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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여행 - 개정판 ㅣ 모든 요일
김민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1월
평점 :
“깨지 않는 꿈은 없듯이, 끝나지 않는 여행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일상 루틴형 인간으로 살지만, 꽤 오래 나는, 이왕 지구에 태어났으니 지구 곳곳을 여행하며 삶을 다 쓰고 싶었다. 실제로는 그 바람과 상반되는 목적 - 유학, 학회, 워크숍, 출장 등 - 이 분명한 이동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런 여행이라도 늘 좋았다. 기후 위기와 탄소 마일리지 문제가 아니라면 오랜 소망처럼 계속 여행 중인 삶을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을 지도.
불가피한 이유가 아니라면 비행 여행을 더 이상 하지 않도록 결심한 후에, 여행기는 더 애틋한 장르가 되었다. 햇빛 알레르기마저 닮은, 만난 지 3초 만에 반한 친구의 이야기처럼 맞장구를 치게 되는, 내 일기장 일부인 듯한 기록이 담겨서 각별하다. 티켓처럼 손에 꼭 쥐고 기쁨과 그리움을 오가며 읽었다.
“유명한 것이 없으므로 오래. 별게 없으므로 천천히. 어디에서도 보지 못할 풍경이므로 음미하며. 낯선 얼굴들과 마주칠 때마다 웃는 낯으로.”
내가 바라는 여행은 늘 휴식이었다. 익숙하지만 촘촘하게 옥죄는, 불필요한 과다 스트레스가 줄어든 시간을 보내는 것. 대개 그런 휴식은 한국 사회의 고정 시선을 벗어나서야 체감할 수 있는 종류였다. 필연적으로 그 여행의 도착지는 한국인이 잘 출몰하지 않는, 관광지가 없는, 그 동네 주민처럼 오후 산책을 느긋하게 할 수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언어가 익숙하고 여러 해 산 영국도 좋고, 국경이 거의 의미 없는 서유럽 여러 국가들과 잠시 근무한 북유럽, 방학 때 한 달 살기한 동유럽도 좋았다. 상대적으로 전쟁 폐허가 적어서, 옛 모습이 간직된 공간은 시간마저 비틀어, 나는 현실의 달력과 다른 매일을 사는 듯 금세 호흡이 편해지곤 했다.
“이것도 해야 하는데, 저것도 해야 하는데, 라며 강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일상, 정직하게 몸을 움직이고, 머리는 잠시 쉬게 만들 수 있는 일상, 피곤해진 몸 덕분에, 끊임없이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머릿속 덕분에 이른 시간에 잠을 청하게 되고 그리하여 다시 일찍 일어날 수 있는 일상.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하러 온 곳에서 나는, 비로소 원하던 일상의 리듬을 찾는 중이었다.”
작가가 돌아온 내 집에서 이방인으로 살았던 것처럼, 나도 매번 내 주소지로 돌아오는 시간이 슬프고 무거웠다. 내가 사는 곳이 정말 내 집인가... 의문이 짙어지곤 했다. 아직 찾지 못한 진짜 집에 대한 그리움만이 지치지도 않고 지속되었다. 여행은 재현된 꿈인지도 모르겠다. 그 재현이 완벽할수록 그 시간이 행복할수록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이 더 서러우니.
내 일상의 루틴은 더 공고해지고 알람은 하루 평균 12개로 설정되어있다. 살다보니 익숙해졌지만, 이제는 버스가 도착하기 전 몇 분이 내가 누리는 가장 벅찬 휴식과 자유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다. 생각하고 선택하고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기다리기만 하면 나를 태우러 온다는, 그 홀가분한 안도감. 도로에 가득 찬 차량의 라이트가 켜지는 모습조차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저녁시간.
“당신에게 삶이란 무엇입니까.”
다시 읽어보려 촬영한 책 이미지만 수십 장, 필사한 분량만 몇 페이지가 되는 반가운 책이다.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그게 지금이라서 좋았다. 비통하지만은 않게 간질간질한 행복의 순간들을 상기시켜줘서 고마웠다. 누구의 삶도 너무 힘들고 너무 바쁘고 너무 팍팍하지 않기를 바라며, 내 품이 조금만 더 넓어지기를 바라며, 행복했던 책 여행의 시간을 잠시 덮는다.
📖
아무도 없다
나를 아는 사람도
내가 아는 사람도
아무것도 없다
내가 해야만 하는 것도
내가 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내가 지금 가야만 하는 곳도
지금 있어야만 하는 곳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