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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23년 11월
평점 :
응답하는 능력은 책임을 다하는 태도이다*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외면하고 덮고 묻어 버리는 대신 응답하는 일은 상상보다 어렵고 용기가 필요하다. 응답을 하면 자신의 응답에 대해서도 책임을 보여야한다. 대게 이 단계에서 나는 슬그머니 용기가 빠지고 계산이 빨라져서 결국엔 손해도 희생도 크지 않은 수준으로 타협하고 만다.
* response + ability = responsibility
그러니 이런 용기는 가능하면 어릴 적부터, 짧지 않는 시간을 경험하고 훈련할 시간이 필요하다. 어릴 적 나는‘공부’란 열심히 배워서 사회에 유익한 무엇을 환원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저자는 그런 초심을 잊거나 포기하지 않고 지향을 잃지도 않고 계속 걸어 나가 그 용기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김승섭 교수의 책들을 꾸준히 읽는 건, 저자가 선택하고 살아가는 삶이 응답하는 결과물이 뜨거운 분노와 욕설과 비난에서 가장 먼, 데이터와 팩트에 기반을 둔 철저한 연구 보고서이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은유를 사용한 문장들로도 전달하지만, 감정적 낙관으로 귀결되지 않는 글에서 독자인 나는 단단한 힘을 얻고 든든한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냉정하게 살핀 데이터와 팩트를 읽으며 더 선명하게 보이는 현실에 울기도 한다.
“임상의사를 하지 않음으로서 개개인의 고통으로부터는 멀어지지만, 고통 일반에 대해서는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에 마음을 내는 것. 그건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거든요.”
전혀 합리적이지 못한, 오래된 헛소리 같은 막(내뱉는)말들이 시끄러운 사회에 살면서 나는 자주 바랐다, 질리도록 합리적인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고.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사회적으로 표준화된 합리성의 방식으로 계약과 합의를 할 수 없는 이들에게, 조사하고 연구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합리성’이란 어떤 의미이고 수단일 수 있을까.
“합리성을 빌미로 약자의 투쟁을 폄훼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 합리성은 지식의 양으로 얼마만큼 내 입장을 뒷받침하느냐의 여부인데, 지식 생산엔 ‘자원’과 ‘자본’이 들어갑니다. 그런 자원이 없는 이들은 기본적인 생존을 이야기하는 데에도 (...)”
정책과 법을 만들고 싶은 이들에게는 데이터와 통계가 필요하다. 그런데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데이터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거나 부재한 상태다. 현대사회에서 숫자로 기록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정책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그래서 김승섭 교수의 연구 데이터는 귀하다. 개인에게만 모든 문제의 책임을 묻는 대신 사회적 상처로 가시화된 기록은 실제로 소송에서 법정 증언으로 쓰인다. 건강과 질병은 그의 연구를 거쳐서 공정과 정의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가 찍은 사진들은 분석 보고가 남긴 현실을 드러내고 채운다.
모두가 어수선한 몇 주간이었지만, 그래도 일단 책모임을 시작한 것은 참가한 우리 모두에게 참 필요하고 결과적으로 좋은 결정이었다. 지금도 누가 툭 건들면 눈물이 푹 떨어질 지도 모르는 심리 상태지만, 몸도 마음도 한껏 움츠려든 상황이지만, 그래도 읽고 쓰고 얘기를 나눴다. 연구자가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눈앞이 뿌옇다고 세상을 버릴 수는 없다.
“앞뒤 맥락을 잘라낸 채 몇 마디 말을 인용하며 사람과 사건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는 일이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시대에, 이 두꺼운 책들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사람들 (...)”
휠체어가 갈 수 있는 모든 길과 장소에는 휠체어가 없어도 걸을 수 있는 모두가 갈 수 있다. 기댈 곳 없는 이들의 손에 쥐어지는 작은 무기들, 저항하고 지키기 위한 무기들은 다른 이들도 보호한다. 타인의 고통을 측정할 방법은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고민한 질문을 계속하는 이들이 있다.
전선戰線은 하나가 아니고, 특정 맥락과 상황에서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질문하고 의심하고 고민하는 태도이다. 표준은 무엇이고 정상은 무엇이냐고 따져 묻고 편견을 구분해내자는 애씀이다.
“차별하는 줄 모르고 하는 차별 행동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저는 차별금지법이 그 인식과 경계와 행동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공적 마인드가 없는 권력과 저널리즘이 없는 언론은 인지도 부끄러움도 없이 자극적이고 저질스러운 표적 생산과 공격을 일삼고,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일상에서 약해서 저항하지 못하는 존재를 희생양으로 삼기에 주저함이 없다. 연령, 성별, 직업군도 모르는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에 참여하는 불특정한 구성원들은 각자의 삶에서 발화된 분노를 그 희생양에 쏟아 붓는다,
노인은 많고 어른은 적은 사회라서, 나이만 먹은 중년 성인인 나는 부끄럽다. 이토록 불완전한 우리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인 차별주의자가 되고 가해자가 되어 살지 않으려면, 공동체의 시스템을 늘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야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시키고 엉뚱한 범임을 지목해서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역사 속에서 그 싸움이 있었기에 우리는 누군가를 격리하고 배제하지 않는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었고, 그렇게 인간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공부도, 인간이 살아가는 법도 잘 모르겠다고, 질병의 근본적 원인이 부조리한 사회라는 걸 밝히니 대답이 더 멀고 무겁다고 하지만, 계속 공부만 하시라고 응원하고 싶은 학자다. 기록 이상의 의미를 품은 책으로 자주 만나 뵙자고 마음을 조아려 부탁드리고 싶은 연구하는 학자다.
“공부가 직업인 사람은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특히나 연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기에 좌절의 연속이에요. 그 일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그 좌절에 익숙한 몸이 돼야 하지요.”
마지막으로 “고통과 분노의 에너지로 존재하는 경험들을 데이터로 수집하고 분석해 논문과 책의 형태로 정리하는” 사회역학**이라는 학문분야가 널리 알려지고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늘었으면 하고 바란다.
종교도 기복의 성격이 강하고, 의학 역시 출세와 자산 증식을 위한 기술직업으로 여겨진지 오래지만, 그래서 더욱 만들어갈 미래와 공동체에 관한 다양한 고민이 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Social Epidemiology,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구조, 제도, 관계 등을 추적하는 학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