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쇼맨과 운명의 바퀴 블랙 쇼맨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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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의 마지막, 운명의 바퀴가 돌아가듯 속도감과 긴장감 있는 전개로 후련한 결말에 이르는 단편들일 거란 기대! 미스터리 추리 장르 책의 보라색 표지는 우선적으로 투구꽃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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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독성에 관해서라면 이렇게 잘 읽히는 작가도 드물 거란 생각이 이번에도 들었다. 작은 공간에서 소곤거리는 급할 것 없는 대화처럼 진행되는 이야기는 시간을 잊은 채 계속 듣게 되는 기분이랄까.


첫 번째 작품은 현실에 워낙 자극적인 사건들이 난무해서인가, 갈등과 사건의 내막이 도리어 인간적이고 소박하고 선하게까지 느껴진다. 물론 낯선 정서도 있다. 그 거리감이 나도 타인도 차분히 관찰하고 수용할 여지를 준다.


“친생자 추정이라고 해서 여성이 이혼한 날부터 삼백 일 안에 낳은 자녀는 법으로 전남편의 아이임을 인정하지. 이혼해도 친권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태어나지 않은 배 속 아이에게도 상속권이 생겨.”


“출산한 여성 본인이 아이의 아버지가 전남편이 아니라고 주장해도, 출생 신고서를 제출하면 아이는 전남편의 아이로 등록돼. 여성이 진실을 말하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아이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누구라도 아버지로 등록해야 하고 , 그건 전남편으로 한다고 정한다. 이걸 친생자 추정이라 하지.”


‘천사의 무릎베개’와 ‘천사의 선물’이라는 르카도드랑주의 설정이 매력적이다.


모녀가 등장하는 두 번째 작품은 어쩔 수 없이 좀 아프고 슬펐다. 애증의 내용과 강도에 따라 유사한 상황의 모두가 다른 선택을 하겠지만, 기억을 잃어가는 작고 늙은 어머니란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무거운 감정을 부르기도 하니까.


“나나에는 안 죽었어, 그건 내 딸이 아니었다고요.”


“딸이 있었어요, 외동딸이. 노후에는 그 애하고 둘이서 살려고 했죠. 하지만 갑자기 자살했어요.”


어머니가 모녀관계를 기억하지 못하게 되자 겨우 한 인간으로서의 과거와 사연을 듣게 되고 이해의 진전이 생기지만, 너무 쉽고 너무 빠른 화해를 그리지 않는 점이 슬프지만 마음에 든다. 그렇게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니까. 그래도 한없이 슬프고 쓸쓸한 마지막 장면에 눈이 붉어진다. 


세 번째 작품은 다소 불편한 기분으로 읽었다. 나름의 이유와 선의가 있다고 해도 이런 방식으로 조정당하고 속는 건 정말 싫으니 사양이다. 다케시의 사람을 간파하는 능력이 급 퇴조하거나 사라진 건가 싶게 당황한 설정이기도 하다.


“이대로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을 것 같은 상황에서 나타난 게 구리쓰카였다. 이번에야말로 행운의 여신이 웃어주기를, 미나는 그렇게 바랄 뿐이었다.”


어쨌든 세 개의 단편을 읽으며 기대하지 않던 일본 사회와 문화와 감수성에 대해 새롭게 배우고 비교해볼 기회가 좋았다. 덕분에 이런 내용의 시스템을 통해 일본사회가 만들고 지키려한 사회적 가치들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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