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
이문재 엮음 / 달 / 2024년 7월
평점 :
종교가 없는 나는, 기도하는 법을 이문재 시인에게 배웠다. 가만히 눈을 감거나, 손을 감싸거나, 손을 모으거나, 누구의 이름을 부르거나, 초를 켜거나, 바람 소리를 듣거나, 걷기만 해도 기도가 되니, 하루에도 셀 수 없이 기도하는 기도쟁이가 되었다.
[오래된 기도]를 다 외운 줄 알았는데 적어보니 많이도 잊었다. 기도문과 시는 동의어 같기도 하다. 새롭게 만나는 기도문들을 이어쓰기 노트에 천천히 적어보고 싶어질 듯하다.
...............................
물리적으로 모든 존재는 시시각각 변하지만, 변하지 않았다고 확인되는 한시적인 것들이 있다. 시집을 펼쳐 읽는 동안, 그 ‘변하지 않음’이 살짝 부끄러우면서도 안도와 반가움이 들었다. 녹는점에 다다른 무언가가 녹아내리는 느낌을 주는 시들은 대개 예전부터 좋아하던 시인들의 작품이다.
이어쓰기 노트에 적기 전에 화면에 필사를 해본다.
그리고 제 발로 걸어들어온 것들은 아무것도 내쫒지 마셔요 어둠의 한자락까지 따라 들어온다 해도 문틈에 낀 그 옷자락을 찢지는 마셔요
- 나희덕, [해질녘의 노래] 중에서
노란 종달새(수우족), [인디언 추장의 기도시]와 [나바호 인디언의 기도]는 예전과 완연히 다른 느낌이다. 그 시절 오만함은 고스란히 부끄러움이 되어 내 머리 위로 떨어져내린다. 내 기우가 모두 틀리지 않아서 서글픔이 몰려온다.
다시 전문을 외우기 시작한 내 기도 스승, 이문재 시인의 [오래된 기도]의 구절을 의지 삼아, 고개 들고 흐린 하늘을 잠시 보았다.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그리고 이해인 수녀님의 기도문을 밤의 기도문으로 정해볼 결심을 한다.
어느 날 닥칠 저의 죽음을
미리 연습해 보는 겸허함으로
조용히 눈을 감게 하소서
- 이해인, [오늘을 위한 기도] 중에서
[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는 읽고 있는 지금이 21세기인 것이 무색하게 큰 웃음을 주었다. 기억하고픈 기도 내용들인데, 묘하게 냉철하고 냉소적이다. 이분의 시를 더 많이 읽고 싶은데 이름조차 몰라서 많이 아쉽다.
적당히 착하게 해주소서. 저는
성인까지 되고 싶진 않습니다만……
어떤 성인들은 더불어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힐렐의 시에 크게 혼이 나고(?), 스물네 시간이 남았는지, 스물 네 달, 스물 네 해... 얼마가 남은 지도 모른 체 태연히 낭비하는 내 삶의 태도가 또 부끄러웠다. 시는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답게 인간을 깨우는 방식이다.
‘다 공부지요’ 말하고 나면 좀 견딜 만해집니다.
- 김사인, [공부] 중에서
그리고 내게 명상을 처음 가르쳐준 스승, 틱낫한 스님의 [화해]를 다시 만났다. 영어로 읽은 때처럼, 한글로 읽어도 눈물이 펑펑 난다. 나는 누구와도 이런 화해를 못할 깜냥인 것 같아서 서러워서 운다. 이번 생에는 이런 이해와 자비를 내 것으로 삼을 수 없어서 운다. 타인의 고통을 대개 외면하고 어려움도 제대로 이해 못하고 사는 것이 부끄러워서 운다.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포슬한 감촉의 시집이, 기도문을 엮은 고운 책이 반갑고 감사하다. 천천히 읽고 다시 읽고 더 천천히 적어보고 거듭 기도해 볼 것이다. 오늘은, 순전하고 간절한 많은 기도들이 세상을 뒤덮은 온갖 폭력을 멈추는 큰 힘이 되어주길 간구하며 잠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