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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과 삶 사이에서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평점 :
“우리는 이미 수업료를 충분히 냈다. 그것도 너무 비싸고 많이 아프게. 그러고서도 배운 게 없으면 정말 슬픈 일이다.”
최종 추출되거나 고공 관찰된 개념적 고민을 하다가, 구체적 사건들이 담긴 기록을 읽자니, 정신이 착지하는 기분이다. 분노하고 충격을 받고 잊지 않겠다고 했지만, 어느새 잊거나 흐려진 쪼개진 시간을 다시 모아 반추하고 반성한다.
“정치적 냉소주의와 파시즘적 열광의 뿌리”, “바람직한 정치 윤리”, “연대는 평등환 관계에서”, “신중한 책임감”, “위선마저 사라진 세상”.......
멈춰 생각할 수 있어서 울화로 들끓던 순간들로부터 잠시 쉼이 된 질문들이 많고 여전히 유의미해서 좋다. 소확행에 밀려난 이념적 고집도, 트렌드에 밀려난 존엄과 자기 인식도, “사람들의 결심과 행동이 정치라는 인간관계의 또 하나의 본질”로 다뤄주는 통찰이 베프를 만난 듯 반갑다.
“민주주의를 몸으로 체득한 세대다. 두려워하지도, 비장해지지도 않으면서 발랄하게 할 말을, 할 일을 다 했다.”
고단하지만 여전히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임을 상기하고 기분을 추스를 수 있어서 고맙고, 불평의 모든 순간에 내 대신 보이지도 않는 노동을 해준 이들이 아주 많았다는 걸 기억하게 도와줘서 많이 부끄럽다. “잡일”로 호명되는 이 수많은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는 사회에서 살고 싶었는데, 변화는 느리고 나는 빨리도 늙는다.
“미래를 향해서라면 단일 대오는 또 다른 억압일 뿐이다. (...) 우리에겐 돌아갈 정상 상태가 없다. 이제 새로 길을 내며 나아가자.”
못마땅해도 매일이 이렇게 살만하게 굴러가려면, 수많은 노동이 필요하고 작은 호의들이 틈을 메워야 겨우 가능하다는 것을 못 본 척하지 말자고, 그 잡일을 내가 감당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는 순간마다, 내 삶 자체를 고민하자고, “그날 이후 ‘기억하겠다’란 말은” “범박한 일상에 젖어가는 부끄러운 나를 깨우치는 다짐의 말이 됐다”는 걸 다시 기억하자고.
그렇게... 엄연하고 강고한 거시 세계의 폭력과 광기에 지지 말고, 내 작은 삶의 의미, 작은 실천들, 해결하기는 어려워도 뭐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을 멈추지 말자고, 그렇게 도착할 수는 없지만 다가갈 수는 있는 더 나은 미래를 희망하자고 혼자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