더 잘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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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 - 개정증보판
강형원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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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을 사진이랑 설명을 같이 곁들이니까 이해가 더 잘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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