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간 없이 사유하기 - 한나 아렌트의 정치 에세이
한나 아렌트 지음, 신충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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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천히 함께 읽는 중 남기는 필사와 단상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보복 정밀 폭격을 하고 지상전 투입 소식이 들리고 이 전쟁은 어떻게 확전되는 건가 두려운 며칠 동안 세 번의 줌이 켜졌다. 덜컥 놀랄 만큼 진한 기시감과 현실 소환의 순간들이 적지 않았다.

 

늘 그랬고 어디든 그렇겠지만, 대표성에 나는 동조할 수 없는 한국의 상황들처럼, 학살이 목표인 점령군처럼 반응하는 권력에 대해 이스라엘 내부의 시민들의 저항도 분명 존재한다는 호흡기 같은 기사를 접했다.



 

아이히만은 우리하고 말하고 싶어 했는데, ‘나머지 사람과 동조하기’, 우리라고 말하고 싶어 하기만으로도 역사상 가장 극악한 범죄를 자행하기에 충분했죠.”

 

남들에게 동조하는 것, 즉 다수가 함께 행동하는데 끼려함으로써 권력이 나온다는 거죠. (...) 그런 식으로 행동할 때는 극도의 쾌감이 있어요. (...) 기능적인 직무functioning는 정말로 도착적인 행위 양식이고, 이런 직무에는 항상 쾌감이 따른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이 직무에 남는 것은 공허한 분망함empty busyness뿐이죠. (...) 공무원이 공무원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일 때 정말이지 대단히 위험한 인물이 됩니다. 제 견해로는 여기에서 이데올로기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악인의 서사에 대해 생각했다. 문학과 영상과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악인 캐릭터들도, 인기를 구가하는 사적 복수에 대해서도.

 

인간은 한없이 복잡하고, 선악을 판단한 능력도 대개 부족하다는 깨달음이, 사는 일을 좀 더 막막하게 하지만, 그래서 문학이든 철학이든 분별력을 키우는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그런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아이히만은 꽤나 지성적이었지만 (...) 마치 담벼락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마링 안 될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이었어요. 이것이 제가 말하는 평범성의 의미입니다. 거기에는 뭔가 깊은 구석이라고는 아예 없어요. 악마와 같은 것도 없고요! 다른 사람이 무슨 일을 겪는지 상상조차 꺼리는 거부감이 있을 뿐이죠.”

 

공감할 수 없어도 사유할 수는 있다. 사유하지 않음 혹은 못하는 무능은 위험하고, 그런 유형의 인간이 권한을 부여받으면 많은 이들의 삶이 위험해진다. 대화나 소통이 어려운 상황은 시대불문 고통일 뿐.

 

다른 모든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무능이에요. (...) 이런 종류의 무사유는 마치 담벼락을 상대로 말하는 것과 같아요. 그래봐야 어떤 반응도 얻을 수 없어요.”

 

가 사라진 우리 되기에는 논리도, 사유도, 판단도, 사과도, 책임도 모두 따라 사라진다. 조직에 충성한다는 논리 역시 그런 것이었을 터.

 

우리가 이 사람들에게 어째서 그리도 오랫동안 동조했는지 물으면 이들은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일이 어찌 그리 악화되었느냐고 물으며 이들은 자기에게는 아무 힘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전체주의 상황에서 무기력powerlessness 현상이 존재함을 인식해야해요. 절대적인 무기력의 상황에서도 다른 행동 방안이 여전히 존재함을 인식할 필요가 있고요.”

 

자신이건 타인이건 판단의 가장 확실한 근거는 무엇을 하였나행위이다. 기록이 있으면 더 선명하다. 하다못해 한 달간 자신이 구매한 물건의 영수증만 봐도 자신이 보인다. 내가 한 행동들이 곧 나다. We are what we do.

 

세상에는 외부 저항만 있을 뿐이에요. 인간 내부에는 기껏해야 심리유보reservatiometalis’만 있어요. 허풍선이 존재가 보여주는 속이 뻔한 아주 역겨운 거짓말이죠. (...) 관료제는 대량 학살을 행정상 자행했고, (...) 자연스럽게 익명성을 만들어냈어요.”

 

관료제가 본질상 익명성을 띤다는 점 말고도 무자비한 행위는 무엇이건 책임이 증발되는 것을 용인하지요. (...) 누구도 하던 일을 멈추지 않는 한 생각에 침잠할 수 없어요. (...) 이런 일은 한 인간이 자기 자신이 아닌 자기가 하는 일에 관해서 성찰하는 순간에야 일어날 수 있어요.”

 

나도 남도 곁을 돌아볼 여력이 없어서, 저항도 연대도 쉽지 않은, 변화의 동력은 사라진 건가 두려운, 그래서 더 아프고 종종 모멸감도 느낀다.

 

자기 두 손으로 치명적인 살해 도구를 사용한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책임의 정도도 커진다.”

 

정의는 훼손된 질서를 회복해야 해요. 이건 질서를 훼손한 당사자들이 (...) 유죄 판결을 받아야만 성공할 수 있는 치유과정이죠. (...) 가해자가 처벌받아야 하는 이유가 피해를 보거나 상처를 입은 사람의 명예나 품위와 관련 있다고 말했어요. 자신들 가운데 살인자를 두고서도 추호도 동요하지 않으면서 계속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

 

책도 상품이지만 상품만이 아니다. 많이 알려졌을 지도 모르지만, 더 알려지길 바라는 명석한 철학자의 중요한 통찰을,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통해 다시 함께 읽으시길 열심히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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