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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 생각의힘 / 2025년 8월
평점 :
“원서의 제목 와이프덤wifedom은 흥미로운 단어다. 아내라는 단어에 농노신분serfdom, 노예신분slavedom 같은 표현에서 흔히 보는 접미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신분제 사회에서 이름을 알 필요가 없는 노예들처럼, 가부장제 사회에서 그 존재를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한 아내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호감을 이상화하면 편안하다. 편하기 때문에 아무 근거 없는 이미지나 결론을 탐색없이 고착화시킨다. 조지 오웰 작가가 내게 그런 존재다. 아주 오래 그의 작품들을 즐겁게 거듭 읽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울렁증과 현기증이 났다. 몇 번이나 덮었다가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서야 다시 읽었다.
짙은 불쾌감과 울렁거림은 여전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더 많이 읽을수록 위장도 뇌도 차분해졌다. 마침내 오래 눌어붙어있던 딱딱한 찌꺼기가 벗겨져 나간 기분, 비로소 현실과 사실과 진실을 드러난 대로 받아들 수 있게 된 조금의 성장. 새삼 놀랄 것도 없었다는 뒤늦은 수용.
개개인의 서사는 충실한 증언이나, 동시에 그런 식으로 살 수 있게 한, 그런 식으로밖에 살 수 없게 한, 다른 방식을 상상할 수 없게 한, 다른 삶을 실험하지 못하게 한, 사회와 시대를 질문해야한다는 것을 한결 편해진 기분으로 인정한다. 이미 수없이 제기한, 불성실한 답변들에 지친, 유사 질문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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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하기가 어렵구나. (...) 여자들을 함부로 대하는 남자들도 스스로 괜찮은 사람으로 여겨도 되게끔, 온 세상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었으니 말이야.”
“다른 모든 귀중한 재화가 그렇듯 시간에의 접근 역시 젠더화되어 있다. 한 사람이 일할 시간은 다른 사람이 시간을 들여 하는 노동을 통해 만들어진다.”
“가부장제는 한 편의 허구다. (...) 우리 모두 그 이야기 속에서 살고 있고, 그 이야기는 너무도 강력해서 현실을 대체해 버렸다. 우리 삶을 풀어낼 다른 서사도, 가부장제에서 벗어난 어떤 역할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가부장제에는 외부가 없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는 오웰이 자기 아내의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부터 이익을 얻도록 하용해 주었다. 그런 다음 똑같은 방식으로, 전기 작가들이 그가 그 모든 일을 혼자 해냈다는 인상을 주도록 허용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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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가 그치지 않는 역할을 계속하는 것은 고역이다. 삶이 그러하니 대안이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너무 많고 - ‘이해’라는 개념 자체가 완전한 오해라고 하지만, 동의할 수 없는 것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싸워서라도 얻어낼 가치가 있는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좀 더 자주 복기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