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선생님이 되는 데 필수 과목을 이수하지 않으면 공립학교 선생님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사립은 학교 재량껏 필요한 선생님을 구할 수 있다. 한국과는 다른 시스템이라 처음엔 저자도 의아해 했다. 사범대를 졸업하지 않고 공립학교 선생님이 된다는 게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미국은 학부 때 교직 과목 한 과목 정도만 이수하면 공립학교 선생님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한국에서는 일곱 살 아이가 혼자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녀도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그런 때였다. 학교가 끝나고 길거리표 떡볶이를 친구들과 먹고 왔다고 말하면 ‘참 잘했어요’ 했으니 말이다. 미국에서 일곱 살짜리 아이가 혼자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고 하면 아마 아동학대로 감옥에 가고도 남을 일이다. 문화의 다름이 이런 데서 삐져나온다.
한가한 일요일 오전이 지나면서 그날도 떡볶이를 먹으러 내려오라며 아이들을 불렀다. 여전히 잠들어 있는 둘째와 막내는 내려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느림보들이지만 큰아이는 부르기도 전에 항상 준비하고 있던 아이처럼 웃으며 쪼르르 내려왔었다. 둘째와 막내는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연속으로 불러대니 아이가 힘없이 내려와 식탁 앞에 앉는 것이었다.
큰 아이가 10학년 그러니까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1학년 때다. 평소엔 울음이 많은 아이가 아니었고 뭐든 혼자서 잘 해결하는 든든한 장녀였다. 그런 아이가 울면서 엄마에게 호소하는 모습을 보며 내심 당황스러웠다. 아이는 친한 친구와 싸움을 한 차례 한 이후 극심한 문자 폭탄에 시달리며 상처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 아이는 학교 친구들에게 저자의 큰아이에 대해 나쁘게 말하며 욕을 한다고 했다. 심지어 학교 회장 선거 때도 저자의 딸을 찍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그런 말들은 사춘기 아이들이 겪는 이상 행동으로 치부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큰 아이의 그 일이 원만하게 해결된 중심에는 떡볶이의 힘이 있었다고 본다.
매주 함께 모여 떡볶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식구 모두가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의견을 교환하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었다. 그 전통은 큰아이의 일을 시작으로 둘째, 막내까지 자신의 이야기들이 수면 위로 올려져도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모든 게 잘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매주 반복된 ‘떡볶이 식탁’은 가족에게 훈계의 자리가 아닌 아이들이 다시 중심을 잡는 교육의 구조였다. 아이마다 다른 속도와 재능을 인정하고, 통제보다 신뢰를 선택한 부모의 태도는 아이들이 각자의 길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떡볶이 한 그릇에 담긴 따뜻한 위로와 명쾌한 교육 인사이트 공부보다 먼저 아이의 방향을 붙잡은 이민 가정교육의 시작점이자 세 아이를 미국 명문대로 이끈 한 가정의 반복된 선택, ‘떡볶이 식탁’ 성취보다, 균형을 우선한 큰 아이, 세계적인 의과대학인 존스 홉킨스 출신의 성형외과 의사,
같은 환경, 다른 접근이 필요했던 둘째아이, 미국 상위 로스쿨인 버지니아대학원 로스쿨 재학생 겸 모델, 과잉보호를 경계하며 키운 막내, 아이비리그의 브라운 대학 및 세계적인 미술대학 리즈디 재학생, 세 자녀가 거둔 눈부신 성취 뒤에는 강요된 학습이 아닌, 아이 안에 숨겨진 잠재력에 눈을 뜨게 만든 교육법, 그 중심이 바로 떡볶이라는 키워드가 숨겨져 있다.
매주 일요일 매콤달콤한 떡볶이를 앞에 두고 둘러앉아 낯선 땅에서 느꼈던 비애와 폭발하는 감정들을 가감 없이 공유했던 시간, 가족이 화합하고 단합하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거룩한 의식의 장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떡볶이라는 단어를 보니까 떡볶이가 먹고 싶어졌다. 내일은 떡볶이를 배달시켜 먹어야 할 것 같다. 저자는 아이들과 떡볶이를 먹으면서 나눈 얘기로 정서를 잘 가꿔줘서 미국에서 초엘리트로 키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