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클래식 그래픽 노블
조지 오웰 원작, 피도 네스티 지음, 강동혁 옮김, 염승숙 해설 / 사계절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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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는 상당히 어두운 톤의 그래픽이다. 만화라고는 하지만, 크기가 일정한 컷이 단정한 방식이라서 주제처럼 진지하고 묵직한 분위기가 여전한 매력이 있다. 나처럼 조지 오웰 책을 만화로 읽을 생각을 못 해본 독자들에게도 너무 낯선 느낌이 없어서 좋다.



 

예전에는 좀 더 SF적 상상력과 문학으로 마음 편히 만났다면, 지금은 무척이나 서글프다. 사회의 문제와 비밀을 먼저 알아챔 사람이, 변화를 위해 애썼지만 실패하고, 저항을 그만 두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결국 지배 대상인 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되는 결과라니. 나대신 사랑하는 이를 고문해 달라는 내용은 작가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지독하게 아프다.

 

그를 마음 편히 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훨씬 더 약하고 비겁하게 굴 것 같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문당하고 처형당하고 배신과 변절을 강요당하고 망가졌을지 너무나 슬프기 때문이다. 억울함 대신 죄책감으로 원망과 고발 대신 기록도 없이 사라져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문 얘기를 먼저 했지만, 지배대상은 기억과 언어다. 인간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이루는 것들을 통제하고 관리함으로써 어떤 지배가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그래픽이라서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서늘해진 경고의 메시지를 품은 문학이다.

 

새 언어의 목표는 생각의 범위를 좁히는 것이라네. 우리는 결국 사상범죄를 문자 그대로 불가능하게 만들 거야. 사상범죄를 표현할 단어가 사라질 테니 말이지. 필요한 모든 개념은 정확히 한 단어로 표현되겠지. 혁명이 완수되는 건 언어가 완벽해질 때야.”



 

이튼스쿨을 다닌 조지 오웰 자신이 말했듯이* 사립학교에서 옥스퍼드를 거쳐 지배계급이 되는 영국의 초엘리트들은 전문 지식보다 정치적 언어유희를 더 중시하는 태도를 배운다. ‘옥스퍼드 유니언이라는 토론 클럽에서는 지배계급의 말솜씨를 훈련시켜 정치무대로 내보냈다. 이 패턴은 영국 현대사 전반에 걸쳐 반복됐다.

 

* “어떤 형태로든 과학은 배우지 않았다. 정말로 너무 무관심해서 자연사에 관한 관심조차 꺾일 지경이었다.”

 

우리가 기억하지 않고 기록하지 않고 말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으며 어떤 세상을 살게 되는지를 그래픽으로 가시화된 문학을 통해 다시 깨닫는다. 가능성과 경험 모두 두렵고 무섭다. 더 위험한 공포 영화는 없다. 피로하고 지쳤다고 조금 더 안주하고 외면하고 싶을 때 떠올린다면 목덜미가 서늘해질 경고다.

 

1984년은 지났지만, 우리가 안주하는 어느 순간에도 1984의 풍경은 다시 도래할 수 있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구호는 낡지 않았다. 힘이 빠지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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