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본 적 없던 바다 - 해양생물학자의 경이로운 심해 생물 탐사기
에디스 위더 지음, 김보영 옮김 / 타인의사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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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무서워할 수는 있지만, 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라고 물을 좋아하는 나는 평생 오해 중이다. 육지에 살고 공기호흡을 하지만, 인간이 물을 싫어하면 수많은 목욕탕과 수영장과 물놀이 시설이 있을 리가 없다. 여름 해변가가 붐비는 것은 단지 더워서만은 아닐 것이다.

 

올 해는 여행 없는 휴가를 보내서, 바다가 더 그립다. 어릴 적부터 몇 년 전까지 바다는 언제든 접근 가능한 일상 공간과도 같았는데, 여러 이유로 중단 중이다. 바닷속 쓰레기도 표면 미세플라스틱도 슬프고 화가 난다.

 

바다 이야기를 읽으면, 바다의 엄청난 규모 - 지구 표면의 약 68% - 에 근거 없는 안심이 된다. 아프리카 대륙만한 플라스틱 쓰레기섬을 만들었어도, 설마 인간이 바다를 다 망친 건 아니라는 비겁한 안도감이 든다.

 

내가 경험할 수 있는 바다는 얕은 해안가가 거의 전부라서, 우주보다 가기 어렵다는 심해라는 세계와 생물들을 알려주는 이 책은 마법서처럼 신기하고 귀하다. 인간에게 관측되거나 탐사되지 말라고 응원하고도 싶지만, 존재를 알고 아름다움을 보면, 덜 망칠 이유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무 것도 없는 우주 공간을 한참 들여다보았더니(물론 망원경으로), 깊은 우주와 무수한 천체들이 보였다. 그 우주보다 더 어두울 거라고 생각한 심해에도, 빛과 생명체와 생태계 시스템이 있다. 경이(驚異)롭고 경외(敬畏)롭다.

 

수심 600m에서 섬광의 강도는 햇빛의 천 배였고, 빈도는 분당 100회가 넘었다. 그 수치들은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한 수레가 지나가고 불꽃놀이가 장관을 이루는 디즈니랜드 야간 퍼레이드를 연상케 했다. (...) 대체 저 아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반딧불이 희미하고 단조로울 정도로 다양한 빛이 만화경kaleidoscope처럼 반짝이고, 인간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발광 생물도 존재한다. 지구는 스스로 빛을 내는 생물들로 가득한 - 중층수 생물 75% 가량 - 빛나는 행성이었다.

 

우주공간보다 물속에서 더 오래 생존할 수 있는 인간은 어쩌면 기후붕괴의 시대에 심해에서 살 방법을 고민해야하는 것은 아닌가. 어쩌면 인류의 일부는 수생생물로 진화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살아남을 수 없는 미래지만, 책 덕분에 현실을 잊고 상상해보는 시간은 즐거웠다.



 

어릴 적엔 심해 생물들과 긴 여행을 하는 꿈을 정기적으로 꾸었는데, 사라진 건지 여전히 꿔도 기억을 못하게 된 건지 모르겠다. 심해 다큐멘터리도 좋아하지만, 이 책은 무척 특별한 심해 여행이자 처음 만난 안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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