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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에 대하여 - 무엇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가
문형배 지음 / 김영사 / 2025년 8월
평점 :
“정녕 부끄러움과 용기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는 나날이다.”
호의를 갖고 꾸준히 쓰신 글을 한 권의 책으로 내셨다. 평생 꿈을 이루셨다니 기쁘다. 알려진 삶의 면면처럼, 그 역사적 순간의 모습과 육성처럼, 반가운 이 책도 경애로 읽게 될 것이다.
새로 시작한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재방송을 틀어두고 들으면서 책을 읽었다. 앞뒤가 없이 한 면만 있는 불가능한 존재처럼, 말도 글도 솔직하고 깔끔하다. 이렇게까지 알고 싶진 않았는데(?) 짐작보다 더 많은 면을 알게 된다.
“판사는 타인의 인생에, 특히 극적인 순간에 관여하는 사람이다. (...) 시간이 갈수록 판사란 직업이 두렵다.”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 지켜져야 한다고 믿는 점에서, 그런 최소한의 합의들조차 지켜지지 않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 점에서, 저자 문형배도 독자인 나도 보수주의자다. 한국사회의 진면 - 강고한 카르텔 - 이 드러날 때마다 나는 수십 년 산 세월이 무색하게 놀란다.
그러니 판사로 재직하고 퇴임한 저자의 글을 시의적절하게 만났다. 세상에는 놀랍도록 직업윤리가 부재한 이들도 적지 않지만, 적어도 판사가 어떤 윤리의식을 가진 직업인지를 배울 수 있고, 그 기준선을 찾을 수 있다.
“큰 세상이 효율성과 같은 단일한 가치로 빌딩을 이루고 있는 반면, 작은 세상은 다양한 가치로 숲을 이룬다.”
어려운 단어 하나 없는 문장들처럼, TV화면 속 저자는 자신이 ‘상식파’라고 밝힌다. ‘작은 세상’을 꿈꾸며, 역사의 진보를 믿고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려는, 나의 행복이 주의의 불행한 사람의 여부에 영향을 받는다고 믿는, 민주주의 제도화에 기여하지 않는 이들도 민주주의를 누리는 사회를 바라는, 10년 후 자신의 삶을 평가하는 잣대로 삼으려고 기록을 남기는 상식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면서도, 진짜로 해내는 사람은 드문 상식파의 삶이다. 이 모든 게 진심이라면, 한국 사회의 가장 급진적인 삶은 문형배식 ‘상식파’에 속하는 이들이 사는 방식일 것이다.
“우정이 사회 내로 들어가면 농도는 옅어지겠지만 박애가 되는 게 아닐까? 박애를 바탕으로 이 사회를 재구성하는 방법은 없는 걸까?”
그가 바라고 추구한 작은 세상에는 호의와 우정이 넉넉하다. 어쩌면 재직하는 동안, 동료 재판관들이나 법원 사회에서도 그는 이 책에 기록된 바람과 믿음을 추구하며 살았을 것이다. 다양화와 존중이 함께 하는 직장의 풍경이 궁금하고 부럽다.
이렇게 술술 글을 잘 쓰시니 책으로도 다시 만나게 되면 좋겠다. 강연도 많이 다니시고 인터뷰도 다 거절하지 마시길 바란다. 퇴임 후 동료 시민으로서,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실 모습이 많이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