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이야기
공성식 지음 / 좋은땅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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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사람도 시스템도 없는 현실에서,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일 거야!”라고 소리 지르며 화를 내며 해결을 지연시키는 대신, 대화와 협의가 필요하다. 유용한 결론에 이르려면 사전에 시행된 관련 조사와 통계도 필요하다.

 

그러니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준비와 절차와 태도 없는 힘겨루기는 불필요한 스트레스이자 예상 못한 부작용만 낳는다. 그 문제가 생명과 직결된 의료라면 문제는 매순간 더 심각해진다.

 

뉴스를 굳이 따라 읽지 않아도 현실에서 체감하며 불안과 공포가 커지는 한국사회의 의료 상황이 기막히다. 의료인의 가족, 친지, 친구이자 시민으로서 속상하고 복잡한 기분으로 상황을 지켜보며 이 책을 펼쳤다.

 

수술팀으로 일하는 심장외과, 신경외과 의사들이라 현 상황이 악화되면 치료 지연이 아니라 환자들의 생사가 갈릴 판이다. 운영을 불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의 한계를 개인의 헌신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서로 멀리까지 불러서 죄송하다며 얼른 응급실로 향했다. 호흡기 내과 선생님은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목발 짚고 엄청난 속도로 나보다 빠르게 움직여 주셨다. 우여곡절 끝에 (...) 다량의 이물질을 뽑아내자마자 환자의 폐와 산소수치는 매우 안정화되어 곧바로 수술방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병원 내에서 가장 숨 가쁘고 선택과 판단이 빨라야하는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의 최악의 현실을 만날까 조금 두려웠는데, 이 책의 사례들도 서로 돕고 매순간 최선을 다하며 서로 감사하고 오래 기억하는 사람들의 만남들이다. 뉴스에는 온갖 범죄 사건이 도배해도, 현실에서는 선하고 서로 돕는 이들이 더 많은 것처럼.

 

최대한 태아에게 덜 해롭도록 많이 신경 쓸 테니까 잘 버텨 봐요. 모든 약은 쓰기 전에 제가 알려 드릴게요. 내성균 항생제는 임산부 B 등급이니 꽤 괜찮아서 얼른 씁시다.”

 

다행이라 생각되는 뭉클한 사례들이 많지만, 목발 짚고 일하는 의사의 노동환경에 마음이 무겁다. 위기가 정말 기회라면, 이제 한국사회는 정말로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문제들을 드러내어 근본적 해결을 위해 바꾸고 고쳐나가야 한다.

 

돈벌이 수단으로서의 의업과 돈벌이 쏠림에 따른 선호 분과의 문제를, 의학 공부는 어째서 개인에게 교육비를 과다하게 부담시키는 구조인지, 의료가 민영화 상품이 되어도 좋은지, 어째서 치료 받을 권리는 다른 권리만큼 현실에서 보장받지 못하는지…….

 

환자들은 (...) 가까워서, 119가 데려다줘서, 다른 병원에서 안 받아 줘서 (...) 이 응급실로 찾아온다. 그리고 누군가 마침 그 시간에 근무 중인 응급의학과의사에게 배정이 되어 잠깐 스쳐 지나간다. 이렇게 우리는 이름 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급박한 상황에서는 그들이 의지할 유일한 의사이기도 했고, 난처한 때는 갈피를 잡아 주는 등대이기도 했다.”

 

우연과 순간적인 선택은, 응급실을 가장 다양한 사람과 사연으로 채운다. 곡기를 끊는 것으로 사별을 애도하는 고령의 어르신, 화재에서 다른 이들을 구하고, 뇌사판정 후 장기기증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을 또 살리고 떠난 20대 청년, 범죄 피해자를 생각하면 화가 나고 아프고 힘들지만, 가해자를 치료하고 관리하는 의사, 모두의 수고로움과 간절함 속에 생명이 태어나고 사라진다. 매순간의 애씀으로 사회가 유지된다. 모든 것이 먹먹하고 애틋하다.

 

당신들의 뜻으로 연명하기보다는 며칠이라도 명료하게 살기를 정하신 분들이 웃고 계신 걸 보면 마음이 너무나 쓰리다. 손을 잡아 드리고 건강하세요.”라는 말 외에는 할 수가 없었다.”

 

민망할 정도로 젊은 의사를 존중하는 푸근한 어르신들도, 시행착오와 경험을 배움으로 바꾸어 기억하고 성장하는 겸손한 전공의의 태도도, 절차에 따른 업무가 아니라 정감을 느끼고 나누는 풍경도, 서로를 치유하고 독자를 치유한다.

 

병원 내부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치료 받을 권리와 자격의 현실적 격차에 대해 질문하고 고민하는 젊은 의사의 모습에, 현실 정치와 사회의 작태가 드리우니 코끝이 찡하다. 분야는 달라도 고민이 도착하는 곳은 다르지 않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예상하든 예상하지 못했든 누군가에게는 바라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사건이 크게 터지면 새로운 인력들이 지원하지 않는 악순환이 생긴다. (...) 겨우 버텨 내는 의사들이 남아 있지만 (...)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부디 현 사태의 결말이 상처만 깊은 불모지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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