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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스 극장 - 시대를 읽는 정치 철학 드라마
고명섭 지음 / 사계절 / 2025년 11월
평점 :
올 한 해가 평생 중 가장 빨리 사라진 한 해 같다. 어느새 일 년이 지난 내란 이후의 날들... 모든 소식을 따라 읽기엔 체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하지만, 기사 제목만으로도 충분한 분노와 모욕을 거듭 맛보며 산다.
그래도 그 시간을 극장 무대에 올린 든든하게 큼직한 이 책의 서사와 사유는 차분하게 따라 읽을 수 있을 듯하다. 고맙게 내 안의 것들도 정리해볼 수 있을 듯하다.

“이 책에 모인 글은 2022년 3월부터 2025년 9월까지 신문과 잡지에 쓴 것들이다. (...) 3년 6개월을 아우른다.”
새삼스럽게 3년 6개월에 눈이 시리다. 끝없는 모욕감과 분노로 정신을 앙다물고 지나왔던 시간이다. 현대인이 당면한 많은 문제는 밝혀지지 않은 원인이 아니라, 아주 기초적인 준거가 지켜지지 않아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익이냐 사익이냐’의 척도가 없던 이 정권의 결말은 이토록 필연이다.
신문에 실린 논설이라서, 한편마다 주제와 논조가 선명하다. 한 권의 책이 된 집적물이, 바로 오늘의 현실을 설명해주는 역사다. 지난 정권의 악행과 무능력에 새삼 감탄하며, 대의 민주주의와 절차적 민주주의의 허약함을 다시 확인하며, 결국 시민이 분별력과 정치적 문해력을 갖추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절감한다. 고단하지만, 오염된 것도 망가진 것도 너무 많으니 시민이 해야할 일은 산적해있다.
“반상식이 상식 노릇을 하면 공동체의 윤리성은 존립의 토대를 잃는다. (...) 상식을 희롱하고 공동체를 모욕하는 반공동체 세력을 공적 공간에서 퇴출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상식이다.”
극우의 부상, 혹은 극우라는 이데올로기조차 갖추지 못한 폭력배들의 부상은, 짐작보다 오래된 계획과 체계적 지원의 결과일 것이다. 언급되는 것은 이명박 정권 때이지만, 한국 사회에 이런 유의 집단적 경험과 구조로 굳어진 집단적 의식은 청산하지 못한 더 먼 역사적 뿌리를 가졌다.
그러니 힘이 많이 든다. 일단 성립된 존재들이 가지는 관성은 공고하고, 항상 이익과 계산이 최우선인 집단의 성실함과 끈질김은 최강이다. 그러니 이길 때까지 싸워나가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히드라의 머리를 다시 자라게 하는 심장이 “기득권을 지키려는 썩은 검찰 사법”이라는 저자에게 동의한다.
그러니 정치권은 가진 권한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만 하고, 시민들은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통찰로 오염된 생각과 언어를 바꿔야한다. 공동체의 요구로 만들어야한다. 백년지대계로서의 교육을 바로 세우는 일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카이로스timing가 지금이 아닐까.
“우리는 언어로 생각하고 언어로 생각을 표현한다. (...) 좋은 정치는 언어를 정련함으로써 공동체를 일으켜 세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