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양육 -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제대로 읽고 소통하는 법
셰팔리 차바리 지음, 구미화 옮김 / 나무의마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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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길게는 700만년 동안 반복해서 다음 세대를 낳고 양육해오고 있지만, 2023년을 사는 우리는 여전히 양육이 쉽지 않다. 국가와 사회뿐만이 아니라, 각 가정 상황과 주양육자에 따라 양육방법과 갈등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관련 책들 중에는 격려와 사랑의 말이 독이 된다는 무서운 일침을 가하는 것도 있고, 읽고 배울수록 혼란스럽고 겁이 많아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노력하고자 하는 양육자의 최대 관심은 아이의 행복한 성장과 발달이라 믿는다.

 

고민 끝에 나는 내 양육법에 문제가 없는지 더 배우고 확인하며 살기로 했다. 다른 비법은 모르겠다. 문득 너무 빨리 커버렸다 싶을 때도 있지만, 십 대 아이들과 사는 일상은 여전히 내게 불면과 강박과 심한 불안을 겪게도 한다.

 

친밀한 관계라고 해서 충분히 깊은 소통과 이해가 늘 가능한 것은 아니라서, 막연한 믿음과 기대 대신, 나는 최선의 의도로 최선의 도움이 되기를, 시행착오를 피할 수는 없지만 부작용과 어긋남이 최소이기를 간절하게 바랄 뿐이다.

 

이 책은 불안감을 서늘하게 진정시키는 효과가 좋았다. 무엇보다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던 중요한 기본 단계들을 상기시켜주는 명료한 제시와 가이드가 좋았다. 실전 편이라 확실히 더 구체적인 응원 같았다.

 

나는 어떤 부분에서 감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가? 무엇이 나를 발끈하게 만드는지 알았다면, 내가 거기에 빠져들려고 할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멈춤이다.”



 

덕분에 갓난아이를 양육하며 소통을 시작할 때의 조심스럽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Witness(지켜보기), Inquire(물어보기), Neutrality(중립 지키기), Negotiate(협상하기), Empathize(공감하기), Resolve(해결하기)

 

머리를 들 때도, 뒤집기를 할 때도, 앉을 때도, 벽을 집고 서려 할 때도, 나는 서둘러 아이를 잡고 도와주지 않았다. 지켜보고 응원하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그러면 된다고 격려했다. 아이는 스스로 배우고 해냈다.

 

온갖 양육법이 개발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가만히 아이 곁에 있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 침묵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이와 교감을 나누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제안하는 6단계 중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단계다.”


 

최선을 다해 잘해주고 싶은 마음은 같은데, 내 태도는 변했다. 성장이 기쁘면서도 그 핑계로 기다림이 줄었다. 오래 보고 감정을 이해해보려 애쓰고 긍정과 칭찬을 통해 힘껏 응원해주는 노력도 줄었다. 대신 기대가 묵직해졌다.

 

아이도 부모도 살아있는 한 계속 변한다. 그러니 서로를 이제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오해일 것이다. 더구나 발달 성장 과정의 아이들에게는 자신도 양육자도 예측 못할 고비들이 있다. 끊임없는 간섭보다, 힘들고 휘둘릴 때 중심을 잡는 역할이 더 필요하고 중요할 것이다.

 

내가 변변치 못한 나이만 어른이라 그런 점도 있지만, 어른도 도움이 필요하다. 한 걸음 한 걸음은 늦더라도 방향만은 늦지 않게 가리켜주고, 여정을 걸어갈 때 든든한 힘이 될 지식을 채워주는 배움이 필요하다.

 

감정적 반응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과거의 패턴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프로그램화된 자동반사 반응이다. (...) 아이의 감정 존중하기는 효과적인 양육의 주춧돌이다. 거기서부터 아이와의 교감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이 그런 도움을 준다. 배우지 않아도 부모자식이면 통한다고 막연히 기대하고 실망하지 말고, 진짜 필요할 때 필요한 소통을 깊게 하는 방법은 잘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사랑과 노력이 헛되이 잘못 쓰이거나, 오독되고 변질되어 부작용을 야기하지 않는다.

 

실질적인 도구를 마련하는 일은, 가파른 등산길에 몸을 의지할 지팡이와 같다. 나는 꽤 엄한 훈육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더 조심하고 싶었다. 내가 찬성하지 않는 경험의 기억이 아이와의 공감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더 노력하고 싶었다.

 

엄벌이 동반한 훈육에는 존중이 부족하다. 어린 당시에도 나는 모욕감을 느꼈고 부당함과 설명 부족에 억울했다. 설명과 대화는 생각보다 많은 문제를 유연하게 해결하게 도왔다. 체벌과 꾸중으로는 누구도 웃으며 마무리할 수 없다.


 

우리가 기존의 훈육 방정식에서 빠져나와 아이들이 자기 행동의 결과를 직접 경험하게 지켜본다면 (...) 아이들은 우리를 밀어내야 할 적으로 보지 않고 위로와 격려, 안내를 구할 수 있는 동지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102일은 큰 아이의 생일이었다. 5살 때 아이를 야단치며 크게 소리를 지른 적이 있다. 단 한번이지만 아직도 미안하고 그 장면은 내게 깊은 상처로 남았다. 서럽게 울던 어린 아이가 오늘도 내게 웃어주고 신뢰를 보내는 태도가 고마울 뿐이다.


 

낳고 기르는 것이 힘든 만큼, 태어나고 자라는 것도 힘이 든다. 어쨌든 아이를 낳겠다는 것은 부모의 선택이다. 그러니 선택에 책임을 지고, 태어난 아이를 힘껏 사랑하고, 최대한 안전한 환경을 만들고, 가능한 도움을 주는 것이 맞다.

 

다만 아이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들인지, 내 욕망과 기대가 실현되는 것을 보고자 하는 것인지, 동기와 동력에는 늘 주의가 필요하다. 아이가 자신을 잘 알고 남을 돕고 사적인 삶과 더불어 사회 전체를 조망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책을 덮고 역시나 내 역할은 보호와 응원이면 충분할 거라는 확인과 안도를 함께 얻었다. 우리 다 같이 WINNER WINNER가 되자. 아무리 준비하고 공부해도 모자란다고 불안을 느끼는 양육자들이 함께 읽고 힘을 얻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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