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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미풍 -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위화 지음, 백도라지 옮김 / 푸른숲 / 2026년 5월
평점 :
표지에서 바람이 스치는 소리가 나는 듯하다. 인간으로서 되지 말아야 할 많은 것들로 사는 이들의 목소리에 거듭 지치는 오월, 또 다른 인간의 언어로 적힌 인간다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남은 오월을 함께 보낼 생각에 설레고 감사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산들바람은 자기가 평범하고 보잘것없다는 걸 알기에 겸손하고 신중하다. 그 겸손함과 신중함은 내가 소년 시절 무더운 여름날에 찾아다니던 천당풍穿堂風과 닮았다.”
배경으로 삼은 1980년부터 2020년은 내게도 기억으로 가득한 시절이다. 어쩐지 적요한 낯선 공간에서 동시대인을 만난 것처럼, 작가의 기억들이 반가웠다. 그런데... 짐작보다는 낯선 것들이 대부분이라서, 이야기들이 더 흥미로워졌다.
반백년을 살아보니 새로운 것도 없고 시큰둥할 때도 많은데, 그건 내 경험의 협소함 때문이라는 걸 이렇게 다시 자각한다. 문학을 통해 현실이 다시, 우리 각자가 경험하고 만들어낸 고유한 무늬 같은 삶의 반사광처럼 색을 뿜는다.
“산들거리는 바람은 더 이상 저 멀리 자연에서 산 넘고 물 건너 불어오지 않고, 개인이 소유하거나 건축물에 설치된 에어컨에서 인공적으로 불어온다.”
그에게 기록된 기억과 감정과 기억이 내 것들과 구체적인 접점이 없어도, 어쩌면 비슷한 질문을 남길지 모른단 생각을 한다. 지나온 시간은 무엇이었으며, 그 시간을 돌아보는 일은 무엇을 위한 수고인가... 라고.
“내가 유일하게 무서워했던 건 달빛이 쏟아지는 한밤중에 나뭇가지의 끝을 보는 것이었다. 뾰족한 나뭇가지 끝이 달빛 아래에서 번쩍 빛나며 공중으로 뻗어 있는 모습. 이 광경을 볼 때마다 나는 덜덜 떨었다.”
삶을 오롯이 선택할 수 있다고 여겼던 한 시절이 있었고, 받아들여야할 면적이 늘어난다고 두려웠던 시절도 있었다. 그 모든 감정과 불안과 짙은 피로감도 내가 산 삶의 무늬가 되었다. 지나고나니 경험한 것들은 무엇이건 힘이 되는 듯하다.
우연하게도, 이 책을 천천히 읽는 동안 날이 좋았다. 가끔은 열어둔 거실 블라인드를 슬쩍 밀어내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랄 만큼 솔직하게 쏟아놓은 문장들이 나는 아직 먹먹하게 안고 견디는 기억들조차 뭐 어때, 라며 가볍게 들추는 듯했다. 위로와 힘으로 기억될 이야기다.
“우리는 너무 심심했다. 방 안의 세계는 점점 작아졌고, 마음의 세계는 점점 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