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 - 하이드리오타피아, 유골 항아리 매장에 관하여
토머스 브라운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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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달 전, 올드 월싱엄의 한 들판에서 마흔 내지 쉰 개에 달하는 유골 항아리가 발견되었다.”

 

선친의 2주기가 지났으나 여전히 애도 중이다. 이후에도 사별은 이어졌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130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 발견된 유골 항아리들에도 통증이 먼저 느껴진다. 죽음이란 보편적으로 확실한 사건이지만, 죽음을 맞는 존재들은 개별적인 시간과 장소와 방식을 경험한다.

 

확률로 짐작할 수밖에 없는 수명, 그 불확실성이 거듭 망각을 보장하고, 그 망각 덕분에 매일의 생을 멀쩡한 채로 - 그렇게 보이게 - 살아간다. 여름은 버겁지만, 여름이 끝나면 한 해가 다 끝난 느낌이 든다. 10월에, 시간과 죽음에 관한 이 명상록을 천천히 읽을 수 있어서 위안이 되었다.

 

“육신의 부패가 녹여 없애든 화장으로 태워 없애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루카스(39-65) 로마의 시인.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내전을 노래한 서사시 『파르살리아(내전기)』를 남겼다.

 

죽은 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고대인들이 고민한 것처럼 나도 고민했다. 사실 선택지는 많지 않다. 예전처럼 지금도 매장할 것인가 화장할 것인가가 있을 뿐이다. 저자가 유물 연구 과학자로서, 세밀한 기록과 역사적 추론을 보고서처럼 들려주어서, 인류가 유골을 어떻게 다뤘는지, 생전의 결속을 죽음 후에도 어떻게 생각했는지, 다양한 공부가 되었다.

 

“우리는 왜 그토록 기억되려 하는 걸까? 그런 노력 끝에 기억되는 것은 무엇일까?”

 

숏폼도 안 보고, 인터넷 접속 시간도 업무를 제외하면 길지 않지만, 그럼에도 사색과 명상을 충분히 할 시간은 부족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숙련되지 않으면, 해당 근육이 생기지 않으면, 소위 정신 활동도 의지만으로 제대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더구나 시간, 죽음, 망각, 기억... 이런 주제들이라면.



 

저자 토머스 브라운이 놀라운 지적 능력과 연구와 관찰과 해독에도 불구하고, 자기 유골의 운명을 알 수 없었듯이, 매일 짧아지는 내 수명보다 세상이 더 빠르게 다채롭게 망할 것 같아 품는 온갖 걱정과 불안 역시 무용할 것이다. 이름이 기억되길 바라거나 유골을 걱정한 적은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삶의 내용을 갖추길 바랐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가, 만물의 뜻은 무엇인가 (...).”

 

길게 이어지는 저자의 사유를 그대로 받아 적은 듯 긴 문장들은 반갑고 낯설고 때론 어렵기도 해서 좋았다. 한 페이지, 몇 문장을 읽고 낯선 여행지로 떠나듯 오랜 상상을 하기도 했다. 덕분에 휴일 오후 시간은 다른 때와 달리 천천히 흘렀고, 살짝 붉어진 초저녁 하늘을 처음인 듯 반갑게 바라보기도 했다.

 

심호흡과 가을에 좋은, 공들인 초역이 반가운 명상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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