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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
윤지현 지음, 박지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6년 6월
평점 :
“미래라는 제 이름을 정작 맞이하지 못한 미래. 미래가 죽은 지 열 달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
슬프다. 마지막 장까지 슬프다. 어머니와 자매가 등장하면 대부분 슬프고, ‘한국적인’ 정서와 생활양식이 스며들면 아프도록 슬프다. 한반도에 산 수많은 약자들 - 대개는 아이들과 여성들 - 은 끊임없이 죽임을 당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악귀로 등장해서 범인을 벌주라 하소연하는 것. 그런 이야기들도 모두 슬프다.
자주 멈추며 천천히 오래 읽었다. 슬플수록 더 무거워지는 기분을 널어 말렸다 다시 추슬러 읽었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잃고 난 후 망가짐이 아프고, 사랑이라 생각한 모든 오해와 그로 인해 가한 모든 유해가 또 슬프다. 몰라서 돕지 못했던 아프고 슬펐던 어린 자매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아득하다.
“기적과도 같은, 생명을 불어넣는 여자들로 가득한 집이었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구하지 못했다.”
처한 상황은 달라도 보편적이랄 수 있는 고통은 반복되는 악몽 같다. 지독한 굶주림 속에서 손닿는 다른 생명을 착취하고 죽이면서 살아나갈 때, 그 부담을 감당한 이는 끔찍한 저주 같은 능력을 가진 이 집안의 여성이었다. 슬픔에 빠져 양육자의 책임을 방기한 아버지와 어린 동생과 제 스스로를 먹여 살려야 하는 이는 큰 딸이었다.
‘첫째 딸은 살림밑천’이란 잔인한 인식은 큰 딸들을 어딘가에 팔아치우는 결정으로 이어지고 용인되었다. K- 큰 딸은 - 그런 직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 사적으로는 집 안을 돌보고 동생들을 키우고 자신의 성장도 꿈도 욕망도 지운 완벽한 딸로서 살았고, 공적으로는 근대화와 산업발전의 연료로 소모되었다.
“두 사람은 남자 때문에 죽었다. 어머니는 남자의 부탁을 거절해서, 언니는 남자에게 따져 물으려다가.”
작품 속 인종 간 차별은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로, ‘한국적인’ 모든 올가미에 걸린 채 짧게 살다 죽어간 언니 - 미래 - 의 상황이 잔혹했다. ‘미래’는 그렇게 죽고 오지 않았다. 설화 속 원귀가 그랬듯이 죽어서야 제 감정대로 제 뜻대로 자유롭게 살아볼 수 있었다. 더 이상 참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미래의 복수를 응원했다.
꿈에 재현될까 두려울 정도로, 작가는 존재하지 않고 가본 적도 없는 작품 속 배경을 생생하게 전한다. 덕분에 더 무서웠다. 한쪽 어깨가 시리도록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어딘가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것 같아 가만히 둘러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사랑’해서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인지 고민했다.
“좋은 환경에서 착한 사람이 되는 건 쉬웠다.”
타오르는 분노와 얼어붙은 공포가 깊고 오래된 슬픔에서 연유했다는 것이 쓰리도록 슬프다. 상실은 피할 수는 없다. 상실 후에 누구나 잘못된, 바보 같은, 비극이 될 선택을 할 가능성은 늘 있다. 이 작품이 내게 남긴 질문들이 비교불가하게 중요하고 그에 관한 지혜가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공포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읽으셨는지 몹시 궁금하다. 관련 리뷰들을 찾아 읽으며 약간의 용기와 지혜를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