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니주의보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워치케든 되겄제.”

 

읽기 전 준비자세(?)는 비슷했다. 사투리 너무 자주 많이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하는 아쉬움과, 마냥 웃을 수만은 없을 것 같다는 미리 짠함. 그리고 꽤 무거운 아픔까지. 그런데 전작처럼 살짝 당황해하며 때론 배를 잡고 웃으며 읽었다. 정지아 작가 작품의 단 하나의 단점은 순식간에 다 읽고 만다는 점이다. 아깝...

 

그렇다고 재밌기만 한 코미디 같았단 건 아니다. 빨치산 부모를 둔 친구가 없어서 전작에 대한 공감엔 상상과 짐작이 더 컸다면, 이성애가 아닌 방식의 애정 혹은 무정으로 살아가는 지인들이 있어서, 이 작품은 더 쓰리고 아렸다. 너무 깊이 가라앉지 않도록 적절한 때에 현실 언어로 팡팡 등 두들겨주는 작가의 필력이 놀랍고 고맙다.

 

“갸들이 사램을 죽였어, 도둑질을 혔어? 머슬 워쨌다고 지랄옘벵을 떨어싼대? 즈그는 월매나 잘났가니!”

 

익숙하지 않은 말은 옮겨 적는 일도 만만치 않다. 손가락이 버벅거려서 자꾸 오타를 내며 고치다보니 웃음이 난다. 찌니들이 잔뜩 긴장하며 움츠려들었다가 풋, 웃는 장면에서, “무슨 일이든 웃으면 반은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는 법”이라는 현자의 명언 같은 대사가 등장한다. 해결까진 아니라도 묵직함을 덜어내는 효과는 분명하다.

 

겪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 더 많고, 당사자가 아니면 짐작도 어려운 일도 많고, 평생 살아도 자기 자신도 잘 모를 수 있다. 그래서 다 겪고 나니(?) 수평마을 주민들의 질문들은 오히려 낯선 타자에 대해 가장 솔직하게 가질만한 의문으로 들린다. 특정 인물을 제외하면, 지독한 악의가 느껴지지도 않는다.

 

“치명상을 입혀놓고 음식을 먹인다? 두 행동의 머나먼 간극을 기희는 어떤 논리로도 채워 넣을 재주가 없었다.”

 

찌니들에게 가장 공감하고 마음이 쓰일 거라 생각했는데, 책을 놓고 나니, 베트남에서나 수평 마을에서나 “팔다리가 쑤시도록 일”을 하며 살아온 쑤언이 강렬하게 남았다. 문득 안부가 궁금해지는 인물로 한참 내 시간에 머무를 듯하다. 얼마나 많은 현실의 쑤언들이 아픈 팔다리로 K-한국의 식량 생산을 책임지고 있을지.

 

한 마을 안에 몇 명 안 남았다는 이들의 사연들도 다 오래고 깊고 제각각이다. 사람 노릇 제대로 하며 사는 삶이 무엇인지... 배워지기보다 멀어지기만 하는 갑갑한 형편이 내 삶이지만, 이 이야기 덕분에, 눈앞의 사람을 더 예의 바르고 친절하게 대하자는 결심을 새롭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