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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집 - 재일 이주 여성의 자리를 엮다
조경희 지음 / 사계절 / 2026년 7월
평점 :
한국 사회 내부에도 얼마나 많은 실금과 빗금들이 있을까, 상상할 때마다 꼼짝 없이 그 줄에 걸린 듯 답답합니다. 다른 한편 상상할 필요조차 없이 굵고 단단한 줄들, 그 경계 밖에 존재할 것을 강요받은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낮고 작은 목소리들을 선명하게 기록한 책이 반갑고 감사합니다. 귀한 배움의 기회로 삼아 일신의 불평을 잠시 놓고 찬찬히 읽습니다.

“디아스포라에게 고향은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신화적 장소이다. 귀환은 정체성의 결여를 채우는 종착점이 아니라 새로운 경계와 마주하는 또 하나의 시작이다.”
성장이란 건, 양육자를 떠나, 생가를 떠나, 고향 혹은 제 나라도 떠나 살게 될 수도 있는 사건이다. 떠나서 좋은 이들도 있겠지만, 일련의 이별은 그리움을 품게도 한다. 내 그리움의 성격은 대개 homesick보다는 nostalgic이었다. 부재를 선명히 인지하지만 그리운, 그 인지로 인해 아슬아슬하게 슬퍼지는.
재구성을 거듭하는 기억 속 ‘고향’은 내게는 빛나고 행복한 내용일 수 있으나, 그렇게 기억될 수 있게 한 많은 수고는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와 불평등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모든 수고를 감당한 분들이 가장 애틋하게 그립다.
떠난 분들을 강렬하게 기억하고 때로 재현해보는 내 기억 속 고향은, 그래서 부재와 상실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현실의 어디로도 ‘귀환’할 수가 없다. 그 비숫한 고향의 복원이란 현존하는 이들이 친밀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새로운 시공간을 만드는 노력뿐이다.
“한국 거주 재일조선인, 즉 ‘재한 자이니치’라는 낯선 삶의 제도적 조건과 일상의 경험에 대해 말하려 한다.”
나의 상실과 부재를 몇배나 농축해서 느낄 것 같은 이들을 이 책에서 만난다. 선명한 공간적 경계를 넘나들며 축적된 경험, 그 경험으로 인해 평생 어디서 산다고 해도 ‘진짜 한국인’이 되기는 어려운 이들 - 그럴 필요도 없지만.
이분들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혐오 정동”과, 실패를 보장하는 갖가지 정책들을 경험한 역사의 증인이다. 동시에 낡고 그릇된 절대화와 치명적 좌절을 경고하고 되짚어 재사유와 질문을 이어가는 이들이다.
“한국에서는 반공주의나 가부장제(여성혐오)의 영향이 짙게 반영되었다면, 일본에서는 식민주의/인종주의(혐한)가 역사적으로 형성된 이데올로기의 핵심이었다.”
지극히 사적인 경험도 있겠지만, 혐한 - 혐오 - 은 그렇지 않다. 혐오는 감정이지만, 그 분출은 타자 집단을 위계로 누르는 장치로 작동한다. 게다가 혐오 - 증오 - 는 감정이지만, 즉발적인 표현 행위가 아니라, “훈련되고 양성된다.” 더구나 현대사회는 혐오발언이 무한 확산되고 무한 재생산되는 온라인 소통 방식을 갖췄다.
말로써도 상대를 죽일 수 있다. 심각하게 존엄성을 훼손할 수 있다. 한탄스럽게도 이를 선거 전략으로 활용하는 비열한 정치인들이 있다. 휩쓸리지 않고 저항하는 지성은 역사를 보는 방식으로도 깊어질 수 있다. 그리고 매번 정확하게 물어야 한다. “누가 누구에게 공포를 말하는가. 그것은 타당한 공포인가.”
“타자성을 지우거나 평균의 서사로 환원하지 않고, 그 어긋남과 불일치를 견디면서 서로를 ‘듣는’ 조건을 마련할 수 있는가.”
아무 때나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아도, 동일한 존재란 없다. 서로 다른 존재의 생존 방식은 필연코 “ 차이를 매개로 연결되는” 것이어야 한다. 한 사람의 삶도 출발과 도착이라는 직선으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디아스포라의 삶 역시 “하나의 기원에서 출발한 이산과 수난, 그리고 귀환의 서사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만남과 대화를 통해 공통의 언어를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공들인 논문집 같은 이 책이 그 먼 길에 힘과 의지가 될 것이다.
“집은 그곳으로 향하는 길 위에, 그리고 그 길에서 벗어난 이후의 삶 속에 흩어져 있다.”
* 본 리뷰는 사계절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