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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신 - 여순항쟁 이야기
김금숙 지음 / 창비 / 2026년 10월
평점 :
아주 오래 전...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Zum ewigen Frieden>를 철학서 모임에서 읽고, 책 출간 이후 발발한 전쟁이 너무 많아서 아찔했던 기억이 있다.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시기가 너무 짧아서, 생명이 예외적인 것처럼 평화도 그런 것인가 싶다.
* 내 세대엔 이렇게 불리지 않아서 좀 어색하지만, 외래어 표기법에 '칸트, 이마누엘'로 올라 있고 <우리말샘>에도 '이마누엘 칸트'로 올라 있다.
하늘보다 기분이 더 흐리고 지치는 어느 날, 따뜻한 초콜릿 마시며 최애 영화나 다시 보고 싶은데, 여순항쟁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나 말해보려 하니, 3분도 이어나가지 못할 것 같아서 배워보기로 했다. 마른 피보다 어두운 먹색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1948년 10월 22일 이승만 정부는 여수와 순천 지역에 대한민국 최초의 계엄령을 선포했다.”
국가 폭력에 다수가 희생된 비극이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된, 모두 과거면 불안이 덜하겠지만, 방임으로 인한 대형 인명 사고는 이어졌고, 적반하장이나 지지부진한 대응만 이어지는 형편이다. ‘계엄령’조차 얼마 되지 않은 현실이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 혹은 두려운 울음 같은 기도는, 여순 학살이 한국 전쟁 시기의 보도연맹 사건으로 이어지면 전국에서 자행되면서 무용해지고 만다. 흑백의 표정들이 너무 짙어서, 쏟아낸 피와 눈물이 고인 지면을 넘기는 듯했다.
“숱헌 사람들의 무고한 목숨이 아침 이슬처럼 사라졌제. 흰 신을 신었다는 이유로,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젊다는 이유로, 그곳에 산다는 이유로, 특별한 이유도 없이 지목되어 총살당했제. 저 어디맨가 여즉도 가족을 만나지 못한 유골이 있겄제.”
운이 너무 좋아서, 갖가지 비극을 피해가며 살았다. 세상에는 선하고 따뜻한 이들이 참 많다고 느끼며 살았다. 어쩌면 그럴 것이다. 이만큼 살만한 것도 그런 이들이 애써 만들고 지켜나간 모든 순간의 수렴일 것이다.
종교가 없어서인지... 이런 순간에 나는 어떤 가치를 더 굳게 지켜나가겠단 표현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헷갈린다. 그저 이토록 억울한 이별과 죽음이 가득한 시간을 살아낸 이들이, 시신조차 찾을 수 없는 이들을 그리워하며 그들의 영혼을 존재를 ‘믿기로 했다’는 문장을 나도 힘껏 믿고 싶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