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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만든 천재들 - 광기와 창조성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마리오 데 라 피에드라 월터 지음, 성소희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7월
평점 :
광기, 창조성, 천재성, 창의성, 예술, 뇌과학, 인공지능... 모두 흥미롭고 연결되면 더 궁금할 내용들입니다. “미쳤다”는 건 어떻게 해석되고 유의미해 지기도 할까요. 미쳐야 할 수 있는 것들에는 뭐가 있을까요.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은 죄다 광기라고 부르는 듯하다. 정말로 실패한 것은 그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의 논리다.”
뇌과학과 예술, 한 분야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연결되고 설명될지 궁금했다. 대중과학서도 아니고 의학사도 아니고 예술 서적도 아니고, 이상하게 그 모든 것 같기도 하다. 품이 넓은 방식의 주제 선정과 글쓰기랄까. 그 낯섦이 재밌다.
구석기 후기 동굴벽화에 관해 처음 배울 때, 외계인 얘기처럼 신기했다. 그러니까... 그 시절에도 인간은 예술 작업을 했구나. 어쩌면 생존과 번식이라는 유전자의 명령을 따르는 행동을 제외한 활동이 인간만의 고유함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 이후로 인류 문명은 발전(?)했다고 자평하지만, 욕망에 휘둘리고 성과에 급급하여 효율성을 따지는 팍팍하고 비예술적인 삶의 방식이 칭찬받는 내용 - 인문학이나 예술의 무용성 주장처럼 - 을 보면 오히려 인간다움에서 멀어진 퇴행 같기도 하다.
“뇌는 감각의 제약을 받으며, 외부 정보를 걸러내 현실을 구성한다. (...) 예술 역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으며,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을 반영한다.”
이 책을 통해, 광기와 창의성이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런 이야기가 오래 불편했다. 공감각을 가진 예술가들도 있고, 광기라기보다는 정신질환으로 분류된 - 현재에 와서는 약물 치료가 가능한 - 어려움을 가진 이들도 분명 있다.
그러나 ‘천재성’이란 그 한계들로 인해 자동발현되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예술적 표현의 도구로 활용하며 어려운 상황과 조건에서도 노력한 그 점에 있지 않을까. 정신 질환이 있어도 의학 진단을 받지 못한 예술가들이 있으며, 질환이 없이도 천재적인 예술 작품을 인정받은 이들도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증상’이나 ‘어려움’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혹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게으른 뇌가 선택하는 판단 방식, 협소한 세계관, 각자의 편견, 없는 간극을 굳이 만들고 넓히는 허구, 과학과 예술처럼 연결되고 이야기될 수 있는 분야들의 분리 등.
“우리 뇌가 구성할 수 있는 현실은 감각 기관의 능력에 제한받는다. 우리는 생물학적 장벽에 갇혀 제한된 세상에서 살아간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고의 유연성을 넓히고 시야를 확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여러 내용, 여러 인물들을 만나면서, 그렇게 편안한 기분으로 저자의 제안과 설명을 즐겼다. 과거로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내내 흥미로울 분야들 - 과학과 예술 -이다.
“누가 예술을 만들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예술을 만드는 주체는 누구인가 혹은 누구여야만 하는가에 관한 내용이 흥미롭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서 만든 작품은 예술이 아닐까. 그 기술이 그저 도구일 뿐이고, 프로그램 활용에는 여전히 인간의 창의성이 필수 요소라는 주장은 타당할까.
혹은 더 나아가, 인공지능이 의식*을 갖추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의식 활동을 하는 존재가 만든 작품이 사고를 촉진하고, 감상자에게 충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면 창의성을 수반한다고 인정할 수 있을까. 그래도 창작은 인간의 전유물일까. 그리고 그 근거는 무엇일까.
* “생물학에서 의식consciousness(결합을 뜻하는 라틴어 'con'과 지식을 뜻하는 ‘scientia’의 합성어)을 각성 상태(전반적인 반응 상태), 자각(현재와 즉각적인 경험에 대한 인식), 자극에 반응하려는 동기의 존재로 정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