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아는 사람 - 유진목의 작은 여행
유진목 지음 / 난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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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든 나쁜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이기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

 

몇 주 전에 승소 소식을 기록하면서, 2023년도 드문 좋은 소식이라 상처에 바르는 연고처럼 느껴져서 나는 좋았는데, 그 소식을 듣기 위해 무슨 읽을 겪어야했는지는 오래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도 모르는 일 때문에 육 년을 시달리며 살았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아무도 모르는 일 때문에 수천만 원을 들여가며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는 일에 매달렸다니. 이렇게 아무도 모르는데. 나는 그저 모른 척하고 지나갈 수는 없었나?”

 

6년 이란 시간이 이미 충분하게 지칠 무거운 세월이고, 싸우고 증명해야 할 일들에 헤집어지고 파헤쳐져 무저갱의 슬픔에 잠긴 분들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시인이 마침내 고통과 분리되고 작별하기 위한 시간이 처절하다.

 

불행은 하늘을 지우고 구름을 지우고 산을 지우고 나무를 지우고 강을 지우고 철 따라 피어나는 꽃들을 지운다. 인생이 아무 대가 없이 인간에게 주는 행복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런 뒤 자신만을 보라고 불행은 속삭인다.”


 

하노이의 모든 것이 을 느끼게 하고 몸을 찾아주는 환경처럼 느껴졌다. 비록 너무 뜨거운 태양, 너무 더운 날씨일지라도. 깊은 슬픔이 지운 구체적인 풍경을 찾아가는 시간. 떠남과 휴식.

 

사십사 도의 날씨는 이러다 죽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이 죽을까봐 걱정하다니? 그러니까 사십사 도의 날씨는 어떻게든 무사하고 싶은 날씨였다.”

 

잃은 시간과 기억을 기리며 슬픔의 수면 위로 올라와 다시 바라본 풍경을 기록하듯, 시인이 포착한 필름 사진들이 꼭꼭 눌러 쓴 삶의 모든 순간처럼 보인다. 슬픔에 지지 않기 위해서는 실체가 필요하다. 나는 그렇다. 그래서 종이책이 필요하다. 뭐가 되었든 써두는 기록도 필요하다.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것들을 너무 그리워하다 병이 날 것 같으면 혈당 조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뭔가를 꼭꼭 씹어 삼킨다. 마음이 허청해서 드러눕고 싶고 눈을 뜨고 싶지 않을 것 같으면 입은 그대로 운동화만 신고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걷다 돌아오는 길의 나는 한참을 더 단단하게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 빨래. 설거지. 밥 먹기. 잠자기. 친구와 이야기하기. 고백하기. 어떤 것은 비밀로 간직하기. 울음을 참기.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기. 웃기. 속상해하기. 억울해하기. 노력하기. 포기하기. 용기를 갖기. 실패하기. 성공하기. 묵묵히 살아가기. 소리지르기. 가슴을 치기. 다독이기. 위로하기. 외면하기. 잊어버리기. 잃어버리기. 어느 날 떠올리기. 안도하기. 한숨 쉬기. 악몽에서 깨어나기. 그리하여 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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