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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평점 :
“때로는 믿어야 살 수 있어서 누군가를 믿게 된다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다 읽자마자 다시 읽고 싶은 작품, 창비 계간지 연재부터 읽었으니 이미 두 번 이상 읽은 내용도 있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다. 도대체 몇 단어를 사용했는지 강박적으로 세어보고 싶은 놀라운 세계다. 이런 창작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창경‘원’에서 찍은 어릴 적 사진이 잔뜩 있는 나이의 독자라서, 그때도 모르고 지금도 몰랐던 여러 겹의 역사를 환상 여행한 듯도 하다. 이 작품을 경험하는 층위는 여러 겹이고, 세월이 지나면 더 두터워질 것이다. 내 경험과 문학 세계를 마구 혼동하며 갖가지 감정을 맛보았다.
“나는 좋은 부분을 오려내 남기기 못하고 어떤 시절을 통째로 버리고 싶어하는 마음들을 이해한다. 소중한 시절을 불행에게 다 내주고 그 시절을 연상시키는 그리움과 죽도록 싸워야 하는 사람들을.”
사진 속 젊은 아버지가 영정 사진 속 아버지보다 낯익어서 그리움이 쓰라리다. 첫 줄을 읽기 시작하면 바로 몰입되는 작품임에도, ‘그 시절’을 떠올리느라, 왜 늘 날씨가 좋은지 모를 기억인지 상상인지의 장면들에 사로잡혀 호흡을 잊곤 했다.
“그럴 수 있다면 정말 낙원이겠지. 잃어버린 모두를 되찾는 곳이 바로 낙원일 테니까.”
내 기억은 생각을 거듭할수록 납작하게 줄어든다. 이해 영역 밖의 천재들, 작가들의 능력은 그 반대다. 기억이든 이미지든 하나가 떠오르면 시간을 두고 백만 개를 겹쳐 기어코 한 세계를 창조해낸다. 그 세계 속에서 나는 매번 편안한 숨을 쉬며 쉴 수 있다.
스포일링 당하지 마시고 고요히 혼자서 이 책을 만나보시기를, 그리하여 잘 쉬어 가시기를 권한다. #사랑해요김금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