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대 - 청계천 판자촌에서 강남 복부인까지
유승훈 지음 / 생각의힘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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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에 태어나 90년대까지 오롯이 살았다. 그 이전에는 내 부모와 조부모가 사셨다. 개인사의 풍경 사이에 채워질 서울의 시대와 모습이 많이 기대된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도대체 무엇이고, 무슨 의미가 있는가?”

 

60년대부터 90년대라서 기억과 만나는 접점이 많을 줄 알았다. 같은 시공간을 산다는 일이 모두 다른 시공간을 산다는 일이라는 걸 다시 절감한다. 모르는 서울이 아주 많아서, 경험으로 안다는 것은 또 무엇인지 생각이 깊어진다.

 

역사서를 좋아하지만 풍속에 관해 아는 바가 적어서, 이 책을 통해 재밌는 사실과 기록을 많이 만났다. 기록의 매력은 사라진 것들, 떠난 이들을 친근하게 전하고, 더 오래 기억해볼 가치들을 가름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연탄은 (...) 원래 이름은 구멍탄이었다. (...) 대체로 19세기 전후로 큐슈 지방의 일본인이 처음 사용했다고 전한다.”

 

특히나 지식도 경험도 거의 없는 가정신앙의 풍속이 흥미로웠고, 한강 주변에 아직 마을신을 모시는 부군당굿을 해마다 벌이는 마을들이 있다는 것은 놀라웠다. 새삼스레 공간은 수많은 층층의 삶이 겹치는 마법의 장소 같다.

 

“1950년대까지도 집과 토지를 지금처럼 투기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땅은 농사를 짓고 집은 사람이 사는 건축물로 생각하였다.”



 

인간의 수명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긴 시간 같아도, 근현대를 나눈다는 것이 무의미하게도 느껴진다. 부침이 많고 역사적 굴곡이 거센 한반도에서의 삶도 나름의 연속성은 강해서, 1950년대의 가치가 여전히 설득력이 있기도 하고, 60년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것이 여전히 문젯거리다.

 

개인사를 상기할 텍스트를 만나게 될까 했던 기대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다양한 풍속을 가진 서울을 만난다. 잃어버린 것들과 잊어버린 것들이 아쉽기도 그립기도 서글프기도 다행이기도 한, 그렇게 살아간다는 의미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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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스토브 - 오시로 고가니 단편집
오시로 고가니 지음, 김진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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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작가의 첫 단편집, 일곱 편의 환상 동화, 2024이 만화가 대단하다!“ 여성편 1... 때마침 도착한 주말 선물이다.



 

속수무책으로 커진 눈덩어리를 (...) 함께 안아주고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섬세하고 고요한 일기와 대화 같은 전개가 좋아서 계속 책장을 넘겨보았다. 차츰차츰 기분이 더 애틋하고 말랑해졌다. 나는 늘 현실에 없는 것을 대담하게 상상하는 문학이 슬펐다. 간절한 모든 것은 신성한 기도 같아서.

 

어린 시절엔 정해진 규칙과 일과와 제한들이 많아서, 일상과 삶을 자립적으로 스스로 꾸려나가는 어른이 빨리 되고 싶었다. 그래야 비로소 좋아하는 이들과 좋아하는 일들을 하고 살 시간이 더 많아질거라 믿었다.

 

그런데 현실은 행복한 상상과 아주 달랐다. 법적 성인으로 살아가는 시간은 늘 안타까울 정도로 부족해서, 나는 이제 진심 같은 것을 상세히 털어놓고 설명하고 이해받을 시간 따위는 낼 수가 없다. 어쩌면 남의 얘기를 그렇게 들을 시간도 낼 수가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건 시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지만.

 

그러니 온갖 채소를 씻고 다듬어서 준비를 다 해준 듯, 생선을 손질하고 구워서 가시를 다 발라준 것처럼, 사유하고 기록하고 전달하는 문학은 진지하고 섬세한 세계들로 나를 데려가주는 거의 유일한 구원이다.




 

차마 못한 말들, 생각조차 미안한 일이 될까 떨쳐버린 것들, 수없이 소리치고 저항하고 싶었던 당연한 것들, 정말 싫지만 일단 피해야했던 것들, 왜 이 모양이냐고 책임을 정확하게 묻고 싶었던 상황들이 그림으로 더없이 적확하게 펼쳐져 있다.

 

무엇보다 서로를 응원하고 구원하는 이들이 있어서 계속 슬프거나 두렵지 않았다. 관계 속에서 나를 다시 찾고 일으켜 세우는 이야기들이 다정한 위안이 된다. 사람은 사람으로 인해 살아나고 살아간다는 모든 이야기가 힘이 된다.

 

스짱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 있다고 생각하면 나도 힘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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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늙기를 기다려왔다
안드레아 칼라일 지음, 양소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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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은 정말 온전한 인간인가? 사회가 이들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 의문이 든다.”* *<노년The Coming of Age>,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20대에는 얼른 30대가 되고 싶었다. 나이 들기가 기대가 된 것이 아니라, 아는 것 적고 엉망으로 서투른데도 중요한 결정들을 해야 하는 시절이 벅찼다. 어느 시간부터는…… 이만큼이라도 오래(?) 살아 다행이라고 더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실수와 무지를 알아볼 경험과 안목이 겨우 조금 생기는 듯했다.

 

도무지 깊어지지도 지혜롭지도 못한 채로 늙어만 가는 중이라서, 책이 전할 통찰과 메시지가 왈칵 반갑다.



 

...........................

 

나이 들어가는 몸에 관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있다. 오래 많이 사용한 몸은 상하거나 다치거나 망가진다는 것이다. 노동 없이 평생 세심한 관리만 하는 몸이 아니라면, 노동의 경중에 관계없이 어딘가(여러 곳)가 아프다.

 

이 사실은 - 연민이든 과장이든 거짓이든 - 내가 느끼는 감정의 과잉을 얼마나 덜어내는 지와도 별개다. 하루 종일 스트레칭과 근력운동만 하며 보낼 형편이 아니라면 약간의 운동과 재활훈련과 치료로 회복하는 속도는 망가지는 속도와 아슬아슬하게 교차하는 시간이 온다.

 

그렇게 고통을 견디고 관리하며 살다 대개는 정확한 예고 없이 죽는다.

 

인생의 현 위치를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 신체적 한계에서 오는 좌절감, 어쩌면 노년이 좋은 것일 수도 있다는, 기존 문화를 부정하려는 생각이 모두 마음속에 밀려 들어왔다.”

 

물론 모두 다 부정적인 경험으로 채워지는 시간만은 아니다. 산다는 일과 그 시간을 담은 복잡한 존재가 되어보는 경험은 해탈 영재가 아니라면 꽤 오래 살아야 깨닫게 된다. 호흡이 어떻게 두려움을 다독이고 평화로운 잠시를 가능하게 하는지도 숨을 오래 쉬어본 나이가 되어야 더 분명해진다. 체력은 약해져도 분류하기 어려운 삶의 면면을 마주볼 힘은 살아온 시간만큼 단단해진다.

 

나이가 든다고 우리가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 나이가 들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된다면 그건 마침내 드러나는 우리 안의 노인이다.”

 

잠시 지혜로운 할머니가 되는 꿈을 삼키기도 했지만, 도무지 불가능한 목표 같아서 아직 늦지 않은 일들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후회와 회환은 산을 쌓을 수도 있을 지경이지만, 한 때는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는 말이 노력하지 않은 시간에 대한 변명이라고 생각했지만, 반환점을 돈 삶의 시간은 섬광처럼 사라지고 기억조차 남기지 않는다. 조사가 더 많은 건 물론이고,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애도의 시간조차 충분하지 않다.

 

내가 경험한 나이듦은 새로운 현실을 맞닥뜨리는 일이다. 철학적 숙고를 통해 사유의 유의미함을 가리기 전에, 남은 시간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헤아려 분류해준다. 어정쩡하게 나이든 오십대이기 때문일까. 반갑고 고마운 저자의 문장들을 친구 삼아 봄산책을 즐기면서도 미치지 못할 사색의 깊이가 적지 않았다.

 



아쉬움과 걱정이 앞서진 않는다. 5년 전만 되돌아봐도 나이듦에 대해 거의 전혀 이해가 없었다고 느끼니까. 계속 나이가 들 것이고, 이 책의 문장들은 통증과 깨달음의 한 순간에 다시 교차할 것이다. 나이 들어 좋은 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담백하게 다정한 책이다.

 

지구는 지금 나이든 이들에게는 위험한 곳이지만 나는 여기서 좀 더 오래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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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계곡
스콧 알렉산더 하워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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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확실성, 말조차 금지된 슬픔을 어떻게 할 수가 있겠는가?”

 

읽기 시작하니 호흡이 잦아들었다. 부친과 사별한 지 수개월 만에, 숙부도 갑작스럽게 떠나셨다. 모든 것을 받아 들여야 하는 현실의 시간 속에서,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심연의 시간이 어긋난 채로 흐른다.

 

삶과 죽음이 실은 양면의 가진 한 장의 종이일 뿐이라거나, 죽음은 실은 이러저러한 경험이라는 평생 배운 모든 철학적 숙고가 현실의 사별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 특별한 상실은 영원히 새겨진 상흔처럼 뜨겁고 쓰라렸다.



 

알게 되면 이 사실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요.”

 

아직 십대인 아이들을 양육한 책임을 진 상주로서, 정신을 단단히 차리고 반복되는 지옥 같은 일상을 담담히 이어가야하는데, 정신은 불러도 대답 없는 부친의 부재를 받아들이지 못해, 표표히 대기 중으로 날아갈 듯했다.

 

누군가 말리기 전까지 잠든 부친을 깨우려했던 무용한 몸짓처럼, 애도의 시간은 현실만이 아닌 시공간을 부유하며, 때론 잠든 밤 어두운 물 밑바닥으로, 때론 눈부신 한낮의 부연 대기 속으로 망상과 같은 되돌린 방법을 찾아 헤맸다.





 

불행한 영혼이 둘이냐, 하나냐의 문제였다.”

 

종이책은, 이토록 담담하고 차분하게 구원과 수치심과 안도감과 두통을 하나하나 다시 맛보고 헤어지게 하는, 이야기가 담긴 종이책은, 꽉 잡고 읽을 수 있다는 물성으로 위로가 되고, 외면과 망각이 아닌 마주봄으로 통증을 덜어낸다.

 

다가올 나이에 맞게 삶이 늘 준비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져.”

 

납작한 직선이 아니고 간명하지 않아서, 문장들의 틈새에서 울다 쉬다 하소연도 위로 받았다. 기억하는 모든 사랑과 후회를 담고, 한 시간씩 산책을 하며 뻐근한 정리를 할 수 있었다. 이런 작품도 있구나, 놀랍고 고맙다.

 

내가 더 가까운 혈육이라서 내 슬픔이 더 크다고 여겼는데, 함께 한 산책길에, 매일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한 큰 아이에게 이 책을 건네주고 싶다. 네가 찾은 길은 나와 다를 지라도 도착까지 덜어낸 슬픔은 비슷할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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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의 심리학 - 예술 작품을 볼 때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오성주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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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많지만, 그림을 보고 그처럼 격동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누가 처음 한 말인지 모르나, 어린 시절 이런 내용의 얘기를 듣고, 예술 감상을 위해서는 공부가 필수라고 믿어왔다.

 

열정적인 학습자는 아니었지만 적지 않은 예술 교양서를 읽었고, 그만 봐도 되겠다 싶게 자주 본 전시 주제나 예술가들도 생겼다. 그럼에도 매번 도슨트에게 배우는 게 많으니, 여전히 관련 지식은 적고 감상방식도 얄팍하다. 어느 순간부터는 참여형 현대예술만 재밌기도 했다.

 

더러 잊고 살고 대개는 그런 감상을 할 시간조차 없이 살다가 이 책을 만나 덥석 반갑다. 흔히 예술작품을 대상으로 두고 감상법을 설명하는 시점이 아니라, “본다는 것을 통해 느낀다는 것을 설명하는 소재가 예술이라 더 좋다.



 

설레며 기대한대로 전형적인(?) 과학적 설명과 분석을 객관적 조건으로 삼아 확장하는 설명 방식이라 아주 재밌다. 대상, 자극, 정보 수용, 능동적 해석인 감상이 몸의 기능으로 잘 설명되면서 예술이 가진 아름다움과 매력이 대비적으로 더 빛을 발한다.

 

! 그림 감상이 좋은 본질적인 이유들: 감각적 즐거움, 인지적 탐색과 통찰, 감정적 정화화 재충전, 긍정적 산만함.



 

내용이 풍성하고 문장이 쉬워서, 쉬지 않고 즐겁게 따라 읽을 수 있다. 적절한 이미지들이 설명을 돕고, 독서하는 동시에 예술 작품 감상을 하는 듯한 효과를 주기도 한다. 심리학적 지식과 패턴에 대해 배우는 것도 재밌고, 그럼에도 고유하고 능동적인 행위 주체로서 개인이 확실히 자리매김하는 것도 좋다.

 

“(...) 감상자가 선택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그림 감상은 수동적인 행위라기보다는 능동적인 행위이다. 따라서 감상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또한 어떤 경험이든 개방성이 높은 것*이 어떤 영향과 결과를 가져오고, 우리 삶을 풍부하고 선명하고 즐겁게 만드는지를 짚어주는 점이 유용하다. 당장 숫자로 표시되는 성과만이 아니라, 감정을 흔들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경험을 하는 기회와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더 필요하다. * 경험 개방성 openness to experience

 

기법이나 미술사에 대한 지식 정보와 이해의 방식이 아닌, 감상 주체로서 내게 일어나는 멋진 경험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함께 배우고 찾는 예술심리학** 책이다. 참 즐겁게 읽었다. 덕분에 진행 중인 전시회 일정을 알아보고 싶어진다. ** 예술 경험 - 예술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 - 을 다루는 학문. 경험미학, 실험미학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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