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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가게에 나비가 앉으면
박미용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8월
평점 :
몸은 뻣뻣하고 머리는 무겁고 날은 어둡고 이런 월요일에 휴식이 될 것 같은 제목이라 책을 펼쳤다. 내용은 깊고 무겁고 뜨거웠다. 이익추구나 계산 말고 별이나 나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라는 책 같기도 하다.
종교적 갈등이 없는 확대가족 내에서 성장해서, 종교가 주도했든 핑계가 되었든, 수많은 역사적 갈등과 폭력의 관련 사례들을 배웠을 때 많이 놀랐다. 결국 종교를 가지지 못한 내게도 종교의 메시지와 역할은 그게 아닌 듯 했으니까.
과학혁명이라 부르든, 인공위성이 날아가든, 인지한 이상의 우주 모습이 확인되든, 지구 인간의 삶 혹은 뇌는 기대만큼 변하지 않는다. 그건 더 이상 종교 탓이 아닐 것이다. 위계와 이익을 포기할 수 없는 인간들의 지루한 변명이거나, 스스로 사유하기를 포기하고 모든 권리를 양도한 삶(무비판 광신과 좀비 같은)이거나.
문제는 아무리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고 부정의하고 범죄 양상이 분명하다해도, 현실에서 힘을 가진다는 점이다. 그 힘으로 온갖 참담한 짓을 저지른다. 이 지점에서 늘 무력함과 무기력을 경험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저자는 인간이 획득한 ‘개념이나 관념이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인 것은 당연’한 것이고, 감각은 물론, ‘의식, 지각, 인지, 감정, 기억, 사유 능력’이 모두 다르니, 갈등과 분쟁 역시 당연하다고 위로를 건넨다. 충분하지 않은 교육이 여전히 불합리하고 부당한 상황을 허용한다는 것도 지적한다. 예전에도 현재도 ‘의식을 깨고 관습을 깨는 것은 개인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라고 여지를 둔다.
어쩌면 처음부터 인간은 종교의 교리를 믿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태어나보니 속한 집단이 믿는 내용이라서, 그 강력한 소속감에 끌렸을 거라고,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 속하고 싶은 이들이 선택한 것이 종교적 현상이라고 에밀 뒤르켐을 빌어 전한다. 동의하고 이해하고 실은 부러워한다. 내가 불안한 원인에는 그런 무소속감도 일부 있을 테니까.
다시 문제는 이런 무해한 소속감이 아니다. 생존 가능성을 높이자는 노력으로서의 종교가 아니다. 필연적인 죽음을 위로하고 용기를 나누자는 종교가 아니다. 외로움과 두려움을 파고들어, 종교의 이상에 반하는 범죄이다. 때론 조직의 규모나 형성한 카르텔이 지역이나 국가 단위로 커져서 범죄성을 가리기도 한다. 배려도 존중도 이해도 없는 가장 저질스런 폭력이 득세하는 환경이다.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는 <나는 신이다>를 나는 차마 못 보았다. 관련 기사도 읽지 않았다. 어떻게 이후 조사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와중에 대구에서는 대규모 신천지 집회가 다시 열리고, 지방세가 지원된다고 한다. 사회와 국가가 방법을 찾지 못하면 피해자인 개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둘째 꼬맹이가 취학 전 어느 날 “태어나보니 사는 게 너무 힘들다”라고 해서 웃었던 기억이 내내 미안하다. 분명 그랬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는 ‘너무’를 조금 줄여주는 역할이지 않을까. 아무리 준비하고 애써도, 개별 존재로서 각자가 느끼는 힘듦과 어려움을 모두 해결해줄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우리에게는 공생하는 문명적 방식이 더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분리, 차별, 혐오, 폭력, 독선, 광기, 전쟁에 반대하고, 이에 반하는 가치들을 가치 있게 여긴다. 평등, 정의, 협력, 인권, 사랑, 복지, 예술, 교육, 문학, 인문학, 과학, 수학 등등 인간이 성취한 아름다운 개념도 학문도 많다.
내가 느끼는 여러 두려움 중에는 나 자신의 죽음도 있지만, 남기고 가는 사회적 조건들도 있다. 상품보다 생명에 무심하고 무관심한 사회가 아니길, 빈부격차가 더 심해지고 가난으로 고통스러운 이들이 많지 않기를, 정신조차 절대빈곤의 상태에서 소비자로 살아갈 때만 일시적 가치를 인정받는 사회가 아니길, 생존에 필수인 ‘사는 집’을 구하지 못하는 사회가 아니길,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모두 잠식하지 않기를 바란다.
개념적 토로 뒤에 현실의 구체적인 사례들과 단상을 적은 뜨거운 글을 읽으며, 수많은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괴롭고 힘든 시기를 여전히 유연하게 대처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 매일 힘을 내며 지향을 잃지 않는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잡힐 일들은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단단한 믿음이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게 시작하지 않으면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