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103 소설Y
유이제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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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이 등장하니 읽기도 전에 무섭습니다. 어두운 터널이란 공간이 주는 공포감과 두려운 존재가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 세상을 구하기 위해 열어야 하는 문이 있다면 두려움에 지지 않고 열게 될까요? 문을 연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책을 펼치면 멈추지 못하고 다 읽게 될 듯한 작품입니다. 대상작이라 기대가 더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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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본을 읽으면서 상상 속 세계는 벌써 디즈니나 넷플릭스의 드라마화된 장면들을 본 듯 빠져듭니다. 터널이란 제한적 공간이 주는 밀폐감과 닮은 인간 세계의 면면들에 익숙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어째서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누군가의 욕망은 이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다른 많은 이들의 삶을 결정지어버리기도 하는 걸까요. 인간은 어째서 명백하게 눈에 보이는 심각한 잘못들을 못 본 척하고도 살아지는 걸까요.

 

정체 모를 괴물은 전쟁 무기를 양산할 목적에 인체 실험을 하던 결과이고, 통제도 관리도 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르기만 하지, 끝까지 수습하지 않아 벌어진 상황은 역사 속에서 거듭 확인하는 현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터널이 꽤 안전한 피난처인가 했던 짐작과 달리, 터널 속에서 생존해야했던 이유도, 터널 밖에서 죽어야했던 이들도, 작은 섬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이들의 삶도 원인과 책임이 드러날수록 어이없고 분노할 일입니다.

 

영어덜트 소설이라 주인공도 주요 인물들도 영어덜트들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의 모습이 더 뚜렷하게 대비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삶의 구조를 망가뜨리고 결과에 무책임하고 여전히 이기적인 모습들이 현실을 자꾸 소환해서 괴롭습니다.

 

나이가 들어보니 나이만한 어른이 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거라는 걸 절감하지만, 그렇다고 거침없이 추악하고 악랄하게 살아야 할 이유란 없는 것이지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주인공 아이들이 마주하고 헤쳐 나가는 시간이 고단하고도 유일한 희망입니다.

 

잔혹한 비극들에도 불구하고, 생명은 이어지고, 예상하지 않은 생명도 태어나고 서로 만나게 됩니다. 각자의 서사가 더 길고 구체적이면 좋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숨 가쁜 전투 끝에 결말에 다다른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쉽습니다.

 

고정관념은 물론,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가하던 가스라이팅이 고집스런 신념이 되고 정체성이 된 이들은 변화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 장면이 문제를 직면하고도 외면하는 현실의 우리와 어긋남이 없이 닮았습니다.

 

에필로그까지 읽고서야 어째서 터널 ‘103’인지를 알게 됩니다. 아이들이 생존한 결말 이후의 시간이 무척 궁금합니다.

 

다형은 터널에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 터널에 이름이 있다는 것은 지구에 이름이 있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터널 밖으로 나와서야 터널이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게 아니겠다는 자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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