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에르 드 부아르 12호 Maniere de voir 2023 - SF, 내일의 메시아 마니에르 드 부아르 Maniere de voir 12
에블린 피에예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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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은 지성과 상상의 산물이다. 어떤 개념들 - 평등, 인권, 행복 등등 - 은 최고의 상상력이 구성한 최상의 픽션이다. 본 적 없고 도달하리란 낙관을 못해도 믿고 지향하는 것. 물질세계의 혼란을 초래하는 인간 행위에 치를 떨지만 한편으론 늘 신비롭고 궁금한 존재가 상상하는 인간이다.

 

스스로 현재의 불가능을 가늠하고, 상상으로 가능한 방법을 찾아내는 신기한 생명체, 그런 사유의 역사를 문학으로 기록한 것이 SF 작품들이(이라고 믿는). 어릴 적엔 의미를 생각하기보다 설렜다. 그런데... 여러 해 전부터 SF의 배경인 미래가 근미래로 초근미래로 가까워지더니 현실이 재난 상태다.

 

거대한 문제를 마주한 인류가 해답을 찾으면 지속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멸종에 이를 가능성도 적지 않다. 오래 된 전쟁, 낯설어지는 현재, 오지 않을 지도 모를 미래를 두고, 우리는 신화, 종교, 과학, 문학, 예술을 새롭게 만들어야할 지도 모른다. 비파괴적인 방식이면 좋겠지만, 짐작하기가 어렵다.

 

거의 매일 현실을 피해 책 속으로 도망을 간다. 그 결과 현실보다 밀도 높은 현실을 만나 놀라서 튀어나오거나, 현실을 소환하는 문장들에 덜미가 잡힌 채 현실로 돌아오고 만다. SF 역시 그렇다. 저주 같은 반복을 통해 선명해지는 것은 역시나 현실의 모순과 갑갑한 질문들이다.

 

게으르고 평범한 독자인 나는 투덜거리며 반복과 순환을 살아가겠지만, 어떤 독자는 SF의 상상력을 현실을 변화시킬 무기로 벼릴 수 있지 않을까. <마니에르 드 부아르> 12호에서는 현실과 상상력 모두에 대한 사유를 만날 수 있다. 뜨거운 선언 같은 제목에 조금 두렵고 많이 설레며 읽었다.

 

르몽드가 보는 세상에는 말랑한 타협보다 서늘한 분석이 가득하다. 자본이 차지한 지위, 엘리트들이 공고화한 계층, 자본주의 시스템이 소외시킨 인간의 가치, 메타 상부 구조를 차지한 기업, SF에 등장했던 감시체제와 도피처의 현실과의 대응. 단어를 조합하는 손가락이 잠시 떨렸다. 상상력은 혁명의 동력을 상실한 것일까, 꿈조차 인간이 아닌 SNS의 메타조합이 아닐까.

 

치밀한 자본주의 시스템과 상부 계층의 계획표에 비해, 대다수 인류의 희망은 허술한 낙관처럼도 보인다. 우주로 날아간 인류는 정말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할 것인가. 아니면 사유와 꿈조차 휘둘리게 된 인류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 지구 밖 공간에서 허우적대는 걸까.

 

관절을 사용하는 것도 서툴러 보이던 로봇은 두렵지 않았다. 이제는 정보의 재구성을 하는 것일 뿐이라 여겼던 챗GPT가 거짓말을 한다. 인간의 뻔뻔함에 지지 않고, 인간의 가짜뉴스보다 그럴 듯했다. 인간들이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서 점점 더 오래 머무는 동안,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인공지능은 현실에서 무엇을 하게 될까.

 

특정 기후와 물질적 조건 하에서만 생존할 수 있는 인간은 기후붕괴의 시대에 어떻게 될 것인가. 가난한 이들부터 죽고 나면, 집중된 자본을 가진 상층부 인간들은 마침내 영생을 누리면서 인공지능이 관리하는 천국에서 살게 될까. 여전히 얼마간의 인간 노예(노동자)들은 필요할 것인가. 당신과 당신의 후손은 엘리시움의 시민으로 살까.



 

인간을 망치는 것도 꿈을 이루게 해줄 것도 모두 인간으로부터 태어난 것들이다. SF는 역사서이자 예언서와 같다. 저자들은 미래를 보고 온 사제들처럼 계속 경고를 보내왔다. 현실을 더 선명하게 봐야한다. 지금 내민 도움의 손이, 연대의 고리가, 고민하는 사유가 우리가 들어설 미래의 영역을 만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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