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처럼 - 2024 창비그림책상 수상작
포푸라기 지음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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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서로 부딪치지 않고 군무를 하는 것은 무척 신기해했지만, 30대까지도 새라는 종 자체를 무서워했다. 오래 전 산책할 때마다 나타나서 수다를 떨던 빨간 가슴 로빈이 평생 유일하게 반가운 새였다.



 

그러다 안전거리(?)에서 쳐다보는 것이 익숙해지고, 까마귀는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놀라거나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고, 지금은 새가 등장하는 그림책도 반갑다. 특히 이렇게 사랑스러운 책은 더욱.




 

가만히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런 시간을 가진지는 까마득하다. 그림책은 그럼 그림이 여러 개이고, 친절하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건네니, 오래 바라보기에 더 좋다. 덕분에 호흡이 들릴 만큼 고요하고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날지 못하는 인간이 새를 따라갈 방법으로 작가는 영민하게 함박눈이 내린 날을 불러왔고, 새들은 발자국을 남기며 걸었다. 색색의 새발자국은 모양과 방향으로 모든 순간을 증언하듯 이야기를 이어간다.



 

인간 친구 없이 혼자 노는 아이는, 새들이 남긴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듣다가, 자신이 새가 되어 함께 날아본다. 그렇게 인간 아이는 땅에서 자유롭게 하늘을 유영하고 새들의 일상을 경험하고 삶을 위한 용기도 배워본다.

 



먹구름이 지구를 덮은 폭력적인 어른 인간들의 발자국처럼 보여서 미안하고 안타깝고 속상했다. 그래도 어른 독자인 나는 어쩐지 세상이 안 망할 것만 같고, 어쩐지 어린이, 청소년,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구할 것만 같다.

 

기성세대가 할 일은 사과하고 반성하고 도울 일을 열심히 도우며, 더 이상 망치지 않도록 하는 정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임 회피를 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보다는 방해를 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

 

새처럼이란, 날고 싶다는 인간의 오래된 욕망이자, 자유롭고 싶다는 생명가진 존재들의 요구이자, 협소한 자기만의 세계 이상의 넓고 높은 세계를 경험하고자 하는 성장의 필수조건처럼 들린다.

 

역시 그림책은 아름답다. 이 책도 더없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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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스틸 영
박병진 지음 / 사계절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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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의 가치는 숙성 연수나 캐스크 품질이 아니라 (...) 어떤 절대 기준과 차별도 없으며, 오직 마시는 개인들 각자의 판단과 수용 정도에 따라 가치가 매겨진다.”

 

스코틀랜드가 고향인 교수들의 위스키 자부심은 대단하다. 적어도 내 경험은 그랬다. 덕분에 처음 마셔본 싱글 몰트 위스키, 추억과 사람들이 차곡차곡 쌓여 최애 위스키가 되었다. 목록에 있어서 무척 반갑다. #글렌피딕



 

과다한 음주를 강요하는 한국사회에서, 나까지 음주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싶진 않지만, 저자도 언급하는 것처럼, 폭음, 과음, 강요가 아닌 음주에 대한 다른 문화, 다른 태도, 다른 방식이 잘 알려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우연한 기회에 위스키를 마시게 되었지만, 깊이 있게 배운다거나 까다롭게 미감을 단련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쓴 의도와 담긴 내용이 더 공감이 되고 읽는 시간이 즐거웠다.



 

위스키라는 소재를 통한 역사와 정치, 인문과 지리, 문화적 배경은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그렇듯 재미있다. 부담이 없으면서도 읽고 나니, 기억에 남은 정보들이 아주 유용한 지식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스코틀랜드 130여 개 위스키 증류소 중 절반 이상이 스페이강 유역 스페이사이드에 자리하고 있다.”

 

모든 내용이 읽기에 즐거웠지만, 최대 관심사인 스코틀랜드 위스키 관련 내용을 언급하며 한정된 지면에 기록을 남기려한다. 오래 마신 위스키에 대해 아는 바가 너무 없었단 새삼스런 자각이 새로 알게 된 내용들을 더 반갑게 한다.

 

좀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마시는 위스키 내용물 중 3분의 1정도는 글래스고나 에든버러의 수돗물이다. 그러나 글렌피딕은 (...) 물맛을 지키기 위해 수돗물이 아닌 증류소 인근의 맑은 샘물(로비듀)만을 고집한다.”

 

책 덕분에 생각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독재자 돼지들은 위스키를 마시며 권력의 쾌락을 만끽한다. 다친 동물들을 도축업자에게 팔아서 위스키로 바꾸는 장면이 나온다. 술과 쾌락, 동서고금 분리된 적이 없는 듯.

 

딱 한잔 혹은 더블 샷을 천천히 즐기는 위스키파(?) 독자들에게는 유쾌하면서도 소중한 선물 같은 책이다. 친절하고 다정한 스코틀랜드 사람들과 그 분위기가 한 겨울의 화로처럼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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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千년의 우리소설 14
김시습 지음, 박희병.정길수 옮김 / 돌베개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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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 후 아버지가 이유 없이(?) 사주신 책이다. 과학을 전공하는 자식에게 왜...? 의문을 품고 받은 기억. 읽긴 했지만 기억을 뒤져봐도 남은 것, 배운 것이 초라하다.

 

30년이 더 지나, 아버지 돌아가신 후, 다른 표지로 이렇게 재회하니 눈물이 쑥 날 것 같았는데, “천년의 우리 소설시리즈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기쁘다. 가슬가슬해서 좋은, 아름답고 따스한 종이표지... 아버지 손을 잡은 것 같다.



 


번역이 다르기도 하지만, 처음 읽는 것처럼 신기해하며 재밌게 읽었다. 인문학도 그렇지만 문학은, (대단하지 않게 살아왔어도) 나이 먹은 것이 이해의 폭을 조금이라도 넓혀준다.

 

평화와 사랑을 거부하는 종교가 없고, 짧은 단 한 번의 삶을 위무하지 않는 종교가 없으니, 믿음이란 유약한 우리에게 전하는 스스로 다짐하는 결심과 격려, 혹은 간절한 기도에 다름 아니다.

 

시대는 다르지만, 선업을 중요시하고, 윤회를 통해서라도 실수와 잘못을 바로 잡으며, 그에 따른 대가나 책임을 지는 것이 윤리적이다. 물론 더 이상 따라하거나 동의할 수 없는 방식의 관계 규정도 있지만, 기억하고 싶은 건 세세한 다름이 아니니까.

 

무릇 나라는 백성의 것이요, 명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오. 천명이 임금에게서 떠나고 민심이 임금에게서 떠나간다면 비록 몸을 보전하고자 한들 어찌 보존할 수 있겠소?”

 



무엇보다 친절한 각주들 덕분에, 아는 바가 적은 시대와 종교와 어휘들에 대해 정독하며 배우는 게 즐거웠다. 아주 오랜만에 최초의 한문소설을 공부하던 고등학생이 된 기분도 들었는데, 그마저도 반가운 시간이었다.

 

유불선과 성리학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적어서 오히려 오독을 덜한 부분도 있을 것이고, 깊이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시를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즐거웠다. 다른 이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소설집임이 분명하다.

 



시험문제를 풀던 시절로부터 벗어나 드디어, 문학으로서의 금오신화와, 저항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지켜나간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도 만나보았다. 충분히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시간이 더 지나 또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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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달
이지은 지음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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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누군가 널 지켜 냈으니 여기 있겠지…….”

 

표지를 보는 순간, 달은 울지 않는다는데 내가 울고 싶었다. 어린 아이와 늑대가 위험을 피해 숨은 앞자리를 가능하면 내가 막아주고 싶었다. 첫인상은 때론 정확해서 읽는 내내 자주 울고 싶었다.



 

생명을 지키고 살리고 키운다는 것은 간절한 일이다. 두려운 것이 많아지지만 한걸음도 물러설 수 없는 절박한 일이다. 잠들어도 존재의 일부를 깨워두는 일이며, 아파서 혼미해도 몸을 일으키는 일이다. 상처 입은 늑대와 지구에 떨어진 달이 인간 아이를 키우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겨우 가능한 일이었다.



 

겁쟁이에 후회가 많은 어른 독자인 나는 이 책이 전하는 서늘하고 뜨거운 분위기에 불안감이 찰랑대는 것을 견디며 읽었다. 불안한 짐작대로 전개가 될까봐 용기를 내어 계속 읽었다. 아픈 결말일까 더 용기를 내어 끝까지 읽었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무척 궁금하다. 입장이 다르니, 내가 양육자들의 기분에 밀착해 있은 것과는 다를 것이다. 청소년 독자들이 느끼는 것이 지극한 사랑이면 좋겠다.

 

도움을 주고받는 일이 부끄럽거나 약점이 되는 게 아니라, 용기가 필요한 멋진 일이라는 것을 눈여겨 봐줬으면 좋겠다. 미처 몰랐던 삶의 수많은 크고 작은 것들 모두가 누군가가 애쓰고 도운 덕분이라는 것도 알아봐주면 좋겠다.



 

때로는 세상이 별보다 더 찬란하게 빛나고 다정하고 따스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포기해도 되지만, 그 대신 크고 작은 손해와 희생을 감수한 분들이 남긴 큰 사랑 덕분이라는 것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달을 더 자주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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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일기장
알바 데 세스페데스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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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써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일기장을 숨기지 못할 테니까.”

 

전혀 모르던 작가의 작품을 첫 대면하는 순간은 떨리고 설렌다. 더구나 금지된 일기장이란 제목이 주는 숨 막히는 어떤느낌 혹은 써야만 살 수 있는 여성의 형편에 대한 짐작이 긴장감을 더 높인다.

 

일기장의 새하얀 백지는 나를 매혹하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혼자 거리를 거닐 때처럼 말이다.”

 

명료한 문장들인데 어찌나 선동적인지, 남의 일기장을 읽으며 나는, 끊임없이 숨기고 발각을 두려워하고 욕망을 포기하고 현실에 거듭 순응하는 주인공 대신 깊은 한숨을 병이 날 것처럼 거듭 쉬었다.

 

그러고 보니 이 집에는 나만을 위한 서랍이나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하나도 없었다.”

 

원작의 필력과 번역의 힘은, 국내 첫 소개된다는 이 작품을 불온하고 고혹적으로 만들었다. 작가의 시선은 두려울 만큼 깊은 통찰력을 가져서, 스스로도 부정하는 욕망은 가릴 것을 찾지 못한 채 낱낱이 드러난다.

 

원래의 나로 돌아가려면 되도록 혼자 있는 시간을 피해야한다

 

유학시절에, 성소수자이며 베네치아인venetian인 동료는, 자신의 결혼이 행복한 감옥이었다고 했다. 일견 평온해 보이는, 폭력적이지 않은 배우자와의 결혼 역시, 혼인 계약 내용들에 맞춰 거세당하지 않은 여성이 지닌 다른 욕망을 어떻게 질식시킬 수 있는지, 제도란 얼마나 촘촘한 사회적 억압일 수 있는지가 평범한 일기 문장들 속에 어두운 핏자국처럼 기록되어있다.

 

“8월에 일주일 쉬었다고 10월까지 피곤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언어가 곧 사유라는 점에서, 쓰는 여성이 생각 하지 않고, 생각을 더 확장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 꿈쩍도 하지 않는 현실에 갇힌 채, 사유함으로써 다른 욕망과 세상을 상상하게 된 존재는 어떤 생지옥에 갇히게 될까.

 

언제나 현실과 관련된 일을 생각하는 척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괴로웠다. (...) 깊은 사유 없이 어떻게 올바른 기준에 맞게 행동할 수 있겠는가.”

 

안전망을 뛰쳐나가는 것으로 고통의 상쇄가 시작된대도, 바깥에서 기다리는 것이 어떤 위험이고 괴로움일지는 모를 일이다. 혹은 20세기에 작가가 투옥되었듯이, 다른 이들 역시 저항의 대가로 다른 감옥에 갇히게 될 지도.

 

소설처럼 긴박하게 재밌고 일기처럼 내밀하고 솔직한 이 작품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다. 이 이야기가 어디로 누구에게로 향했는지 찾아가보고 싶다.

 

일기장을 펼칠 때마다 가장 먼저 첫 페이지에 적힌 내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출간을 열렬히 반깁니다. 다른 작품이 있다면 더 소개해주시길 바랍니다.




 


📸 Photos of Alba de Céspedes, Credited by Mondadori Portfol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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