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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먹는 자들 1
서니 딘 지음, 한지원 옮김 / 윌북 / 2024년 3월
평점 :
현실에 있으면 방문해보고 싶은 세계관, 책 속으로 떠날 수 있어 다행인 고딕 호러 판타지 미스터리. 책을 먹어치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만화 같은 표지에 기분이 둥실둥실해진다. 책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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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지만 응당 사로잡혀 있어야 할 두려움 또한 가장해야 했다. 인간 여성은 밤길을 혼자 걸을 때 늘 조심하는 법이니까. 간단히 말해 데번은 늘 먹잇감처럼 행동해야 했다. 지금은 포식자에 더 가까워졌지만 말이다.”
판타지 문학을 무척 좋아한다 ― 몇 년 간 해리포터 신간 출간일마다 설렜음, 출간일 맞춰 여름휴가 시작 등등. 흥미로운 소재에 당연히 재밌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짐작은 다 틀렸다. 훨씬 더 흥미진진한 세계다. 놀람과 충격의 연속이다. 소설인데 막 필사도 하고 싶어진다.
“어렸을 때 데번은 책을 매번 먹기만 하기보다는 때로는 읽고도 싶었다. 물론 제일 중요한 것은 직접 책을 선택하는 것. 어떻게 자신을 만들어가고 무엇에 몰입할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데번’ - 영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지역 - 이란 이름의 주인공 매력이 엄청나다. ‘책을 먹는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소재이나, 전체 서사는 더 풍성하고 거대한 사회학이다. 뇌 속에 살아 움직이는 인물과 풍경이 쉴 새 없이 지나간다.
“오래된 가죽(색이 진할수록 좋은) 장정에 멋지게 글자가 새겨져 있는 빈티지 책들, 책장을 열면 갈색 가장자리에서 부드럽고 메마른 종이 가루가 떨어져 나오며 아련한 3월의 비 냄새를 풍긴다.”
영국의 어두컴컴하고 좁은 골목들이 비에 젖어 풍기는 축축한 냄새와, 그 공기를 기어이 뚫고 나오는 기름 냄새와, 맛이라곤 없지만 죄책감만은 많이 덜어주는 어느 비건 식당의 정체모를 메뉴가 갑자기 두두둑 떠오른다.
“규칙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 너는 오늘 사고를 작은 규칙 위반 정도로 볼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이게 네 행동은 고의적 반항과 교묘한 범죄성을 보여주고 있어. 이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지. 가부장도 내 말에 동의할 거다.”
나 몰라라 하고, 막 살고 싶어진다. 루틴도 책임도 의무도 계약도 일상도 다 모른 체, 여행길에 오르고 싶어진다. 데번처럼 달리고 뛰어오르고 날아서 훌쩍 어딘가로, 비밀스런 계획을 가지고, 내가 원하는 대로 나를 해방하고 싶네.
“우린 여자아이들을 처벌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반드시 알아야 할 게 아니면 여자아이에겐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열렬한 찬사가 가득한 뜨거운 추천 글들은 1권을 읽고 나니 벌써 이해가 된다. 표지는 긴장 풀고 마음 편히 진입했다 화들짝 놀라고 또 놀라게 만들려는 속임수 장치 같다. 2권을 주문해야겠다. 나는 이 이야기의 끝을 봐야하니까.
“조용히 살라. 규칙을 준수하라. 가족을 기쁘게 하라. 이대로만 하면 삶은 만족스러울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