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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 제3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단요 지음 / 사계절 / 2023년 9월
평점 :
배양 팔레트의 추적 색소처럼 푸른색과 붉은색이 강렬한 띠지의 문구는 위협적인 경고 메시지 같다. 얼마나 더 증명해야 하냐고 파업하던 기후학자들의 눈물에 젖은 얼굴도 떠올랐다.
세상은 내가 이해하는 속도보다 더 늦게 변했고, 기대했던 바람보다 더 막연하게 퇴행하기도 했다. 의지로는 전혀 낙관할 수 없어서 이유와 설득이 필요할 때마다 계산을 한다. 무력함과 무기력을 뒤집어썼지만, 뭐라도 하면 미래에 수렴하는 값은 0이 아니니까, 그것만이 희망의 틈새이며 반전의 여지니까.
살던 대로 사는 일상을 뒤집어야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또렷이 알면서도, 하루도 유예할 수 없는 일상을 지키느라, 희생 없이 느슨하게 참여하고 후원할 방법만을 고른다. 연대의 여력과 변화의 동력이 서늘하게 식어가고 줄어드는 것에 모멸감도 느끼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삶만은 살지 말자는 쉬운 결심만 거듭한다.
실천보다 감정 과잉인 내가 느끼는 절망감이 부끄럽다. 꾸준히 애쓰신 분들, 조금이라도 덜 나쁜 현재를 다 같이 살도록 살아오신 분들이 엄연하니 내가 뱉는 어리광과 불평불만은 무례가 아닐까.
살아간다는 건 경건한 지옥 같아졌다. 비건 지향이나 현실 플렉시테리언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아무리 저항하고 싶어도, 때론 플라스틱 포장지에 싸인 상품을 구매하는 것처럼.
1992년부터 확인한 환경위기시계는 2023년 9시 28분을 기록했다. 정수리 위 원판의 존재는 학문과 운동보다 ‘더 직설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절박함이 만든 문학 설정 같다.
생존에 특화된 인간 뇌가 객관성보다 편견과 선입견을 재활용하고, 문명이 다 무엇인가 싶은 폭력이 반복되는 세계에, 제발 신도 귀신도 사필귀정도 지옥도 천국도 다 있었으면 싶다.
‘정의’와 ‘부덕’이라는 이분 영역이 사후 천국과 지옥으로 이어지는 세계에서 인간의 반응이 초조할 정도로 궁금했다. 픽션을 논픽션처럼 반겼다. 생득적 조건과 사회화된 방식, 각자의 우물 밖 세상을 상상하고 만나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데, 그 용기를 밟아 뭉개는 요인은 많고 끈질기다.
그럼에도 경계를 넓혀 서로의 삶을 교차시키려는 노력은 어떻게 가능하고 왜 가능해야 하는지, 현실 인간들의 공존의 조건은 무엇인지, 나의 종교이자 도피처인 문학 속에서 늘 찾고 싶다. 읽는 동안의 희망은 간질거리는 기대 같다.
과학은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은 세계의 미스터리를 해결할 수 없고, 인간과 인간이 만든 모든 존재들 - 사물들 - 은 결국 이야기로 존재하기 때문에. ‘망해가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자각이 우리가 만들고 공유해온 ‘이야기’의 수명이 끝났다는 것,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인식의 시작일 것이니까.
시행착오가 아닌 잔혹한 악의와 거침없는 욕망에 추동되어 개의치 않고 가해하는 이들이 있고, 영원히 그럴 것이고, 우리 안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교육이란 그 악의를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맞춰가는 생존 발명품이지 않았을까.
작가는 쉬운 감동과 위안을 경계하듯 반백(百)의 독자를 화들짝 놀라게 할 반전과 대반전을 설치했다. 한동안 느끼지 못한 온도로 감정적 반응이 일었다. 아이러니하게 반가운 경악이었다.
과학/산업혁명 이후에, 인간은 존재하는 방식만으로, 지구 생태계의 순환 최대치를 넘어서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청색만의 원판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인간으로 태어난 원죄 같아서 조금 서운하고 억울한 심정이 들었지만, ‘더 직설적’이지 않으면 안 될 현실의 위기 상황을 떠올리니 다 사라진다.
거듭 소환되는 현실을 차라리 옆에 두고 픽션을 논픽션으로 읽었다.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변화는 가능하지 않겠냐고 반문하게 만드는, 무섭도록 솔직한 이야기였다.
2023년이 전환점이자 분기점이라는 이야기에 불안은 더 뜨거워지고 강박은 더 단단해진다. 두렵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사고실험, 자기 객관화, 메타인지 등, 우리는 - 아직 남아 있다면 - 생존과 미래를 걸고 뭐든 시도해볼 마지막 세대일지 모르겠다.
종이책을 잡고 주문처럼 기도처럼 제목을 말해본다. 언젠가 ‘위기를 맞은 인류의 세계가 이렇게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기를. 그러니 현재 우리의 수많은 선택과 결단만이 미래를 만든다는 것을 서로 더 절감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