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눈썹, 혹은 잃어버린 잠을 찾는 방법 - 도서부 친구들 이야기 꿈꾸는돌 37
최상희 지음 / 돌베개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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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스런 작은 도서관 같은 <책방사춘기>의 라이브방송을 들으며, 막 도착해서 아직 읽지 못한 책이 품은 이야기를 상상했다. 좀 춥다, 고 생각한 어느새 가을 저녁이 봄과 여름의 소란과 열기와 성장을 잠시 그립게도 했다.

 

아주 오래 잊지 못할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어쩌면 그런 꿈을 꾸게 될 지도 모르겠다. 기왕이면 내 친구들도 그 꿈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4개나 주신 책갈피 숫자가 묘하고, 그래서 여기저기 꽂고 읽는 남용(?)이 즐거웠다.



 

방심했다. 인생이란 뒤에서 날아오는 돌멩이와 같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피할 수 없으면 맞서라는 말도 있다. 죄다 말만 번지르르하다.”

 

3년 내내 다른 반이었고 내내 친구였고 불가피한 일이 없다면 함께 집에 갔던 두 친구를 생각했다. 우리는 어떻게 친구가 되었고, 왜 계속 친구였는지 그 불사가의와 함께 웃던 모든 순간을 생각했다. 왈칵 그리움을 토할 것 같았다.

 

책장과 책장 사이는 좁고 아늑하여 다른 장소로 나를 데려가는 것 같았다. (...) 그날도 늘 앉던 데에서 책을 읽다 고개를 드니 그 애가 보였다. (...) 그 애도 나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책장에 등을 기댄 채 책을 읽고 있었다.”

 

한 명은 변호사가 되었고, 한 명은 역사학자가 되었고 한 명은 그냥 내가 되었다. 지금도 우리는 크고 작은 무언가를, 누구를 지키고 구하며 살고 있는 걸까. 체험하지 않은 무엇도 사유할 순 있지만, 체험하지 않은 무엇도 공감할 수 없는데. 우리의 세상은 매일 어떻게 다정할까.

 

바람이 솨아아 불어 빗방울이 우산 속으로 들이쳐 팔과 얼굴을 적셨다. (...) 우리 세 사람은 발을 맞춰 빗속을 걸었다. 그것은 어떤가 하면 느슨한 걸음이었다.”

 

사랑스럽고 재미있을수록 부럽고 그립고 조금은 서글퍼진다. 매일 친구를 만나고 친구와 놀고 친구와 대화할 수 있었던 시절이 가장 빛나게 성장하는 삶이었다. 그 시기에 읽은 것, 애쓴 것, 경험한 것들이 존재의 골격을 이룬다.

 

물리적 거리만큼 느슨해진 우정, 변화와 구별이 어려운 성장, 드물어진 용기, 가장 쉬운 방식의 연대, 전면적이고 간절한 청소년기와 구별되는 어른의 삶이란 대체로 이렇게 흐려진 색들의 조합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친구와 함께 쓰기에 충분한, 크고 튼튼한 우산을 사줄 수 있는. 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조금이라도 덜 망치는, 방해나 하지 않는, 가능하면 부끄럽고 미안한 이미 벌어진 일을 수습하는 어른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 집 십대들의 현재진행형인 모든 조우와 관계와 경험과 삶을 응원하고, 안전한 테두리를 유지하고, 이렇게 울고 싶을 만큼 멋진 책을 권하며, 이번 생은 한동안 더 그렇게 쓰일 것이다. 오랜만에 곰 젤리를 좀 사서 나눠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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