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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야나 렌조바 그림,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5월
평점 :
을유문화사에서 번역 출간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확장된 표현형>을 읽었다. 2018년과 2022년이라는 것이 새삼스럽다. 어느새 2025년, <불멸의 유전자>로 다시 만나는, 그가 본 생명과학의 세계가 몹시 기대된다.
“이 책의 주제는 동물 자체, 동물의 몸과 행동, 즉 ‘표현형phenotype’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다.”
조금은 두려운 기분으로 펼친 책은 뜻밖에(?) 사례들과 그림들이 가이드하는 안도가 되는 방식이었다. 언제 도킨스 식의 강력한 주장을 만날지 몰라 조마조마했지만, 새 책에 익숙해질 때까지 부담 없이 따라 읽을 수 없는 사례들이 반갑고 재미있다.
“이 책의 주요 논지는 모든 동물이 조상 세계의 기술 문서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자연선택이 가장 세세한 부분들까지 깊이 유전자 풀을 조각하는 엄청나게 강력한 힘이라는 숨겨진 가정에 도태를 둔다.”
본질과 이데아와 이념 대신, ‘생명’이라는 협력체의 ‘현상’으로 존재하는 찰나의 삶을 받아들이고 나면, “유전자 관점gene's eye view”의 생명관이 전하는 냉정한(?) 내용을 큰 저항 없이 받아들이도록 돕는다.
‘개체’로서의 나의 고유성, 실존, 자아 등의 개념을 내려두고, “유전자가 임시 탈것으로, 미래세대로 옮겨가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생물(몸)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필멸하는 나를 슬퍼하기보다 불멸하는 유전자를 더 알고 싶어진다.
“유전자는 어떻게 ‘불멸성’을 획득할까? 사본의 형태로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도록. 그럼으로써 다음 세대로 더 나아가 먼 미래까지 성공한 유전자가 전달되도록 몸들의 기나긴 연쇄에 영향을 미침으로써다.”
시험공부 하듯 일주일을 꼬박 읽었다. 결론은 내가 “자연선택 과정을 통해 살아남은 세균 무리의 협력체”라는, “우글거리는 공생성 수직바이러스의 군집”을 유전자 풀로 가지는 “표현형”이라는 것이다. 수십 년 전이라면 울고도 싶었겠지만, 지금은 평화로울 만치 괜찮다.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한 종의 유전자 풀은 저마다 미래로 여행하려고 굳게 결심한 바이러스들의 거대한 군집이다. 그들은 몸을 만드는 사업에 서로 협력한다. (...) 당신은 득실거리고 뒤섞이면서 시간 여행을 하는 바이러스들이 빚어낸 위대한 협력의 화신이다.”
몹시 불안하고 어지럽던 수개월이 지나 편안했던 긴 주말 동안, ‘나는, 인간이란, 생명이란,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왜 이런저런 행위를 하는지를 가만히 곱씹으며 배워볼 수 있었던 반가운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