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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석의 여자 - 뮤리얼 스파크 중단편선
뮤리얼 스파크 지음, 이연지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10월
평점 :
운전하면서 각종 미치광이들을 만나 심장이 너덜해진 경험 덕분에 책 소개 글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성 ‘소설’도 여성 ‘현실’도 미스터리 범죄 스릴러가 될 가능성이 높고도 많다.
11번의 비전형성을 마주할 중단편 작품들과 표제작이 무척 궁금하다. 현실과 달리 후련하기도 할까... 하는 기대도.
“2006년 4월 13일에 영면한 그녀의 묘비에는 ‘시인’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poeta, 단 하나의 단어가 새겨져 있다.” - 작가 소개 중에서
중단편선이고 활자 크기도 크지 않은데, 중편은 단편처럼 단편은 초단편처럼 아주 빠른 호흡에 읽게 된다. 특히 주제작을 다 읽고 무척 놀라고 조금 당황했다. 진실이 위용을 드러내듯 마무리된 결말에 후련하고 슬프기도 했다.
표지의 하이힐은 없지만, 탄소 마일리지 줄이려고 멀리한 핸들을 잡고 어디든 부웅 출발하고도 싶고, 어렴풋한 쓰라림과 서글픔이 글이 되어줄 지도 불안해서 서성였다. 정보라 작가의 글을 읽고 아무 감상글도 남기지 못했는데,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이야기의 시작과 동시에 격발되는 주인공의 아무 것도 참지 않겠다는 감정적 대응은, “무엇이 문제인가요, 아무 문제없으시지요, 문제가 있나요” 같은 질문을 계속 유발하지만, 바로 그 이상함, 비정상성, 광기가 주제어고 무기이고 방어수단이다(오독 가능성을 무릅쓰고 생각나는 대로 쓸 결심).
표지 색감이 기이했는데, 일독하고 나니 중심과 정상을 향하는 저항과 열기의 이 구역의 미친 x의 느낌으로 완벽하다. 하지만 핫팩처럼 뜨거워지는 문장이 아니다. 간결한 단문들은 감정을 묘사하듯 단단하고 서늘하게 이어진다. 마치 어떤 결심은 이래야 한다는 듯이.
리제가 미쳤다해도 그만큼(혹은 그보다 더) 미친 남자들은 수만 수십만 배 더 많다. 세상에 가득한 범죄 중 가장 극악한 종류는 권력을 가진 남성 ‘정상인’ 부류에 안전하게 속한 이들이 저지른다. 경쟁이 생존 조건이라는 신화와,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잔인함이 배경에 존재한다.
짧은 작품들에서, 여성이 살아가는 삶이 어떤지 현실 복사 같기도 한, 그래서 더 거짓말 같은 고발을 보여주는 방식이 놀랍다. 하루에 두 번이나 강간을 당할 뻔한 건, 남성 - 아버지와 남편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가치를 구할 수 있는 건, 사회의 민낯이 이토록 폭력적인 건, 권력이 정한 임의적인 정상성에 있지 않을까.
아프고 미치고 그래서 위험하다고 취급당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힘도 자본도 없는 여성들이다. 작가가 ‘그렇지 않다’고 하는 이야기를 나는 알 것도 같아서, 실은 다들 알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지치고 여지가 없어서 지금은 조용하지만, 우리가 다 알고 있다고.
정말 미친 여자를 만난 적이 있나... 정말 미친 여자가 사회를 활보하도록 두는 사회가 아니다. 그전에 사회가 차단하고 부정하고 제거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경이로운 통찰과 반전과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힐링도 제정신 찾기도 생존마저도 목적이 아닌, 그렇게 최소한의 삶을 지켜내는 작은 불빛 같은 광기가 쓰리고 슬프다.
Lunatic_Asylums_of_the_1800s
* 2023 타임 선정 최고의 미스터리 100선에 속한다. 작가가 자신의 최고작이라고 한 이 작품이 드러내는 가장 큰 미스터리는 과연 무엇인지... 오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