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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평점 :
책 표지가 어제 본 하늘과 구름 같다. 진통제 양을 보고 놀랐지만 어쨌든 삼킨 감기약이 퍼지는 효과 덕분인지 몽롱해서 안전하다. 예리하고 날카로운 무엇에 베이거나 찔릴 염려 없는 시간을 보낸다.
찬란한 5월, 봄이 다 가기 전에 읽어 보라고 추천을 받았지만, 봄에 (앙심과 원한... 정도까지는 아니고) 좋은 기억이 별로 없는 지라, 여름이 다 가도록 책도 펼치지 않았다. 저런 하늘색이 되면 봐야지, 핑계를 찾아 둔 채로.
문득 고개 돌린 5층 창가 자리 도서관에서 본 먼 하늘에, 거대한 성처럼 우주선처럼 뭉게구름이 둥실한 풍경을 보고, 심장이 저릿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았던, 시간이 아주 많았던 20대의 오후 같은 표지가 그립고 두려웠다.
“그럼, 어른도 울지. 겉만 커다랗지 어른도 사실은 아이랑 다를 게 없거든.” 24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는 때로 체념이 필요했다.” 30
“ 나는 어른들의 사정을 다 알았지만 어른들은 내가 아무것도 몰라서 오히려 너무 많은 상상을 멈출 수 없고 그래서 괴롭다는 사실을 결코 알지 못했다. (...) 신 따위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숨을 쉴 수 없을 때가 있다는 것을 어른들은 몰랐다. (...) 그 당시 나에게는 거짓말밖에는 할 것이 없었다.” 50
“그 사람이 아직 살아 있을 거라고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사람 목숨이라는 건 짧은 찰나에도 쉽게 사그라져버리는 것이었다.” 62
“내년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걸 볼 수 있을 테니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아름답지?” 74
“게으른 사람들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걸 배우려고 하는 대신 자기가 아는 단 한 가지 색깔로 모르는 것까지 똑같이 칠해버리려 하거든.” 106
“사람의 마음엔 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결국엔 자꾸자꾸 나아지는 쪽으로 뻗어가?” 109
“사람이 겪는 무례함이나 부당함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물에 녹듯 기억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침전할 뿐이라는 걸 알았고, 침전물이 켜켜이 쌓여 있을 그 마음의 풍경을 상상하면 씁쓸해졌다.” 142
“애써 잊고 살려고 했지만 잊히지 않아, 때로는 그리움으로 때로는 후회와 자책으로 환기되던 풍경들.” 183
“우리가 장제송환당할 뻔했을 당시, 그 문제에 무관한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서명을 해주었고, 그래서 내가 이곳에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지. (...) 나 역시 여기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이렇게 조그만 도시에서 알리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싶지만, 그렇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 침묵은 비겁함 외에 아무것도 아닐 거니까.” 199
“돌아봐야 해. 어느새 꿈의 관찰자가 되어 있는 성인인 나는 꿈속의 어린 나에게 말한다. 지금이 아니면 너는 다시는 한수를 보지 못할 거야. 하지만 나는 끝내 돌아보지 않는다.” 213
“무얼 하든 덧없다는 익숙한 무력감 (...)” 260
“내가 원했던 삶에서 멀어져 실패하고 있다는 생각은 나를 이 넓디넓은 우주에 버려진 고아처럼 느끼게 했다.” 302
“원래 사람들은 다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중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은 사과를 할 수 있는 거고.” 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