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되지 않은 나와 당신이지만
조성용(흔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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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 ‘완전’ ‘완벽’... ‘()’은 현실에 존재할까. 그 의미가 포함된 단어 앞에서 늘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지향은 ()’에 가까운 방향이 맞을까. 체념한 어른은 눅눅한 눈빛을 가진다고 해서 책을 읽다가 잠시 거울을 보았다. 나는 내가 너무 익숙해서 어떤 눈빛인지 모르겠다.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생각이 복잡해지고 그만큼 심약해지는 시기, 선물 같은 책을 꽉 잡고 읽어볼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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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익숙해진다는 건 무엇일까. 위험한 함정에 빠지지 않는 법은 알지만, 여전히 길 가다 넘어질 수는 있다. 아무도 나를 밀어 넘어뜨리지 못하게 예방할 수는 없지만, 잠깐 쉬다 다시 일어서는 법은 알고 있다. 그런 것들일까.

 

인생의 반환점은 몇 해 전에 돌았다(기대수명 기준). 그래서 한가운데 꽉 끼여서 꼼짝달싹이 잘 안 될 때가 있다. 한쪽 팔에는 내가 경험한 많은 것들 중 후회되는 것이 매달리고, 다른 팔에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져간다.

 

여행과 독서는 내겐 일종의 도망이고, 도망친 곳에서 나는 늘 다른 삶을 사는이들을 만나고 싶다. 에너지를 아끼려고 만든 루틴을 따라 돌발 없이 사는 일상을 사는 나는 점점 더 기억이 백화(白化)되어 날아간다.

 

쳇바퀴 굴러가듯 일상의 반복이 계속된다면 더더욱, 다른 삶을 꿈꾸기도 어려워지고 삶이 한 번이라도 어긋나는 순간, 모든 게 무너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희망은 사라지고 의욕을 잃게 된다.”

 

그래서 나처럼 세상이 가리키는 쪽을 향하지 않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잘 알고 그걸 따라 사는 이들을 만나면, 따라하지 못하면서도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는다.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되면 그 순간 막막한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비친다. 세상은 언제나 내 시야보다 넓게 존재하고 있으니까.”

 

다들 나처럼 고민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했으나, 용기를 내어 방향을 바꾼 사람들. 그 작은 - 지만 결정적인 - 차이에, 나는 언젠가 그 용기를 내어볼 날을 계속 상상하며 오늘을 유예할 수 있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인간은 살아 있는 한 계속 변하고 성장한다. 그래서 성장통이 그치지 않는다. 다시 겨울과 연말연시다. 차분하게 정리하고 계획을 세우는 휴식기처럼 보내면 좋은데, 일상은 더 바빠지고(그런 기분이 들고) 결국은 지친 채로 새해를 맞는다.

 

내가 버려야 할 것은 짐작보다 더 클 것이다. 살던 대로 살던 방식 자체를 뒤집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생각만 해도 고단하다. 마지막 기회는 10년 전쯤에 이미 소진되었다고 믿고 그냥 살까 싶은…….

 

산다는 건 분실물이 늘어나는 것. 한때는 전부였던 것들이 별거 아닌 것이 되는 것이 아닐까.”

 

쓰다 보니 하소연만 가득한데, 이 책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글이 전혀 아니다. 도움이 되어서 온갖 생각과 감정이 풀려나온다. 책을 읽으면서 기억나는 가장 어린 나를 만나 다시 현재에 도착할 수 있어 후련하다.

 

글을 시작하면 꽉 치인 나이 얘기를 했는데, 재정리해보면 경험이라는 든든한 뒷배 덕분에 나는 이제 내가 원하는 일을 해도 크게 잘못되거나 남에게 해를 끼칠 일이 없을 것이다.

 

연말연시가 되면 늘 재발하는 만성질환 같기도 하지만, 이런 버석거림이 여전히 고민하며 살고 있다는 채점표 같아서 좋기도 하다. 얼굴에 웃어서 생긴 주름이 자글자글하도록 살고 싶어진다.

 

지나간 후회 따위 가볍게 여길 수 있을 만큼, 걱정 몇 개쯤 흘려보낼 수 있을 만큼. 진짜 행복은 삶의 여러 군데가 무너져도 개의치 않고 우리를 살아가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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