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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시 향 - 밤새 서성이는 너의 잠 곁에
나태주.한서형 지음 / 존경과행복 / 2023년 10월
평점 :
책을 받고서야 제목의 뜻을 알았다. 잠과 시와 향. 셋 다 좋아하고 셋 다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러니 향을 품은 시집이 내가 잠들기 전에 함께 하고, 잠들고 나서도 향이 주위에 떠돌 거란 기대에 기쁘다.
일 년에 마지막 한 달은 다 같이 최선을 다해 쉬는 사회 시스템이었으면 훨씬 더 행복한 다른 세상일거란 상상을 자주 한다. 그럼에도 12월과 연말이라서 좀 더 애쓰는 기회가 되는 것도 기쁘다.
정기적 후원 말고 기억나는, 마음에 걸리는 곳들에 조금이라도 후원을 하고, 안부인사가 뭐가 그리 어렵다고 잊고 사는 소중한 이들에게 보낼 선물을 고른다. 특별히 필요하거나 유용한 게 없는 이들에게는 책을 보낸다. 이 책도 목록에 올려 두었다. 잠과 시와 향이라니 완벽하다.
일주일에 하루는 늦잠을 자자고 결심했는데, 잘 안 된다. 성공하면 몸은 가뿐한데, 반나절을 잃어버린 듯해 당황한다. 휴식이 짧은 피로사회라 그렇다. 하루 4시간이나, 일주일 4일 노동이 좀 더 확대되기를, 적어도 옵션으로 존재하기를 바라지만, 그전에 마련할 사회안전망이 적지 않다.
후각은 해마와 가장 가까운 뇌에서 감각하는지라, 늘 추억과 강렬하게 결합되어 있다. 잠시향의 향을 느끼면서, 45년생 시인의 시를 따라 읽다보면, 반백년쯤 산 내 시간의 추억과 향도 소환된다. 잊지 못해서 좋고 아픈 기억들. 그중에는 햇볕에 바삭 말린 새 이불을 덮어주던 조부모님이 계시다. 나는 코 밑까지 이불을 덮으며 맡던 그 향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한서형님이 영감을 얻은 것이 햇볕에 바싹 마른 보송보송한 이불이라고 해서 온갖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하는 몸이지만, 책에 코를 묻고 숨을 쉬어 보았다. 부드러운 향이다. 걱정 없이 깊은 잠을 자고 싶어진다.
오래 읽기 어려울 거예요
쉽게 읽지 못할 거예요
하루에 한 페이지
두 페이지만 읽어도
잠이 찾아올 거예요
그것도 당신이 기다리던
바로 그 잠이.
잠 못 드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만든 책, 잠을 줄여 책을 읽으라고 하지 않는 책, 그 다정한 생각들이 가득한 편안한 위로 같은 책이다. 향기 나는 책갈피도 주셨는데, 작은 몸에 짙은 향이 배어있다. 오래 머물러 주기를.
오늘은 일요일이니 3부에서 받은 격려를 기억하며 잠들고 싶다. 내일 아침이라는 미래가 오면, 반갑게 맞을 것, 힘내서 살아갈 것. 내일 만나고 함께하는 이들에게 좀 더 다정할 것.
오늘 잠들 때까지 하지 못한 일이
내일 나의 소망이 되고
사는 동안 세상에서 하지 못하고 남겨둔 일은
다른 사람의 소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