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현종태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편이나 되는 단편들은 여유시간이 조금 날 때도 부담 없이 펴보기 좋았다. 글자 크기가 커서 고마웠다. 요즘엔 나도 모르게 읽을 때 눈을 찡그리면 두통이 생기는 경우도 있는 서러운 나이라서.

 

어떤 단편은 이야기 전개가 되고 나서 바로 끝나버려서 장편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져서 아쉬운 작품도 있었다. 어쩌면 집중과 몰입이라는 단편의 장점을 너무 의식한 독자라서 인지도 모르겠다.

 

일상 소재들이 대부분인 에세이나 자전소설처럼도 느껴지는 작품들이라서, 마음 편히 읽는 도중에, 단 한번 참가해본 초등학교 동창생 풍경이 수십 년 만에 떠오르고, 방문한 학교가 동화 속 세계처럼 모든 게 작았던 생각도 났다.

 

소설이 가진 힘이란, 이렇게 완전히 망각한 - 잊었다는 의식조차 없어진 - 시절의 어느 한 모서리를 정확하게 잡아 끄집어내는 경우도 있다. 내 것임에도 놀라고 신기하다. 작품의 제목으로 쓰이기도 한 사물들의 이름을 보면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많은 의미부여가 이루어지는지 새삼스러웠다.

 

한편 인간의 삶이란 관계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한 때 내게 중요한 의미였던 관계 속 사람들이 사라진 현실에 문득 추위가 느껴졌다. 세상만물도 모든 생명도 한 순간만 존재할 뿐이라서, 행복한 조우는 더 귀한 것이라서, 어리석지만 지나고 나니, 우연처럼도 보였던 모든 만남이 고유한 별빛 같다.

 

아름답고 아까운 만큼 귀하고 아프고 서럽고 그립다. 존재와 소멸의 모든 과정은 멈춤도 봐주는 법도 없어서, 가차없이 매순간이 남김없이 사라져간다. 저자가 기록한 모든 이야기도 그런 모든 순간을 기록으로 붙잡아본 것이리라.

 

가을이라서 눈을 돌리면 휘루루 떨어지는 잎들이 보이고, 눈을 감아도 투둑둑 떨어지는 잎들이 들린다. 겨울옷을 껴입어야 싶게 마음이 시리다. 무엇으로 싸면 온기가 흩어지지 않을까.

 

저자가 작품 속에서 옛날 모습과 다르지 않은것들을 언급할 때마다 부러웠다. 내게도 그리운 여러 장소들이 있는데, 현실에서는 사라지거나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한 곳이 더 많다.

 

서로의 기억은 모두 다를 것이니, 그 시절의 사람들을 다시 만난다고 해도, 서로의 그리움은 각자의 기억 속에서만 실존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어도 그림을 봐도 영화를 봐도 뭘 해도 슬픈 기분은 당분간 가을 탓을 할 것이다.

 

담담하고 다정한 휴식 같은 이야기들이 좋았다. 소위 멍 때리기나 아무 것도 안 하기를 못하니, 이 작품들을 통해 자주 쉴 수 있어서 좋았다. 직장 다니는 틈틈이 써주신 글 감사히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