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캐드펠 수사 시리즈 5
엘리스 피터스 지음, 이창남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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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결혼식장까지만 데려다 놓으면 시키는 대로 다 잘할 거고, 더 이상 불평하지 않을 거야.”

 

나병이란 단어를 오랜만에 보았다. 창작된 세계지만, ‘무언가를 이유로 격리와 차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목격하는 일은 어렵고 불편하다. 이 작품에서는 사건과 관련된 스토리를 깊게 만드는 인물을 등장시키는 장치로 쓰인다. 어쩐지 범인보다 더 깊은 사연을 가진 인물일 듯했다.

 

정식으로 약혼한 몸이었으니, 이는 결혼만큼이나 구속력을 지닌 계약이었다. 그 계약에서 빠져나오느니 차라리 인생 자체를 포기하는 게 쉬울 것이다.”

 

상속 재산이 많아도 어린 여성은 거래와 협잡의 도구로 이용되는 흔한 풍경이 새삼스럽게 분하다. 이베타 드 마사르도 그런 목적의 혼인을 앞두고 있었으나 상대인 고령의 신랑이 살해당한다. 약혼자를 의심할 법도 한데, 작품 속에서는 그런 의심조차 살 수 없는 존재, 마치 덫에 걸린 사냥감 같은 역할이다. 대신 사랑하는 남성이 용의자로 몰린다.

 

이 모든 일에 대해 그녀는 그야말로 부재하는 증인이었다. (...) 그녀는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값비싼 상품에 불과했다.”

 

단서를 따라 영민하게 움직이는 캐드펠 수사를 따라가는 재미는 전작들과 유사하게 즐겁다. 느린 속도감도, 특이할 바 없는 인물들도, 모두 현실감을 더한다. 한 매듭이 풀렸나 싶은데, 전혀 다른 방향의 이야기가 드러나고, 기대하지 않던 유형의 인물이 얽혀있는 것이 기분 좋은 도보여행 같다.

 

저는 거짓말을 하지도, 거짓으로 뭘 꾸며내지도 않습니다. 원하신다면 언제라도 진실을 말씀드리지요.”

 

예외없이 범인은 밝혀졌고, 캐드펠 시리즈에서는 현대사회에 부재하는 사필귀정의 방식이 있어 대리만족이 된다. 원칙과 질서와 정의와 공정은 얼마나 지켜지지 않는 것들인지. 그럼에도 이 추한 세상이 이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 차라리 기적이랄까.

 

죽은 영웅은 이미 스스로의 장례를 완성했으니 이제는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돌려야 하리라.”

 

무척 궁금했던 망토 속에 자신을 감춘 인물을 드디어 만났다. 그의 선택이 서글프고 사려 깊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죽음을 맞는 방법에 대해 여러모로 고민이 많이 드는 나이라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쉽게도 마지막 권이다. 덕분에 병가 같은 휴가에 즐거웠다. 21권까지 순탄한 출간이 이뤄지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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