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명품이 되는 순간
최경원 지음 / 더블북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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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과 경험과 먼 분야일수록 독서의 재미와 흥미가 커지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많이 즐거운 내용으로 가득했다. 전시회 도록 읽듯 구경하고, 재독했다. 몇 번을 더 펼쳐볼 지는 모르겠지만, 디자인에 대해 이해할수록 일상의 사물들을 알아보고 다시 책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할 듯하다.

 

사물만이 아니라 생물들도 모두 디자인되어있다. 생존에 유리하도록, 위험을 피하도록, 목적에 부합되도록, 능력을 보완하도록. 이 책에서는 제목처럼 일상의 공간과 사물과 이미지에 대해 주로 다룬다. 그리고 알게 되면 그만큼 일상이 선명하게 달라 보이는 효과를 경험하게 한다.

 

디자인에 대한 깊은 지식과 취향은 없어도, 예전엔 선호가 더 분명했다. 때로는 내용물보다 디자인에 눈길을 더 간 적도 있다. 특히 보기 싫은 물건과의 동거는 엄청난 스트레스여서 구입에 까다로웠고, 선물이라면 많이 곤란했다. 한 때는 옛 장인들의 물건을 그리워하며 현대의 조악성에 한탄하기도 했다.

 


몇 년 전 소전서림


통영 시립 박물관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그려진 건칠다과반




지금은 개인적인 물건을 늘려가거나 공간을 리모델링하려는 욕구가 거의 없고, 꼭 필요한 물건이라도 가능한 재활용 가능한 단일 재료 상품을 찾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취향도 변했다. 단출해진 시선으로 살다 이 책에서 만난 디자이너들, 철학, 작품들, 통찰을 만나는 시간은 즐겁고 눈부셨다.


 

20()중 나의 최애 디자인도 몇 개 꼽아보았다. 책장과 소파와 테이블이 포함된 것을 보고 생활양식이 좀 드러나서 웃었다. 드디어 책을 정리 중이지만, 책장에 대한 욕심은 정리가 안 된다. 실용적이고 개인적인 목적이 아니더라도, 전혀 몰랐던 디자인으로 구성된 다른 세계를 만나는 일은 여행처럼 설렜다.



 

어떤 디자인은 품위 있는 과학의 세계가 구현된 듯해서 사랑에 빠진 것처럼 오래 보기도 했다.

 

유기적인 곡면을 가진 형태들은 보는 방향에 따라 형태의 어울림이 달라 보이기 때문에, 디자인할 때 그 모든 방향에서 아름답게 보이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디자인을 시작할 때는 이미 수만 가지의 시점과 수만 가지 부분의 어울림을 입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어느 한 부분, 어느 한 방향만 잘못되어도 전체적인 아름다움이 파손된다.”

 

목차를 잘 보시고 내용을 천천히 즐기시길 바란다. 어쩌면 이 책은 리뷰와 소개가 불가능한 종류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만큼 더 귀한 책이다.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디자인을 수단으로만 여긴 선입견(제 얘기)을 거부감 하나 없이 자연스럽게 바꿔준다.

 

디자인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부딪힘 없이 합의하는 부분은, 디자인이란 쓰임새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종 작가의 자유로운 개성과 주관이 중심인 순수미술과 대비되면서 (...) 상업적 가치나 생산활동 안으로 강력히 포섭되기도 했고, 그 외의 가치 세계와는 단절되었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취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놀이와 성취로서의 예술이 인류에게 언제나 필요했듯이, 인간의 삶은 아름답고 빛나는 것들을 지향하고, 디자인은 그런 상상과 욕구를 실체화시켜주는 구체적인 방식이자 능력이다.

 

분별하기 어려운 혼재된 사물과 생물의 세계에서, 디자인은 어떤 형태를 좀 더 가시화하여, 인간을 철학과 삶에 집중하도록 돕는 그런 기능마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 자체가 명품이다.

 

단순한 재활용이 아니라 속성이 다른 존재로 재탄생한 것이다. 허공에서 폭발하는 듯한 접시 조각들이 최신의 조명이 된다는 것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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