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육점 주인들의 노래클럽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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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4권의 책은 저자의 어머니쪽, 북미 선주민들의 우주가 태고적 별빛처럼 반짝이고도 처연하게 펼쳐진, 신비로움과 고통이 농도를 높여가던 작품이었다. 처음 맛본 메뉴처럼 바로 꿀꺽 삼키지는 못하고 조심스럽게 맛을 보았다.

 

이 책은 저자의 독일계 아버지 쪽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다. 표지부터 재밌고 기분이 가벼워진다. 비건 소시지라도 구워서 맥주를 마시면서 읽고 싶어졌다. (결국 구웠다. 소시지 볶음밥은 실수인 듯)





 

그나저나 유럽에서 머물 줄 알았는데, 독일 저격수였던 인물이 미국 식빵 맛에 반해 미국으로 와버렸다. 그리고 정육점을 연다. 전쟁은 잊혔지만 생존이 그보다 덜 힘들지는 않다. 흉흉한 시절이라 폭락과 대공황과 흉작마저 닥친다.

 

화내고 뭘 부수고 누굴 때리는 대신 노래를 부른다는 전개가 너무나 안심이라서 눈물이 고일 뻔 했다. 물론 도살이나 도살실의 존재에 속이 울렁이긴 했지만, 그 장소가 노래클럽 모음에 사용되는 것이 묘하게 유쾌했다.

 

삶을 휘두르는 전쟁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다양한 직군의 노래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다. 지금은 사라진 직업이 등장해서 재밌기도 하고, 주류 밀매자, 보안관, 의사, 은행가가 모두 노래를 즐긴다는 점이 새삼스럽기도 하다.

 

몇 년 전만 해도 부모님께서도 뭘 배우러 다니시고, 모임도 많았는데, 팬데믹과 더불어 사라지고 다들 급격하게 노화되신 점이 쓸쓸하고 안타깝다. 함께 노래는 부르는 장면이 그립고 아름답다. 서로 호흡을 나누는 풍경 같다.

 

물론 이렇게 즐겁게 들떠서 맥주도 맘대로 마시고 밤새 노래 부르는 이들은 모두 남자들이다. 여자들은 뭐하고 있나 궁금해진다. 그럼에도 서로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주고 가르쳐 주는 장면은 참 좋았다.



 

파편화된 관계와 사회, 매일 화면을 들여다보는 시절,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고, 집회는 항상 수천수만 명이 모이지만, 일상에서도 우리는 어쩌면 함께 뭘 좀 같이 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하는 건가 싶을 때가 왕왕 있다,

 

인류 문명사에 전쟁이 부재한 시기는 드물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때론 생명을 위협하는 아이러니가 있다 하더라도. 지향이 없다면, 한 걸음씩 내딛는 발걸음이 없다면 산다는 건 또 무엇인가. 왜 애쓰며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영원을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데, 우리는 지극히 유한한 존재인데 어째서 우리에게 영원을 상상하는 저주가 내려진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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