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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성의 마법사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25년 11월
평점 :
<구덩이, Holes>는 흐려지지 않는, 잊을 수 없는 문학 체험이었습니다. 어린 제가 읽을 수 있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지 늘 궁금한. 그 루이스 새커Louis Sachar 작가의 신작이라니, 기대감을 충분히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손가락 끝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요약 기록이 실화인 듯 부활한 창작물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경이롭다. <구덩이>에서 드러난 매력들도 여전하고, 낯선 중세의 풍경을 블랙유머 같은 한가득 반전으로 채운 전개는 위트와 재미를 끝까지 놓지 않는다. 무방비로 웃으며 즐겁게 읽었다.
화자가 왜 불로불사 상태가 된 것인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도입부터 흥미롭지만, 딱히 한 명의 주인공에 집중하지 않아도 여러 캐릭터들의 이야기와 성장이 골고루 궁금한, 자연스럽게 영상화된 장면을 그려보게 되는 멋진 작품이다.
“아이의 갈색 눈에는 관심과 호기심이 가득했고, 파란 눈에는 반항심이 반짝였다.”
호랑이가 어떤 극적인 역할을 하게 될까 계속 궁금했는데, 마치 <모비딕>처럼 기대한 사건들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놓치지 않는 능숙한 직조공인 작가는, 가장 비호감인 캐릭터에 호랑이 소재를 시원하게 활용한다. 역동적이고 구체적인 묘사가 없음에도 체증이 내려가는 듯 통쾌했다.
영화 한편보다는 20부작 정도의 드라마로 재탄생해주기를 급 바라게 되는 작품이다. 400년 동안 인간의 역사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왔는지를, 조금은 뭉클하게 증언하는 감동도 전하면서, 갑갑한 심정으로 현 시절을 견디는 독자들에게도 어떤 위안과 힘을 건넨다. 실컷 웃으며 도착한 마지막 페이지를 쉽게 덮지 못하고, 포기하지 못한 희망을 계속 상상하게 만든다.
“나는 피토와 툴리아가 미국에서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풍요롭게 잘 살았을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매해 연말에는 해리포터 시리즈, 아담스 패밀리, 판의 미로 등 판타지 작품들을 하루 종일 본다. 현실로부터의 행복한 도피이자 휴식이다. 언젠가 루이스 새커의 작품도 이 목록에 추가되기를 바란다.
* 출판사 제공 도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