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동물이 짧은 거리에서는 빠르게 달릴 수 있지만, 장거리에서는 인간보다 훨씬 먼저 지치고 만다. 이 차이 덕분에 인간은 사냥감을 지치게 만들며 끝까지 추적하는, 일종의 지구력 기반 추격사냥을 할 수 있었다. 인간보다 훨씬 매머드를 사냥할 때도 역시 횃불과 고함 소리로 오래도록 몰아붙여, 결국 탈진한 메머드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와 같은 신체적 힘과 권력 사이의 자연스러운 연결고리는 ‘원거리 무기’의 등장으로 크게 악화되었다. 오늘날 어린아이조차 총을 가지고 놀다 우연히 성인 남성을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침팬지새끼가 주먹질을 하다가 성체 침팬지를 실수로 죽이는 일은 없다. 정리하자면, 유연한 어깨 관절과 직립 보행은 인간에게 생물학적으로 권력을 부여했다.
하지만 원거리 무기의 발명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신체적 힘과 권력의 결합을 해체했고, 그 결과 인간 사회에서는 지적 능력, 즉 전문성이라는 새로운 권력 자원이 무대의 중심에 오르게 되었다. 경쟁은 생리학적으로도 영향을 미치는 전형적인 권력 상황이다. 경쟁 끝에는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나뉜다. 패배는 손실을 동반하며, 그 손실은 경우에 따라 지위나 권력 자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패배했을 때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더욱 높게 나타난다.
반면 전반적으로 권력을 덜 추구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승리했을 때 더 높은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왜일까? 승자는 주목을 받게 되고, 다음에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게 되며, 저 큰 책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권력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실제로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독재자들은 평균보다 더 높은 확률로 비자연적인 방식에 의해 생을 마감한다.
이러한 스트레스 가능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 ‘절대적이고 안정된 권력’을 갈망하게 된다. 그러나 절대 권력은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무력감과 권력 상실을 강요한다. 권력은 인간을 시험하는 가장 강력한 심리적 장치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어느 순간 권력을 갖게 된다. 권력을 쥔 사람은 변한다. 더 충동적으로, 더 둔감하게, 더 잔인하게, 공감은 사라지고 판단은 왜곡되며,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우리는 누구나, 권력 앞에서 괴물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하나다. 그 힘을 다르게 사용할 수는 없는가? 난 다르게 사용할 수 있다고 대답하고 싶다. 권력을 가진 자라면 애국, 옳은 사상, 옳은 이념, 반국가세력 척결, 반공, 멸공,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유를 위해서 권력을 사용하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