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작가
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엘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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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치고 지어내지 않은 것이 있을까?”

 

, 개역증보판이다.” 초역을 읽지 못한 독자가 이런 기쁜 반응을 보인 건, 종종 개역 증보판이 가져다주는 행운이 크기 때문이다. 글이 늘어났고 번역은 다듬어졌다. 표지는 물론 책 만듦새도 멋지다. 늦여름을 매일 힘겨워하며 지내는 중에 잠시 계절도 시간도 잊고 책을 읽는다.

 

실내는 죄책감이 들 정도로 쾌적하니 더위에 뇌가 휘둘리는 건 아닐 텐데, 초면인 작가의 문장들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시베리아, 모스크바, 지구의 낯선 고장들이 경험한 공간들이라서가 아니라, 사유하는 방식이 다른 걱정 없이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오래 생각하고 깊은 대화를 나누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다시 말해 쓴다는 것이 나에게는 이 부호들을 반복한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과정을 거쳐 나는 새로운 언어에 입양될 수 있었다.”

 

대학원 시절 지도 교수님이 책을 더 많이많이 읽어두라고, 사회에 나가면 이런 방식으로 책을 읽고 토론하는 기회가 거의 없을 거라고, 당부처럼 권하실 때는 설마 그럴까 했다. 그러나 밥벌이를 스스로 하는 일상은,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생긴 삶은, 더 이상 깊고 오랜 사유의 틈을 충분히 주지 않는다.

 

유쾌한 반전의 시선이 가득한 글을 즐기는 중에도 그 상실이 그리워 눈물이 고인다. 마치 돌이킬 수 없는 유년 시절처럼, 근심 걱정 없이 무언가의 본질을 경험할 수 있었던 그 짜릿하고 노곤하고 향기롭던 시절처럼. 일본어와 독일어로 쓰고 사는 작가의 한국어로 번역된 문장은 강력한 상기와 절감을 유발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삶을 온전하게 사는 게 아니라는 주장은, 사람과 삶을 주체와 객체로 나누어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임이 틀림없다.”

 

한 때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의미가 가진 유효 수명*이 얼마인지가 더 궁금해진지 오래다. 과학을 전공했기에, 인문학적 사유가 깊은 문장으로 사유하고 글을 쓰는 일의 즐거움과 고통을 제대로 안다고 하기도 어렵다. * The life of meaning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이런 작가와 글을 만나면, 잘 모르고도 그 힘에 기껍게 휘둘려, 현실의 한계를 슬쩍 넘어 환상적인 어디쯤에 머물 수 있다. 살짝 두려울 만큼 낯설지만 고혹적인, 기꺼이 헤매고 싶은 다정한 세계. 더 이상 뭘 성취하지 못해도... 뭐 어때, 하며 그냥 더 살고 싶은 시간이다.

 

나는 나도 살고 있고 나의 삶도 살아간다고 말하고 싶다. 나의 글도 삶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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