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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스위치 - 최신 과학으로 읽는 후성유전의 신비
장연규 지음 / 히포크라테스 / 2023년 10월
평점 :
친절한 대중과학서 출간이 늘어나서, 관심이 있는 분야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읽고 배우는 것이 가능한 시절이라 좋다. 강연 영상이 있는 경우도 많고. 과학지식도 사고방식도 상식과 교양이 되고 있는 듯.
전공하지 않아서 잘 모르는 생물학(유전학) 분야를 만나게 될 책이라 무척 기대가 컸다.
“같은 DNA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형질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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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성 유전’과 ‘유전자 스위치’의 개념과 작동 원리를 배우는 것이 1차 목표였다. 유전과 후성은 기존의 인상으로는 연결이 잘 안 되는 조합이어서 궁금했고, 유전자에 스위치 기능이 있다면 몇 개의 멀티탭인지도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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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계산으로는 같은 부모에게 절반씩 유전자를 받은 자식들도 모두 발현이 다르고, 일란성 쌍둥이도 완전히 동일하지 않은 것이 경험적 사실이다. 이 책은 1세대가 아니라, 유전자 변이가 없는 상태에서, 개체가 경험한 내용과 처한 환경이 ‘유전되는’ 세대 간 현상을 연구한 것이다.
“과연 유전자가 개체의 형질을 결정하는 유일한 인자일까요? 라마르크의 주장은 완전히 틀린 것일까요?”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틀렸다고 배운 얕은 지식이 있던 독자로서 헷갈리고 잠시 충격적이었다. 그렇다면 SF적 상상이 아니더라도, 유전자가 정해준 지도를 따라 살아야하는 운명의 고리는 좀 더 헐거워진다. 무엇이 스위치를 켜는지, 획득된 것이 어떻게 유전되는지 흥미롭게 찾고 정리하며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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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원리는 비교적 잘 이해되고, 후성유전* 작용 방식은 복잡했다. 저자가 비전공자를 이해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쉽게 설명하지 않았다면 배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문장과 삽화를 오가며 최대한 이해해보았다.
* DNA 염기서열의 변화 없이 DNA 발현과 기능이 변화하고 세대 간에 유전되는 현상. DNA 일부 구간의 정보를 켜고 끄는 시스템.
뇌가 판단의 기준으로 감각 정보 중 일부를 선택하는 것처럼, 우리 몸도 유전자에 기록된 정보 중 필요한 것을 활성화시키기도 하고 비활성화시키기도 한다. 그 유전자 스위치를 작동시키는 것이 ‘변하지 않는 유전된 정보’만이 아니라, 새로 태어난 개체가 경험하는 환경과 외부자극, 섭취하는 음식 정보 등 모든 데이터 정보가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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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정해진 법칙을 그대로 따르는 게 아니라, 개체는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는 훨씬 더 복잡한 생명 활동을 하며 유전자 사용을 조절한다. 예를 들자면, 가족력이 없어도 발병이 될 수 있고, 가족력이 있어도 건강할 수 있다.
그러니 놀랍게도 ‘획득 형질은 유전될 수 있’고, 이 연구를 통해 어떤 암은 치료가 가능하다. 암이란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 하는 경우도 있지만, ‘후성유전 시스템 오류로 인해 발생’ 하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환자의 암이 후성유전적 오류로 인해 생겼다면 (...) 종양억제유전자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고 암세포의 사멸까지도 유도할 수 있으므로 기존의 항암제에 반응이 없던 암도 치료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의학계에서 가장 주목하겠지만, 나는 좀 다른 희망을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한 선택과 노력을 DNA에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전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지금을 좀 더 견디고 버틸 이유와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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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하고 좌절했다고 다 포기하고 막 살아버리지 말고, 간절히 바라는 것들이 언제가 사실이 되고 현실이 된다는 과학의 지원을 받은 기분이다. 지식으로 밝힌 이런 여지를 희망이라고 부르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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