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섬세함 - 이석원 에세이
이석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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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 내리고 첫 눈 소식 들은 날 만났다. 표지 색감 덕분에 겨울이 더 깊어가는 크리스마스 생각이 난다. 작가의 당부대로 단순하게 불안 없이 평안하게 책과 시간을 보낼 결심을 한 주말에 천천히 읽었다.

 

자꾸만 까무룩 잠이 들곤 했는데, 작정하고 쉬는 주말이라 긴장이 풀어진 것도 있지만, 작가의 문장이 소곤소곤해서였다. 소위 중년쯤 된 친구들 모임에서 모두 끄덕끄덕할만한 이야기들을 다들 조용히 듣는 기분이랄까.

 

“‘뭘 하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뭘 안하게 해 주세요.’에 더 가까운 소원이었다고 할까.”

 

격렬한 논쟁도 특별히 새로울 일도 대단히 극적인 일도 드물게 된 그래도 아직은 힘을 내야할 시기의 편안한 수다 같았다. 그래서 좋았다. 주말이고 겨울이고 곧... 어느 계절보다 계절병을 앓는 12월이라서.

 

이렇게 타인이 내 마음에 지펴준 온기로 나는 또 얼마간은 시린 마음 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지.”


 

오랜만에 마음 풀고 읽었다. 다 내가 한 말 같기도 하고 내 친구들이 한 말 같기도 하다. 이 책의 주 독자층은 아마도 내 연배 전후일 듯하다. 어쩐지 한 일도 없이 소속감이 설핏 드는 것도 좋다.

 

정말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들, 이를테면 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참고 해야 하는지, 참는다면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지,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

 

가끔 어리고 젊은 시절의 호기와 오해가 부러울 때도 있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의 불가능함을 절절히 인지할수록 더욱 그렇다. 어쩌면 우리가 뜨거운 애정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오해가 이해의 마법이었을 지도 모른단 생각을 문득 한다.

 

그래서 나는 나 편하자고 타인의 행동보다 나의 해석(저자는 이해라고 했지만)에 점점 더 의지하게 된다. 그건 때로는 비겁한 외면과 거짓으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빨리 편해지고 싶어서, 불편함이나 미움이라는 뜨거운 돌을 오래 품고 살 체력이 없어서. 그래도 아직은 그런 스스로에게 놀라기도 한다.

 

[런던이 내게 준 것]이라는 소제목을 보고, 떠나고 싶은 병이 재발할 것만 같았다. 올 해 12월에 스스로에게 주는 생일 선물로 작은 집을 사서 혼자 살까, 하는 미친 생각도 했다(여러 번). 그렇게 못할 이유 같은 건 뭐가 있나 싶어서 무섭다.


 

파티와 선물과 요란한 축하를 원한 적은 없지만, 일 년에 한번 불편하지 않은 좌석에서 <레 미제라블> 뮤지컬을 보는 연례행사가 그립다. 사진으로 찾아본 런던 크리스마스마켓이 너무 번쩍거려서 많이 낯설어서 정신이 맑아졌다.

 

친구란 원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에딘버러로 이사 간 친구가 보낸 소식엔, 1117일 에딘버러 크리스마스마켓이 열렸다고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자격을 끝내 얻고 만 의지의 친구는 어느새 세상을 지탱하고 또 살려내는언어로 나를 반성케 한다.


 

연말, 아니 12월을 또 어떻게 허정거리며 보내게 될지 아직 잘 모르겠다. “내게 남겨진 사람들과” “앞으로도 쭉 오순도순 남은 인생을 잘살아 봐야겠다고 하는 저자가 부럽다

 

책과 함께 보낸 주말이 기대만큼은 좋았다. 가제본을 읽은 후 만난 정식 출간본은 표지도 사진도 내용도 사뭇 새로워 보이지만 전하는 위로는 여전히 따스하다. 다정한 책의 온기가 많은 분들에게 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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