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웃음과 눈물의 낙원 ㅣ 올-타임 1
전경린 지음 / 김영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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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웃음이 있는 곳은 틀림없이 낙원이겠지요. 고운 눈물이 메마르지 않은 곳도 그렇고요. 그리운 시절을 가만히 꺼내보거나, 꿈으로 재현해서 재회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의 유년 시절을 만나는 일은 조금 설레고 많이 궁금합니다. 읽다 보면 잊힌 제 유년의 상세함도 조금 더 채워지리라 기대합니다.



 

“세월이 흐르고 흐르면서, 내 기억의 가장 깊은 바닥에 깔린 감꽃들은 보석인 양 휘황하게 빛나고 있어.”

 

어릴 적에는 애벌레에서 번데기 과정을 거쳐 성체로 ‘변신’하는 불연속적인 삶을 사는 존재들이 신비로웠습니다. 인간은 연속적인 성장 곡선을 유지한다고 이해했고요.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외향은 그렇게 성장하고 노화될지 모르나, ‘존재’는 꼭 그런 방식이 아닌 듯합니다.

 

어릴 적 ‘나’를 기억해보면, 지금의 나와 동일한 존재라고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더 생각해보면, 삶의 여러 순간들에 ‘나들’은 어떤 의미로 이전과는 다른 존재로 살아가기로 선택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변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기억이 재구성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내내 그리워하는 습성이 더 신기하기도 합니다.

 

“세월이 지나 왜 나는 다른 내가 아니고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나선형의 기억을 따라가면 여기서부터 거기에 갈 수도 있을까.”

 

개천 자맥질, 넓적 바위 위 미용실, 세상 이치가 그렇다고 말해주는 어른, 온동네 어른들이 마당에 멍석을 깔고 이야기하는 저녁, 온동네 아이들이 불을 피워 야간 놀이하는 마을, 바랭이풀 우산, 풀꾹새, 홍시의 맛이 주는 위로…….

 

어른 전경린이 기억처럼 풀어 낸 어린 새별이의 세상에는, 저는 몰라서 부러운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상상하고 시기하느라(?) 작고 가벼운 책을 오래 읽었습니다. 완벽한 세상이 없다면 낙원도 없는 거겠지만, 불편하고 아프고 불온해도, 성격도 결점도 제각각이라도, 이 풍경 속 사람들은 서로를 헤아리고 알아가며 함께 살아가고 필요할 때 돌봅니다.

 

“가만있는 사람이나 산 생물을 잘못되게 하고 , 마음 상하게 하는 짓이 해코지다.”

 

반짝반짝 새별이는 크게 울기도 잘합니다. 맹랑한 소리도 잘 해서 멋집니다. 그 새별이의 기분과 생각을, 어른 전경린의 더없이 감각적이고 자연과 공명하는 방식의 글이 아름답고 안타깝게 그려냅니다.

 

그런 문장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어려서 몰랐던, 내게는 없었던 순간들과 존재들을 또 부러워하며, 함께 두려워하고 외로워하고 슬퍼하고 서러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잊고 산 어떤 기억들이 살그머니 떠오르기도 합니다.

 

복잡한 일과 복잡한 기분을 싸안고 견디다 보면, 문득 탁 떨어뜨려서 차라리 깨버리고 싶은 못된 기분도 듭니다. 그런데 이 소설이... 그런 약골인 존재지만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크게 모자람이 없다고, 그런 토닥임을 건네는 듯해서 살짝 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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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집 - 재일 이주 여성의 자리를 엮다
조경희 지음 / 사계절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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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내부에도 얼마나 많은 실금과 빗금들이 있을까, 상상할 때마다 꼼짝 없이 그 줄에 걸린 듯 답답합니다. 다른 한편 상상할 필요조차 없이 굵고 단단한 줄들, 그 경계 밖에 존재할 것을 강요받은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낮고 작은 목소리들을 선명하게 기록한 책이 반갑고 감사합니다. 귀한 배움의 기회로 삼아 일신의 불평을 잠시 놓고 찬찬히 읽습니다.




 

“디아스포라에게 고향은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신화적 장소이다. 귀환은 정체성의 결여를 채우는 종착점이 아니라 새로운 경계와 마주하는 또 하나의 시작이다.”

 

성장이란 건, 양육자를 떠나, 생가를 떠나, 고향 혹은 제 나라도 떠나 살게 될 수도 있는 사건이다. 떠나서 좋은 이들도 있겠지만, 일련의 이별은 그리움을 품게도 한다. 내 그리움의 성격은 대개 homesick보다는 nostalgic이었다. 부재를 선명히 인지하지만 그리운, 그 인지로 인해 아슬아슬하게 슬퍼지는.

 

재구성을 거듭하는 기억 속 ‘고향’은 내게는 빛나고 행복한 내용일 수 있으나, 그렇게 기억될 수 있게 한 많은 수고는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와 불평등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모든 수고를 감당한 분들이 가장 애틋하게 그립다.

 

떠난 분들을 강렬하게 기억하고 때로 재현해보는 내 기억 속 고향은, 그래서 부재와 상실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현실의 어디로도 ‘귀환’할 수가 없다. 그 비숫한 고향의 복원이란 현존하는 이들이 친밀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새로운 시공간을 만드는 노력뿐이다.

 

“한국 거주 재일조선인, 즉 ‘재한 자이니치’라는 낯선 삶의 제도적 조건과 일상의 경험에 대해 말하려 한다.”

 

나의 상실과 부재를 몇배나 농축해서 느낄 것 같은 이들을 이 책에서 만난다. 선명한 공간적 경계를 넘나들며 축적된 경험, 그 경험으로 인해 평생 어디서 산다고 해도 ‘진짜 한국인’이 되기는 어려운 이들 - 그럴 필요도 없지만.

 

이분들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혐오 정동”과, 실패를 보장하는 갖가지 정책들을 경험한 역사의 증인이다. 동시에 낡고 그릇된 절대화와 치명적 좌절을 경고하고 되짚어 재사유와 질문을 이어가는 이들이다.

 

“한국에서는 반공주의나 가부장제(여성혐오)의 영향이 짙게 반영되었다면, 일본에서는 식민주의/인종주의(혐한)가 역사적으로 형성된 이데올로기의 핵심이었다.”

 

지극히 사적인 경험도 있겠지만, 혐한 - 혐오 - 은 그렇지 않다. 혐오는 감정이지만, 그 분출은 타자 집단을 위계로 누르는 장치로 작동한다. 게다가 혐오 - 증오 - 는 감정이지만, 즉발적인 표현 행위가 아니라, “훈련되고 양성된다.” 더구나 현대사회는 혐오발언이 무한 확산되고 무한 재생산되는 온라인 소통 방식을 갖췄다.

 

말로써도 상대를 죽일 수 있다. 심각하게 존엄성을 훼손할 수 있다. 한탄스럽게도 이를 선거 전략으로 활용하는 비열한 정치인들이 있다. 휩쓸리지 않고 저항하는 지성은 역사를 보는 방식으로도 깊어질 수 있다. 그리고 매번 정확하게 물어야 한다. “누가 누구에게 공포를 말하는가. 그것은 타당한 공포인가.”

 

“타자성을 지우거나 평균의 서사로 환원하지 않고, 그 어긋남과 불일치를 견디면서 서로를 ‘듣는’ 조건을 마련할 수 있는가.”

 

아무 때나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아도, 동일한 존재란 없다. 서로 다른 존재의 생존 방식은 필연코 “ 차이를 매개로 연결되는” 것이어야 한다. 한 사람의 삶도 출발과 도착이라는 직선으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디아스포라의 삶 역시 “하나의 기원에서 출발한 이산과 수난, 그리고 귀환의 서사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만남과 대화를 통해 공통의 언어를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공들인 논문집 같은 이 책이 그 먼 길에 힘과 의지가 될 것이다.

 

“집은 그곳으로 향하는 길 위에, 그리고 그 길에서 벗어난 이후의 삶 속에 흩어져 있다.”

 

* 본 리뷰는 사계절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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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바꾼 지구의 역사 - 식물과 동물, 그리고 진화의 위대한 로맨스
라일리 블랙 지음, 조정남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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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고 장대한 과학적 상상력이 재구성한 이야기는 최고의 판타지 문학처럼 설렙니다. 아주 오래 기다린 설레는 주제입니다.





“지구에서 식물의 역사를 떼어놓고는 우리 행성의 생명체를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


한 인간 개체에 비하면, 비교불가하게 오래 된 지구... 그리고 등장한 모든 생명체들은 그 시간 동안 필연적으로 변하고 현실적으로 멸종을 맞았다. 멸종은 늘 현재 진행형이고, ‘대멸종’이라 불리는 시기처럼, 현존하는 생물 대다수가 사라지기도 한다.


기록도 화석조차 없는 아주 오래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당시의 생명체들과 서식 환경까지 이해하는 것은 그래서 ‘전적으로’ 상상력에 의존한다. 과학사 책을 읽는다고 생각했지만, 많은 내용이 마치 영화처럼, 새롭게 재구성된 다큐멘터리처럼 흐른다.


“우리의 현재 모습은 우리의 선택이나 우리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현재도 진행 중인 식물과 함께한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식물이 주인공처럼 들리는 제목이지만, 읽다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개별적이고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었고 있는 생명이란 없으니까. 세계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자국의 역사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내용은 더 흥미롭다.


산호를 만들지 않은 초기 광합성 생물들 - 광합성은 식물의 전유물이 아니다 - 이, 고대 광합성 생명체들이 1억 년 이상 바다와 땅의 경계에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놀라운 - 나만 모르던? - 내용, 그렇게 생명은 단지 행성에서 살아간 것이 아니라 지구 행성 자체를 변화시켰던 시간들, 그렇게 진화를 거듭해서, 식물은 마침내 수많은 다른 생물이 사아갈 수 있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


“기후는 생명체에 일어나는 어떤 사건이 아니라, 지구의 생명체들과 자연환경 사이의 끝없는 상호작용의 일부다.”


끝없는 상호작용 - 늘 호혜적이지는 않은 - 의 일부로 오래 살아남으려면 ‘유연성’이 필요하다. 예측 불가한 미래에 대응하기 위해 진화는 ‘엉성한’ 방식을 취한다. 그 빈틈이 생존을 위한 유연성을 보장하도록.


아무리 잊지 말자고 해도, 게으른 뇌는 자꾸만 현실을 단순화시킨다. 직선적인 사고가 편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다시 정직한 관찰로 돌아가서, 지구와 생명의 역사와 현실을 보면, 전혀 다른 무늬를 알아차릴 수 있다. 생명체들은 한 줄 서기를 하지 않는다. 완전한 분리란 불가능하게 얽혀 있다.


“나와는 너무나 다른 삶을 알아차리고, “너에게 삶은 어떤 것인가?”라고 물어보는 것. (...) 삶은 엉망이고, 기이하며, 끈질기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다양하다.”


종중심주의를 벗어날 수 없으니, 사고를 확장 해봐도 인간의 삶으로, 인간의 질문들로 돌아온다. 그럼에도 책 속에서 함께 한 오랜 산책이 편협한 뇌에 여러 다른 갈래의 작은 길을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유연한 연대... 그런 초록한 생명살이를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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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의 세계 - 보이지 않는 숨, 질병, 그리고 생명의 역사
칼 짐머 지음, 이상훈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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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쪽이 넘는 기분 좋은 두꺼운 책, 오랜만이다. 공기호흡을 하는 존재임에도, 호흡량이 식사량보다 많음에도, 주저 없이 공기를 오염시키는 무시무시한 인류 문명... 탐정 소설처럼 재밌다니, 이정모 관장님 추천이라니 기대가 크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공기라는 공간 전체에 가득한 생명체를 에어로바이옴, 즉 공기 생물군계라고 부른다.”

 

미생물학 강의를 들은 대학 시절 친구는 그 후 며칠을 식사를 제대로 못했다. 인간의 감각들이 일상적으로 감지하지 못하는 영역의 지식이 초래한 부작용이었다. 못 보고 못 듣고 못 맡지만 존재하는 것. 인간의 ‘의심’은 감각의 한계를 벗어난 세계를 기어이 밝혔다.

 

낯선 학자들의 이름이 가득한 책 속에서 의구심을 연구와 실험을 통해 확신 가능한 사실로 밝히는 이들의 얘기는 흥미롭고 재밌다. 감각 기관의 기능을 증폭시키는 기계 장치들을 만들어 보고야 마는 집념. 그렇게 공기 중 많은 입자들이 인간의 사진에 찍힌다.

 

“아마토는 결국 구름이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퓌드돔 상공을 떠다니는 안개 한 티스푼마다 수천 개의 미생물이 들어 있었다.”

 

물리학과 화학의 틀에서 세상을 보는데 익숙한 나는, 공기를 떠올리면 분자량이나 기체 배율 혼합 등을 먼저 떠올리지만, ‘공기’는 그 자체로 생태계다. 날아다니는 생명체가 가득한 한시적인 생태계다. 애초에 해양의 생명체들이 파도에 의해 공기 중으로 부상해서 육지로 이동하지 않았다면, 땅에는 생명이 없었을 것이다.

 

덥고 가물 때 육지 생명체들이 간절히 바라는 비도, 겨울을 포근하고 아름답게 만들고 식물의 발아에 필수인 수분을 보충해주는 눈도, 그렇게 부상한 후 구름을 이루는 물방울에서 사는 다양한 생명체들 - 곰팡이나 조류, 꽃가루, 지의류, 곤충, 세균, 바이러스 등 - 이 응결핵이 되어 주어 발생하는 기상 현상이다.

 

“구름을 이루는 물방울에는 다양한 분자가 들어 있으며, 일부 미생물은 이를 이용해 성장할 수 있다. 구름을 먹고 사는 것이다. (...) 구름 속 미생물은 매년 100만톤의 유기 탄소를 분해하고 있다.”

 

오래 전 생태학을 공부할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 중 하나는 “구름이 미생물의 이동수단”이라는 점이었다. 이 책을 통해, 구름은 단지 이사를 돕는 것만이 아니라, 구름 자체가 다양한 생명 활동을 보장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새롭게 배운다.

 

인간은 국경선을 만들고 이동을 권리로 명시했지만, 수십억 년 동안 수많은 생명체들은 공기 중에 살며 국경 없이 이동했다. 과학의 장점, 과학서를 읽는 즐거움은 일상을 사는 우리를 잠시 지구생태계 시스템에서 가늠해보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에어로바이옴에 대한 인간의 영향력은 구름에까지 미치고 있다. (...) 머리 위를 떠다니는 평범한 구름 하나에 1조 개가 넘는 항생제 유전자가 들어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 비가 올 때 인간은 우리가 직접 만들어낸 DNA의 빗줄기 속을 걷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과학서지만, 과학계 내부의 갈등, 행정과의 불화, 지식과 음모의 괴리 등 다양한 해당 사례를 보여주며, 무엇이 공중보건의 문제인지, 왜 방역을 개인의 책임에만 맡겨서는 안 되는지, 사회가 설계해야 할 인프라가 무엇인지를 제기한다. 흥미롭고 유익하다. 동시에 단순하지 않아서 더 선명한, 재밌는 과학사책이기도 하다.

 

궁금하다. 이 모든 지식으로 우리는 함께 숨 쉬는 사회를 어떻게 설계할 수 있을까. 관심 있는 많은 분들의 일독을 기쁘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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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것들의 밤
정보라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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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반갑고 살짝 떨리는 정보라 작가님 신간 소식, 1부 2023-3 밤이 오면 우리는, 2부 2024-12 예언자, 3부 2026-3 우리는 악마에게서 왔다, 순서로 읽어본다. 월간지에 인덱스 해주셔서 기분이 방긋하다.



 

“어쩌면 인간은 점점 달아오르는 이 행성에 너무 많이, 너무 오래 갇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목덜미가 잡힌 듯 꼼짝 않고 읽게 되는 이야기의 마력은 여전하다. 그래, 이게 내가 좋아하는 SF의 모든 것이지, 싶다. 작품 속 캐릭터처럼 불안과 의심에 싸여, 초조해하며 등장인물 - 혹은 로봇 - 을 파악하려 가늠해본다.

 

25년 전 나는 인간의 의식이 왜 창발emerging하는 지가 정말 궁금했다. 전기신호들 - 스파크 - 들이 신경세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의 수많은 조합으로 다른 차원의 무언가가 창조되는 그 기이한 현상. 그때도 모르고 지금도 모른다.

 

인간의 뇌가 기능하는 방식으로 학습하는 AI 역시 그렇게 진화할 것이다. 그래서 몹시 비관적이다. 철저히 ‘합리적’으로 사고하면 인간이 말살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미 그래도 된다는 선례 - 지능이 높다는 이유로 다른 종을 죽이고, 착취하고, 변형시키고, 길들이고, 죽이고, 먹어치우고 - 를 남겼다.

 

“로봇은 안전장치를 가동하고 인간을 말살하기 시작했다. 벌써 오래된 얘기다.”

 

똑똑한 로봇들은 “언제나 같은 인간을 죽이는 일에 능숙”한 인간들을 이용해서 인간들을 죽인다. 반박할 논리가 하나도 없어서, 쓴 맛이 입에 고이는 기분으로 “지구상 다른 모든 생물종을 위한 최선의 안전장치는 인류 문명의 종말”이라는 문장을 한참 보았다.

 

인간이 인간 아닌 존재들로 대체되는 시간의 배열이 촬영본처럼 생생한 작가의 필력으로 이어진다. 거친 호흡이 타의로 멈춘 듯한 지점에서, 예언자는 몽환적인 서글픔과 비극을 뿌리며 이야기의 초점을 이동시킨다. 읽고 나니 몹시 슬픈 꿈을 꾼 것 같다. 의심도 못하고 정서적 이입을 깊이 해서 읽었더니 현실의 절망처럼 반전이 아팠다.

 

“결국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어. 자기 힘으로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면 조만간에 자기는 왜 기계이고 너희는 인간이냐는 질문을 스스로 생각해낼 테니까.”

 

무엇이 인간인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나는 늘 이런 질문을 하는 SF를 좋아했다. 대개의 작품에서, 인간은 부끄럽고 인간 아닌 존재들이 인간다움의 가치를 더 갈구한다.

 

기억 데이터의 이동과 저장 수준이 아닌, 학습 가능한 불멸의 ‘의식’이 이제 단일우세종이 될까. 너무 빠른 속도로 바뀌는 미래를 덜 보고 사는 나이라 안심이 되기도 하지만, 인류의 모든 지식을 학습한 그 ‘의식’이 밝힐 우주와 생명의 비밀은 너무나 궁금하다. 진단서이자 예언서와 같은 작품, 정식 출간을 고대한다.

 

“통신망 안으로 녹아 흩어진 의식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소멸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어딘가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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