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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면 유쾌한 할머니가 되겠어 - 트랜스젠더 박에디 이야기
박에디 지음, 최예훈 감수 / 창비 / 2023년 6월
평점 :
재난, 고통, 피해, 참사를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플랫폼 사료공급장치같은 팩트 체크도 맞춤법도 하지 않는, 무지성 단신 보도를 읽지 않은 지 오래다. 클릭수와 광고수익과 월급과 성과급만 오르면 아무 문제없다는 태도가 끔찍하다.
언어로만 소통이 가능한 인간이라서 대신 읽을 문자를 알고도 모르고도 찾아다니는데, 정말 책이 있어 다행이다. 사회 전체에 전하는 목소리지만, 내게도 아주 필요한 내용들은 더 고맙다. 거기다 재미까지 있다면.
밤잠을 3-4시간 밖에 못자는 여름 불면을 겪는 중이라 정신이 흐릿한데도 불구하고, 무섭도록 솔직하고 적확한 이야기가 문장 그대로 박히듯 들어온다. 비웃음 속에서 비장했던 세월을 견뎌 비범하게 웃음을 저항도구로 사용한다.
우리 모두 견뎌내어 사회 속에서 살아온 몫이 있다. 누구가 더 힘들었나를 측정할 방법은 없다. 다만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의 인권활동가로, 트렌스젠더로 살아온 삶의 지치도록 무거움을 가늠하는 척 해본다. 유쾌한 기분이 들 때까지 견뎌야 하는 이야기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더욱 추천한다.
자신의 고단함과 아픔을 하소연하는 대신 - 나는 매일 그만두고 싶은 하소연을 한다 - 유머를 잘 활용해서 상대를 웃게 하는 일은 엄청난 일이다. 나로선 불가능하다. 조급하거나 억울해하는 대신 만남을 소중하게 여기는 한결 같음도 생각이 조금만 달라도 욕부터 하는 현재 이 사회에 되돌려야할 태도다.
빠른 판단과 장담은 대개 실수거나 오만이다. 어떻게 누군가의 삶을 당사자가 아닌데 알 수 있을까. 실없는 농담, 일상의 단편을 담은 사진, 몇 줄의 생각을 기록한 문장이 그 사람이 겪은 모두가 전혀 아니다. 그러니 오해는 못 피해도 확신에 찬 악담은 하지 말아야 한다.
뭐든 ‘하나’라도 이해하려면 유일한 방법은 더 많은 조각들을 모으는 것뿐이다. 조각이 많을수록 전체 풍경에 가까워질 확률이 높아진다. 어쩌면 아주 작은 한 조각이 빠져서 결국 오해를 하고 말지라도.
내가 만나고 아는 트렌스젠더와 사회운동가들의 삶만 조금 단편적으로 알 뿐이었던 독자로서, 이반지하는 알아도 박에디는 몰랐던 이웃으로서, 내게도 이 책 한 권만큼의 조각이 하나 더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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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만큼이나 다양한 혐오세력들, 현장을 잘 안 가는 지식노동자로서 피켓을 하나 얻어 들고 축제의 한가운데를 걸어본 생생한 독서를 했다. 태어나 방문한 모든 곳에서 정상사회와 불화한 존재가 살아온 희로애락이 무지갯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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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삼십대인 박에디든 누구든, 우리가 서로를 처음 만나면, “남자예요, 여자예요? 나이는 몇 살이에요? 어디 살아요? 얼만 배웠어요? 직장은 어디에요?” 기타 등등 이런 질문 말고, “안녕하세요?”부터, 혹은 그것만 하고 덜 무례해진 사회를 상상한다.
“트랜스젠더는 이렇게 어딜 가나 대놓고 평가를 받는다. 그밖엔 다행히 ‘커피 드실래요?’라는 질문만 돌아왔다. 이게 바로 판결문의 힘인가 싶었다.”
기후붕괴로 누구의 생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지만, 공멸이 아니라면, 젠더를 이유로 죽임 당하거나 사회적 타살로 몰리는 이들이 줄고 또 줄어, 기후재난을 피한 모두가 유쾌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면 좋겠다.
“나처럼 부족한 사람도 이렇게 살아내고 있는데 (...) 그러니 우리, 징그럽게 계속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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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는 트랜지션, 성확정수술 등 트랜스젠더 의료정보가 포함되어 있고 의학 전문가의 감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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